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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나도 이제야 어른이 되는 걸까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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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페르소나 May 06. 2024

아버지! 못 해 드린 것만 생각나네요.

나도 이제야 어른이 되는 걸까

실제 미국에서 있었던 일 하나를 소개한다.

"아버지를 팝니다. 만 달러에 아버지를 사 갈 사람은 전화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문 광고란에 '중풍과 치매로 병석에 누워 계시는 아버지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서 판다'는 내용이 실린 것이다. 광고를 보고 한 젊은 남자가 전화를 해 왔고 광고를 낸 사람은 환자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으니 일주일을 더 생각해 보길 권유했다고 한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그 젊은 남자가 다시 전화를 해 왔다.

"당신의 아버지를 사서 모시기로 저희 부부가 합의를 했습니다."

"특별한 이유와 조건이 있나요?"

"저희 부부는 고아원에서 부모 얼굴을 모르고 자랐어요. 지금은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나름 행복한 가정을 살고 있는데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며 모시며 살 수 있는 분이 계시면 좋겠습니다. 아이들도 좋아하고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당신의 아버지를 친아버지처럼 모시면서 효도하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팔고 사는 거래는 성사되었다. 젊은 남자는 부푼 마음으로 비록 돈으로 샀지만 진심으로 아버지를 잘 모시기 위해서 만 달러를 가지고 주소지로 찾아갔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미국에서도 부자들만 모여 사는 타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주소에 적힌 집은 집안에 하인들도 있고 수영장이 있는 호텔처럼 잘 꾸며진 집이었다. 그러면서 젊은 남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니, 이런 부자가 왜 자기 아버지를 판다는 것일까?'

그런데, 더 기가 막히는 일이 벌어졌다. 그 집에서 나온 사람은 중풍과 치매가 든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아주 건강하고 부유한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내가 그 광고를 낸 사람입니다. 내가 나이가 많고 자식이 없어서 자식이 될만한 착한 사람을 구하려고 거짓 광고를 냈습니다."

"네? 뭐라고요?"

그리고는 그 할아버지가 마치 진짜 자신의 아들에게 하는 말처럼 따뜻하지만 명확하게 말했다.

"이제 너는 내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되었으니 이 집을 비롯한 모든 내 재산을 너에게 주겠다!"

언제부턴가 내게 좀 희한한(?) 습관이 생겼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희한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기에 이렇게 표현해 본다. 습관이라고 붙이기에는 애매한 행동이지만 아주 오랜 기간 내내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습관이 된 걸로 믿게 되었다. 그 습관은 바로 어느 음식점을 가든 맛이 있다 싶으면 내가 먹은 음식을 1인분 추가해서 포장 주문하는 것이다. 만약에 음식이 내 입에 맞지 않으면 하다못해 계산대 앞에 놓여있는 두부과자나 센베이(전병) 과자 또는 뻥튀기라도 꼭 사 오는 편이다.

사실 이 습관이 시작된 것은 함께 사는 시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삼십 년 전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아버지는 불편한 몸을 질질 끌듯이 이끌고 반려견과 함께 동네 산책하기를 무척 좋아했다. 그러다가 팔십 대 중반을 넘어서니 호흡마저 가빠지면서 외출을 힘겨워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창을 통해서 바깥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아버지가 아는 이웃이 골목을 지나가면 창문을 세게 두들겼다. 그리고는 손을 흔들어서 인사를 했다. 창밖에 있는 이웃은 아버지 소리를 듣지 못하는데 큰 소리로 말도 했다.

"박사장! 나야 나!"

출처 픽사베이

지금도 그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아려 온다. 내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떠올라서 더 그렇다. 아버지가 창문을 두들기며 이웃들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마치 '내가 아직 이렇게 살아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아부지, 저 다녀왔어요!"

"아부지, 이것 좀 맛보세요!"

"아부지, 이거 저 혼자 먹기 미안해서 따로 좀 싸 왔어요!"

이렇게 집에만 앉아서 가족들이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는 시아버지를 위해서 내가 혼자 집 밖을 나간 날은 꼭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드시면 좋아할 모습을 생각하며 비닐봉지를 달랑달랑 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 효과'라는 게 있다.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더 자녀의 심리적 성장, 가치관 등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언어, 사회성 그리고 정서와 습관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한마디로 아버지의 태도가 자녀에게 그대로 학습되어 각인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함께 사는 '시아버지 효과'도 영향을 주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며느리도 자식이니까!"

"어딜 그렇게 쏘다니다 와?"

"저녁때가 되면 집에 기어들어 와야지!"

"나는 이 집에 산(살아있는) 사람도 아녀!"

시아버지가 우리에게 늘 했던 말이다.

"아부지! 내가 어디 가서 놀고 온 게 아니고, 강의하고 왔다구요!"

내가 집을 나갈 때 '오늘도 전라도 광주 신세계백화점까지 강의하고 와야 하니 늦다'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누가 직장을 다니든 내가 저 지방에서 강의를 하고 오든 말든 시아버지는 상관없이 큰 소리를 지르곤 했다. 정말 많이 힘들었다. 그러다가 언젠가 신기한 일을 겪으면서 내 생각이 완전히 바뀌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날은 하루 종일 아버지와 함께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하루 중 7, 12, 5만 잘 챙기면 입에 미소가 도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7, 12, 5는 아버지 식사 시간이다. 아침은 7시, 점심은 12시, 저녁식사는 5시다. 이것만 잘 챙겨도 된다. 그렇게 아버지와 함께 때 맞춰서 밥을 먹고 대화도 하면서 지내다 보니 문득 아버지가 우리에게 쏟아냈던 말들이 이렇게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 혼자서 종일 집에 있는 거 알고는 있지?"

"너희들은 나가서 돌아다녀 좋겠다. 나는 참 외롭다!"

"내가 아직 살아있어! 나를 좀 봐주라!"

그날 이후 나는 아버지가 우리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나 외롭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들렸다.

범죄학 용어에 '로카르의 교환 법칙'이 있다. 접촉하는 두 물체는 반드시 서로에게 흔적을 남긴다는 법칙이다. 이는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며 직접 접촉하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마음속에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나에게 시아버지가 그런 것 같다.

시아버지는 중풍으로 삼십 년을 몸 반쪽이 굳은 채 살았다. 손은 주먹을 쥔 채 굳어서 펴지지 않고, 팔은 늘 접혀 있다. 다리는 질질 끌듯이 걷는데 앞으로 걷지 못하고 옆으로 바다게걸음을 하며 겨우겨우 조금씩 이동할 수 있다. 또, 얼굴 절반이 굳어서 한쪽 눈은 반쯤 감겨 있다. 그 눈에 낀 눈곱을 물수건으로 닦아내던 일. 또 비 오는 날이면 부침개를 부쳐 드리면 그렇게 맛있다고 웃으시던 그 많은 기억들. 그렇게 시아버지는 내 마음과 영혼에 많은 흔적을 남기며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여놓고 떠나셨다.

"나는 애미 네가 만든 음식은 다 내 입에 딱 맞는다!"

며칠 후, 어버이날이다. 그래선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아버지를 위해서 늘 사 온 비닐봉지 속 음식과 과자들이 그때는 '아버지를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떠나고 나니 그게 아닌 것 같다. 내가 부모를 위해서 한 행동들이 어쩌면 '자식인 내 마음 편하려고' 한 게 아닌가 싶어서다. 그리고 많은 후회가 뒤따른다.

'좀 잘할걸... 좀 더 따뜻하게 해 드릴 걸... 좀 더 모시고 다닐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