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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May 21. 2024

어른은 다 편한 것 같았는데, 더 어려운 자리였어!

나도 이제야 어른이 되는 걸까

오래전부터 친정집 형제자매가 공금을 모아 왔다. 매월 일정액을 자동이체해서 모으는 식이다. 그 공금은 가족행사나 친정집에 목돈이 필요할 때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가족이 모였을 때 '도무지 돈을 모을 수가 없다'는 푸념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엄마가 또 김치냉장고를 새로 사 달라시네..."

"냉장고가 네 대나 되는데? 골프카트도 사 달래서 해드렸는데... 또?"

"가족여행은 무슨... 목돈이 모여야 뭐라도 하지..."

"엄마가 공금이 (없는데) 많은 줄 잘못 아시는 것 같아..."


그렇다. 우리 엄마는 내가 보기에도 욕심이 좀 있는 편이다. 특히, 돈에 대한 욕심이 크다. 나 역시 엄마를 닮아서 무척이나 돈을 좋아한다. 그러고 보면,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가끔 엄마를 보면, 자식 돈을 좀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10년 전쯤, 남편이 지방 출장을 갔을 때 일이다.


"여보, 여기까지 왔는데 장모님 잠깐 뵙고 갈게!"

"그래? 나야 너무 고맙지!"


남편이 거제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친정집에 들렀다 오겠다는 연락을 해 왔다. 거제에서 친정집까지 가려면 그래도 한 시간은 더 가야 했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더 멀어진 셈이었다. 그런데도 일부러 친정엄마를 찾아간다는 말이 참 많이 고마웠다. 다음날, 남편이 엄마를 만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처갓집에 가서 보니 어머니가 안 계신 거야. 그래서 전화를 드렸더니 이웃집 마늘 논에서 품앗이 중이라고..."

"아, 그랬구나! 근데 당신이 거기를 어떻게 찾아가?"

"다행히 교회 근처라고 알려 주셨어!"

"하, 그랬구나!"


출처 픽사베이


남편이 해 준 이야기다. 마늘논을 찾아가 보니 여러 이웃들이 함께 마늘을 뽑고 있었다고 했다. 장모님과 함께 일하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리는데, 장모님이 몸빼(일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내면서 논두렁으로 걸어 나왔다고 했다.


"자네가 연락도 없이 어쩐 일로..."

"근처에 왔다가 올라가는 길에 잠깐 들렀습니다..."


 그러면서, 남편이 미리 준비해 간 용돈 봉투를 드렸다고 했다.


"이게 뭔가? 뭐 이런 걸 다..."

"맛있는 것 좀 사 드시고..."


그렇게 논두렁에서 잠깐 인사만 하고 남편은 돌아섰다고 했다. 그런데 한참 지나서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했다.


"자네가 아무래도 잘못 넣은 거 같아서... 봉투 속에 열 개가 아니고 아홉 개가 들어있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아, 잠시만요....!"


남편이 지갑을 보았더니, 십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이 지갑 가장자리에 '꽉' 끼어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누구보다 계산이 정확한(?) 장모님 성격을 잘 아는 남편은 그 길로 지체 없이 차를 돌렸다고 했다. 다시 그 마늘논으로 가서 나머지 십만 원을 마저 드리고 온 것이었다. 당시,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찌나 민망하던지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듣고만 있었다. 나는 이런 엄마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남편에게도 많이 부끄러웠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어서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한 번은 동생이 용돈을 드리고 갔을 때였다. 그때도 엄마는 봉투 속을 보고 곧장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왜 4만 원이냐! 니 5만 원 넣으려다 잘못 넣은 거 아니냐?'라고. 그렇게 엄마는 동생에게서 만원을 따로 송금받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식은 그렇더라도 '꼭, 사위에게까지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느꼈던 생각이다.


'휴... 우리 엄마를 누가 말려... 좀만 기다리지. 그 새(사이)를 못 참고... 전화를 해야 했을까'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엄마가 안쓰럽고 서글프기도 하다. 유독, 돈 앞에서 약해지고 다소 격하게 뻔뻔해지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엄마가 혼자만 아니었어도!', '키워야 할 자식이 이렇게 주렁주렁 달리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억척스럽게 변하지 않았을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엄마는 말소리도 크게 내지 않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엄마는 사는 내내 "돈돈!" 거리며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오래도록 나는 '엄마는 자식 돈을 쓰거나 받는 게 참 편해 보인다'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사위나 며느리들 앞에서 "돈돈" 거리는 엄마를 부끄러워했던 적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래서 엄마를 보면서 늘 이런 생각을 했다.


'어른 자리는 참 편한 것 같아. 그냥 받기만 하면 되니...'



 

올해 설날은 친정식구들이 우리 집에 모였다. 재밌는 것은, 설날이라서 다 모였지만 아들 결혼식 직후여서 그날의 주인공은 당연히 신랑신부였다. 더욱이 신혼여행을 막 다녀온 신랑신부가 준비한 선물을 오픈하면서 '하하 호호' 하며 웃다 보니 평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특히, 아들과 며느리가 시부모인 나와 남편 선물을 오픈할 때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선물을 준비하는 바람에 정말 기뻤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다소 힘든 해프닝이 터져서 그 상황을 수습하느라 내가 진땀을 빼기도 했다.


아들과 며느리가 시부모를 위해서 준비한 기발한 선물은 바로, 현금부채였다. 우리 친정식구들은 그 현금부채를 보기 전까지 다른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하하 호호' 하며 얌전히 웃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 현금부채가 등장해서 활짝 펼쳐지는 순간은 온 가족이 '우와!' 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나도 좋아서 박수를 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최근에 본 TV 프로그램에서 연예인 아들이 엄마에게 현금우산을 선물하는 것을 보면서 같이 박수를 쳤었다. 또, 그걸 보면서 저런 건 연예인들이나 하는 이벤트라고 생각했다.


"에구... 니들이 돈이 필요할 때인데. 근데 내가 이런 걸 받다니...! 호호호"

"엄마, 결혼식 마치고 남은 돈인데 부모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온 가족이 박장대소하며 웃은 게 몇 초나 지났을까?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단칼에 확! 잘라버리듯, 한 마디가 훅! 치고 들어왔다.


"니는 참말로 좋겠다! 내는 내 자식들한테 이런 걸 못 받았는데..."


엄마였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우리 모두는 완전히 얼어버렸다. 그것은 놀라서 얼어버린 게 아니었다.  그런 엄마를 보는 자식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는 게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며느리가 보고 있어서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정말 내가 엄마 때문에 미쳐 버리겠다!'는 말이 내 목구멍 안을 뱅뱅 맴돌았다.


그렇게 모든 웃음기는 싹 사라져 버렸다. 큰 남동생이 '아휴... 어머니, 왜 그러세요...'라고 한마디 했지만 나는 어떤 말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박사과정 공부 중인 아들과 아주 적은 월급을 받고 일하는 며느리를 아는 내가 자식이 준비했다고 이런 돈을 받는 게 반가울 리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렇지만, 결혼식을 마치고 부모에게 감사를 표현하려고 준비했다는 그 마음이 대단한 감동이 되어서 일단 기쁘게 받고 어떤 방법으로든 되돌려줄 생각이었다. 그런 어려운 손자 사정을 알면서도 외면한 채 그 중심을 보지 않고 분위기까지 망치는 엄마가 마음속으로 원망스러웠다. (지금 글을 쓰고 있지만 그 상황을 다시 떠올리기가 벅차고 괴롭다)


그래도 나는 누구도 나설 수 없는 이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아무도 모르게 아들과 며느리에게 양해를 구했다. 가장 먼저 나는 다양한 선물과 현금부채를 준비해서 '내 생애 처음으로 이런 재미와 기쁨을 누리게 해 줘서 고맙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내 부모인 할머니가 부러워하고 서운해하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현금부채를 다시 만들어서 할머니께 드리겠다고 했다. 그 방법은 부채 양쪽 끝에 오만 원권 두 장씩 이십만 원을 넣고 안쪽 다섯 칸에는 만원 권 두장씩 넣어서 삼십만 원을 만들었다. 그렇게 다시 만든 현금부채를 친정엄마에게 드렸다.


"엄마! 이거 갖고 남해 가서 동네 사람들에게 손자, 손자며느리가 이런 걸 해 왔다고 자랑하시면 되겠네!"

"오냐오냐! 호호호."


그렇게 나는 아들, 며느리가 준 현금부채 인증숏만 남기고 엄마 손에 잡혀 드렸다.




"엄마, 못 가서 죄송해요..."

"바쁜데 뭐 하러 와! 홍삼절편이 택배로 왔더니만..."


어버이날, 아들이 전화를 했다. 그러면서 주말 저녁에 식사를 하자고 것이다.


"엄마, 토, 일 중에 고르세요!"

"토요일이 좋겠다!"

"... 근데, 일요일 저녁은 안될까요?"

"... 왜? 아.... 장인 때문에 그렇지? 그럼 우리가 일요일로 하지 뭐!"


이렇게 아들 말이 매번 바뀐다. 이번에도 나에게 요일을 정하라고 해놓고, 다시 일요일로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데는 속사정이 있기는 하다. 아들 장인이 주중에 지방 근무를 하는데 일요일에는 지방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들은 이런 장인 사정을 고려해서 우리는 매번 일요일로 배정하고 있다. 문제는, 내가 가끔 이런 상황이 조금 불편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엄마, 근데 식사 메뉴는 뭐로 하는 게 좋아요?"


그 말에 얼마 전에 집에서 밥을 먹을 때 나온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날도 아들, 며느리가 저녁을 먹으러 온다는 말에 사실 내가 많이 힘들어했다. 매번 나가서 사 먹는 것도 만만찮아서 요리를 하려는데 음식 선택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들 입맛이야, 뭐! 내가 주는 대로 잘 먹으니 사실 중요하지도 않아서 내가 먹고 싶은 걸 해도 되지만, 아직 며느리 음식 취향을 잘 모르니 이건 뭐, 손님 치르는 것과 똑같았다. 그래서 생선회, 코다리조림에 밀푀유도 준비했다. 음식을 먹던 중에 아들과 며느리가 하는 대화를 들었다.


"생선을 먹기는 먹지만, 그래도 육식 파잖아!"

"아니야... 꼭 육식 파는 아니야..."


그러니 아들이 메뉴를 물었을 때, 나는 고기를 먹자고 했다. 어차피 며느리 취향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린이날 황금연휴 때 친정집에 다녀온 아들, 며느리가 고마워서 내가 저녁을 사려고 단골식당에 예약을 했다. 하지만 아들, 며느리가 굳이 어버이날 모임이라며 결국 우리가 대접받았다. 그렇게 시간 내고 돈 내서 부모를 챙겨주는 아들과 며느리가 정말 고마웠다. 그래서 나는 2차 커피를 사기로 하고 밥을 얻어먹어서 미안한 마음에 따로 고기 2인분을 포장해서 며느리에게 주었다.


"일 년에 한 번인데. 이건 저희가 대접해야죠!"

"아냐 아냐. 안 해도 돼! 나중에 돈 잘 벌면 그때 대접해 주라!"


출처 픽사베이


아들, 며느리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는데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묘하지만 확실히 느낀 건 부모가 자식에게 밥 한 끼 대접받는 게 결코 편하지도, 쉽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지금 와서 보니 자식을 낳으면서 부모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내 자녀를 키우거나 도우는 자리였지. 부모로서 대접을 받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변했다. 아들이 결혼해서 자동으로 부모자리(?)에 서 보니 이제는 내가 자녀를 키우거나 도우는 자리가 아니라 아들부부가 내가 그동안 엄마에게 했던 그런 자식 몫(?)을 해 주고 나를 대접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제 내가 진짜 부모자리에 있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부모자리를 경험한 소감을 묻는다면 내 대답은 이렇다.


"내가 자식일 때가 더 좋았다. 엄마를 보면서 어른은 다 편한 것 같았는데, 더 어려운 자리였다!"라고.


갑자기 친정엄마가 떠올라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 미안해요... 자식한테 받으면서 살아온 그 세월 동안 엄마의 그 속은 얼마나 새카맣게 타 들어갔을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그리고 자식에게 뭐라도 받는 게 결코... 마음 편하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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