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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Apr 15. 2024

“그 꼴이 너무너무 보기 싫은 거야! ”

나도 이제 어른이 되는 걸까

우스갯소리로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은 학사, 석사, 박사도 아닌 밥사라고 한다.  자주 밥 사는 사람을 학위에 빗대어 밥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요즘 밥사로 살고 있는 중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인기가 남달리 생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1월에 아들 결혼식을 치르고 나서 예식에 참여해 준 사람들을 따로 만나서 감사인사 겸 식사 대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도 아줌마 다섯이 모여 식사를 했다. 이들은 7년 전 1년 동안 함께 성경공부를 했던 사이다. 말이 1년이지. 매주 모여서 공부하고 식사 교제를 하다 보니 어느새 모를 것 빼고는 다 아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이 모임은 만나러 가는 발걸음부터 가벼울 만큼 참 편하다. 게다가 우리 중에는 나이차가 좀 나는 언니가 둘 있는데, 그 두 언니끼리 케미가 기가 막히게 재밌어서 우리 동생들 셋은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배 가죽이 당기도록 웃다가 헤어지기 일쑤였다.


“며느리가 생기니 어때?”

“하, 결혼식 전에는 많이 어색할 줄 알았는데 지금은 매우 좋아요!”

“그래, 내 식구다 싶으니까 그런 거야!”

“맞아요. 희한하게 내 식구가 된 것 같아요!”


그때, 우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언니가 말했다.


“환영해! 시어머니 클럽에 들어온 것을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

“호호호. 축하드려요. 짝짝짝!!!”


그렇게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시어머니클럽(?)에 자동으로 가입(?)이 됐다. 가입과 동시에 먼저 시어머니클럽에 가입한 언니 둘이서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 주었다. 그러면서 아들 며느리가 집에 오면 참 좋은 반면 나름 불편한 것도 있다고 했다. 그중 가장 힘든 게 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왕언니는 애들이 온다는 연락이 오자마자 식당 예약을 한다고 했다. 애들에게는 다시 연락해서 그 식당으로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직 시어머니클럽 신입인 나는 아들 부부가 집에 올 때마다 내가 밥을 해서 먹었기 때문에 그 이유가 궁금했다.


“요즘 외식비가 너무 올라서, 매번 식당에서 사 먹기가... 언니네는 6명씩이나…”

“괜찮아, 평소 내가 아끼면 되지. 그게 훨씬 내 마음이 편해서 그래! “


출처 픽사베이


그러자 모두 입을 모아서 한 말이다.


“그 집 며느리들은 얼마나 좋아. 설거지도 안 하고!”

“호호호. 맛있는 거 골라서 먹고! 역시! 시어머니가 돈이 많아야 해!”


“야! 돈이 많긴 뭘 많아! 며느리들 꼴 뵈기 싫어서 그러는 거야!

“네?”


사연인즉 이렇다. 왕언니도 처음부터 식당에 간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집에서 고기를 굽기도 하고 생선회를 시켜서 먹기도 하고 거의 집에서 준비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충격적인 모습을 보고는 장소를 바꿨다는 것이다. 그날도 왕언니 부부와 두 아들과 며느리, 여섯 명이 집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왕언니는 과일을 깎기 위해서 거실 소파로 왔다고 했다. 당연히 설거지는 그때까지 몇 번 했던 며느리가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두 며느리가 왕언니 옆에 딱 붙어 앉고는 계속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때, 아들 둘이 식탁을 정리하더니 설거지를 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아마도 그렇게 하기로 아들들과 며느리들끼리 모종의 합의가 있지 않았나 싶었다고 했다. 문제는 아들들이 왕언니 집에 살면서 제대로 설거지를 해 본 적이 없어서 계속 물어보고 하니, 왕언니 남편까지 합류해서 세 남자가 설거지를 했다는 것이다. 언니는 그 모습이 살면서 처음 보는 신세계였다고 했다. 이후, 며느리 둘은 밥을 먹자마자 거실 소파에서 쉬고 아들과 남편은 설거지 담당이 된 것이었다.


"야, 내 남편이 언제 설거지를 해 본 사람이냐?!"

"나도 안 시켜 본 아들 둘하고 남편이 줄줄이 서서 설거지를 하는 데, 정말 그 꼴이 너무너무 뵈기가 싫은 거야!"

"지들끼리 살 때는 뭘 시켜도 내가 안 보니까 괜찮지!"


이 이야기를 듣고 역시 '시어머니는 시어머니고, 며느리는 며느리인가' 싶기도 해서 씁쓸했다.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라서 뭐라고 말할 수가 없겠다. 하지만 그냥 어쩌다 며느리가 좀 꼴 뵈기 싫을 때가 있다면 내가 시어머니가 아닌 친정엄마라는 위치를 한번 조정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딸이 절대 될 수 없지만, 만약 딸이라고 생각해서 부정적인 관점과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들이 선택한 방법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내 아들이 저리도 좋은 가 보다'하고 생각하면 어떨까. 이런저런 생각이 그럴듯 해보이지만 나도 자신은 없다. 막상 그 풍경이 내 눈 앞에 닥치면 나도 그럴 것 같기도 했다.


나도 돌아오는 길에 골똘히 생각했다.


'나는 언제 내 며느리가 정말 꼴 뵈기 싫었나?'




얼마 전, 남편이 다닌 회사 근처 맛집을 다녀왔다. 을지로 골뱅이 맛집이다. 남편이 데려가는 남편의 과거 맛집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보통 골뱅이 맛집은 늦은 오후와 저녁에 술 마시는 곳인데, 우리 부부는 3시 30분 오픈하자마자 가서 골뱅이에 소면만 먹고 온다. 아마도 내가 또 남해 바닷가 출신이다 보니 해산물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지 가끔 그 맛이 생각나면 찾게 된다. 그렇게 꾸준히 가다 보니 사장님도 우리 부부를 잘 알아서 도착하면 골뱅이와 소면을 내주신다.


출처 픽사베이


그날도 늦은 점심으로 아주 맛있게 먹고 있는데, 남편이 말했다.


"여보, 기억나지?"

"뭐?"

"여기서 장민이 처음 만났잖아!"

"하지 마! 그날 생각하기 싫으니까!"


그렇다. 여기 골뱅이 맛집에서 지금 며느리가 된 장민이를 처음 만났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서 그냥 과거 한 페이지로 남기고 사는데 이 남편이 내 마음을 슬쩍 건드린 것이었다. 사실, 그날 내 마음을 생각하면 장민이 첫인상이 너무 안 좋아서 '오늘날 과연 내 며느리가 됐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 그렇다고 해서 그날 장민이가 큰 실수를 한 게 아니다. 문제는 나였다.


나는 그때만 하더라도 아들 여자친구가 궁금하지 않았다. 있으면 있는 거라는 식이었다. 아들이 27세인데 '굳이 내가 여자친구를?' 생각해서 따로 만나고 싶지는 더더욱 싫었다. 그저 애들끼리 사귀는 문제라고 구별 지었고 마찬가지로 미래 며느리 생각까지는 아예 하지 않을 때였다. 그러니 어떤 여자친구가 나타나더라도 내 마음이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3, 4년 전이다. 한여름이었던 어느 날, 남편이랑 내가 골뱅이무침을 먹으려고 버스로 을지로로 나가고 있었다. 그때 아들이 빨리 마쳤다고 하면서 저녁을 뭐 먹냐고 묻는 것이었다. 우리는 상황을 말했고 아들도 방향을 바꾸어 을지로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가족 셋이서 번개팅 외숙이 된. 골뱅이무침에 소면, 달걀말이와 어묵국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남편과 아들은 맥주를 한 잔씩 해서 기분이 약간 들뜬상태였다.


"엄마, 아버지! 여자 친구가 배고프다고 해서..."

"어, 그래?! 여기 오라고 해!!!"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술집이야 술집!"


주변에도 사람이 많아서 시끄럽고 정신이 없는데, 여기 술집에서 생전 처음 보는 아들 여자 친구를 만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뭐 반대를 했으니, 설마 걔가 여기가 어디라고 오겠어?"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만 술을 안 마셔서 멀쩡한 사람이었고, 남편과 아들은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여서 이런 꼴(?)을 아들 여자 친구에게 보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문제는 내 아들이었다. 아들이 기분이 '꽐라꽐라' 좋아서 지들끼리(?) 톡을 계속 주고받은 모양이었다. 한 30분쯤 지났을까?


"아.. 안녕하세요..."


나는 귀신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는 아들을 향해 눈으로 총을 쏴 댔다. 눈으로 '너 이 짜식, 집에 가서 두고 보자!!!'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이 문제가 아니라 남편이었다. 아들 여자 친구가 자기 눈앞에 나타나니 그냥 정신줄을 놓은 것 같았다.


"그래그래! 어서 와. 네가 장민이구나!"


출처 픽사베이


그때부터, 내가 모르는 세 인간(?)들이 내 눈앞에서 술잔을 부딪히며, '하하, 호호!', '짠! 짠!' 하는 것이었다. 정말 내가 먹이고 입힌 두 남자가 그렇게 꼴 뵈기 싫은 적이 있었나 싶었다. 세상에! 내가 여기 이 아들 하나 키우려고 어떻게 살았는데, 나를 술집에서 아들 여자 친구를 처음 만나게 하는지. 너무너무 기가 차고 화가 났다. 그러니 그 여자친군지 뭔지 여자애가 이쁠 수가 없었다. 처음 만난 내 앞에서 내 남편과 술잔을 '짠!' 부딪히면서 '홀짝홀짝' 어찌나 술도 소주, 맥주를 섞어서 잘 마시던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던 일이었다. 실로 충격이었다.  내가 그 꼴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너는 절대로 내 며느리 감은 아녀...!"

"다시는 니 꼴 볼 일이 없을 거야! 아!!!"


그래서 이 일은 그동안 남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았고 못했다. 어쩌다 내 며느리가 될 까봐...

그런, 그랬던! 걔가 지금 내 며느리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내 며느리가 된 장민이를 너무도 이뻐하고 산다.


"어, 그래. 장민아~~~ 연락 줘서 고마워~~~~~~~~~ 얼른 푹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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