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어른이 되어 가는 걸까?
며칠 전 아들 결혼식에 참석한 지인을 만났다.
"어머, 아들이 참 잘 생겼더라고요!"
"고마워요. 호호호. 근데 자세히 보면 아닌데..."
"키가 크고, 아주 잘 생겼던데요!"
"그거야 뭐. 키는 나 닮아서 크지!
아들은 흔히 말하는 외탁이다. 생김새나 체질이나 성질 따위가 외가 쪽을 닮은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나를 참 많이 닮았다. 우선 아들 키가 186cm인데 나도 키가 172.5cm이다. 여자로서는 징그럽게 큰 편이다.
나는 어릴 때 매번 맨 앞에 줄을 서서 키순으로 1번이 되었다. 중고등학교도 마찬가지로 키가 커서 그런지 교장선생님이나 선생님 눈에 잘 띄어서 이것저것 시키는 바람에 뭐라도 해서 귀염도 많이 받았지만 성격상 하기 힘든 일도 많이 해야만 했다. 가령, 학교 주요 행사에 앞장서서 대표인사를 하거나 연대장이나 반장도 시켰는데 이건 내가 남보다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로 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큰 키가 너무 싫었다.
내가 중학생일 때 일이다. 엄마는 내가 시험을 잘 보고 성적이 좋으면 장날 시장에서 옷을 하나씩 사 주었다. 그때 유행한 옷 중에 디스코바지가 있었는데 한 번은 그 바지를 엄마가 최신 유행이라면서 사 주었다. 디스코바지는 힙 부분은 사이즈가 넉넉한데 발목으로 내려갈수록 폭이 좁아지고 길이도 다소 짧은 편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디스코바지만 입고 나가면 사람들이 장난치면서 놀리곤 했다.
"니 돈이 모자랐나? 와 그리 바지가 짧노!"
"아이고, 종아리가 다 나올라카네. 다리 시려서 우짜노! 내 돈 좀 보태 주까?"
그 말에 발끈하며 얼른 그 자리를 피하곤 했다.
"아이라예! 이게 최신 유행이라고예!"
게다가 키가 크면 어디를 가든 눈애 잘 띄었다.
"니 어제 그기 뭐 하러 갔노?"
"니 진주시장에 돌아댕기는 거 내 봤데이!"
키가 크다 보니, 남들보다 목이 하나 더 위로 툭 튀어 나온 탓에 어딜 가든 금방 소문이 났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노는 것처럼 다 아는 것이었다. 땅을 보면서 걷는 것도 아니고 앞을 보면서 걸어 다녔을 뿐인데 나는 그들을 못 봐도 멀리 있던 그들은 나를 본 것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너무 불편했다.
그래도 아들은 다행이다. 남자니까! 누군가 말했다. 남자는 일단 키가 크면 하나 먹고 들어간다고. 다들 그렇게 말해 주니까! 그걸로 키라도 좋은 유전자를 물려준 걸로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니 왜요? 아들이 얼굴도 잘생겼던데요!"
"아... 멀리서 본 거 아냐?"
"호호호. 왜 자꾸 그래요? 피부도 어쩜 너무 좋더만요!"
"아니야! 키 크고 피부가 하얗잖아. 그러면 다들 잘생겼다고 하더라! 호호호."
그렇다. 아들과 내가 가끔 미인, 미남으로 착각당하는 것은 큰 키와 하얀 피부 이 두 가지 덕분이다. 이 대목에서 내 별명을 고백하고자 한다. 내 별명은 100미터 미인이다. 멀리서 보면 좀 볼만한데, 가까이 다가올수록 생각보다 실망이라는 뜻이다. 옛낢에는 나같이 키큰 여자가 흔하지 않었는데 키 작은 친구들이 내 긴 길이에 빗대어 장난처럼 붙인 별명이다. 그러고 보면 '뭐! 지금도 자주 듣는 편!'이긴 하다. 아직도 이런 말을 자주 들으니 말이다.
"아, 멀리서 보고 나는 누군가 했네!"
"야! 멀리서 보니 다른 사람 같더라!"
아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아들도 100미터 미남인 것 같다. 아들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지인들 말에 의하면 대개 결혼식을 앞두고 신부들은 피부관리와 마사지를 받는다고 했다. 또, 신부들이 신부엄마까지 같이 예약해서 피부관리를 받는다는 것이다. 나도 마사지가 받고 싶어서 남편에게 말했더니 '피부도 좋구먼! 혼주가 무슨 그런 걸 하냐!'라고 핀잔을 주는 바람에 포기했었다. 그리곤 얼굴에 붙이는 팩을 자주 붙였는데 가끔 아들도 함께 했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아들이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하나하나 뜯어보니 특별히 잘 생긴 부위가 없었다.
"야! 니도 내랑 똑같데이! 니도 멀리서 보면 쫌 잘생긴 것 같데이!"
'엄마 아들이니까 당근! 닮았겠죠? 하하하!"
그렇게 아들과 나는 참 많이 닮았다. 우리는 좀 웃기고 좀 슬프지만(?) 100미터 밖에서만 빛을 발하는 100미터 미인과 미남이다. 키 크고 피부 하얀 거! 그걸로 우리는 멀리서나마 미인, 미남 소리를 듣고 사는 중이다.
"엄마! 엄마... 머리가 또 아파요!"
"야는 어째, 머리 아픈 것까지 지 할매를 저리 쏙 빼닮았을꼬!"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늘 두통을 달고 살았다. 할머니도 자주 머리가 아파서 힘들어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내가 머리가 아플 때마다 할머니가 먹는 약을 나에게도 먹였다. 그 약을 내가 어찌나 자주 먹었던지. 약 이름이 뇌선이라는 것까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이 가루약은 한 포씩 종이에 접혀 있었는데 할머니는 어른이라고 한 포를 전부 다 먹었고 나는 3분의 1 정도씩 먹였다. 이 약을 먹고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서 한숨 자고 일어나면 다시 말짱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여기저기 아플 때마다 할머니 약통을 찾아서 나에게 먹였다. 그때마다 엄마는 내가 할머니 체질을 닮아서 그런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또 내가 할머니 닮은 게 있었다. 이것은 밥을 먹기 전에는 없는데 밥만 먹으면 생기는 증상이다. 바로 방귀다.
할머니는 양반집 규수로 흔히 말하는 가정교육을 좀 받은 분이었다. 할머니는 성격이 조용하고 말수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금 생각해도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동네 할머니들이 거의 매일 할머니 방에 와서 이야기도 나누고 간단한 식사를 하고 가기도 했다. 그야말로 일 년 사시사철 할머니 방에는 늘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때문에 엄마가 늘 바빴다. 최소한 동네 할머니들에게 국수라도 끓여서 대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손님들이 가고 나면 태도가 변하는 게 있었다. 우리 4남매는 그 모습을 정확히 기억한다. 할머니가 앉은자리에서 살짝이 한쪽 엉덩이를 들면 우리는 '우와! 시작이다!' 하면서 큰소리로 웃었다. 할머니가 엉덩이를 들면서 방귀를 '뿡! 뿡!" 뀌었기 때문이다. 우리 4남매가 웃는 소리보다 더 큰 방귀소리였다.
"할머니! 할머니는 방귀소리가 왜 이리 커요?"
"나도 모르제. 이리 뀌고 나면 시원하고 살 것 같데이. 니도 참으면 병든 데이!"
"아 근데 왜 방귀를 우리가 있을 때만 뀌어요? "
"사람들이 들으면 큰일 나제. 이런 방귀소리를 들으면 안 되제!"
나도 이런 할머니를 닮아서 남들에게는 철저하게 내 방귀소리를 들키지 않고 잘 숨기고 살고 있다. 그런데 아들이 결혼 전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엄마! (결혼해서) 한 달에 한 번은 집에 와서 잘 거예요!"
"왜? 아니야. 괜찮아! 서로 불편하지..."
"뭐가 불편해요? 장민이도 우리 집에 자주 와야지..."
"야! 내가 장민이가 있으면 방귀를 맘대로 못 뀌잖아!!!"
며칠 전 아들이 전화를 했다.
"엄마! 내일 집에 들를 거예요!"
"어? 어쩐 일로 낮에?"
"아 근처에 출장을 가는데 잠시 가려고요!"
"그래그래! "
아들이 온다는 그날, 나는 점심 약속이 있어서 아들보다 늦게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자마자 어딘가 꼬릿꼬릿 익숙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아! 또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방귀를 뀐 냄새였다.
"야! 니는 집에 오는 길에서 방귀를 뀌어야지!"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뀌어요!?"
"근데, 집안이 더 냄새가 나는 것 같네!"
"아, 엄마! 1주일 동안 못 쌌는데... 집에 와서 시원하게 큰일을 봤어요! 하하하!"
지난 1월 말에 결혼식을 올린 아들은 현재 신혼 2개월을 막 지나고 있다. 그런데 몇 주 전에 아들이 장민이랑 같이 집에 왔을 때 아들 얼굴이 노랗게 떠 있는 것이었다. 얼굴이 왜 그런지 물어보니 아들이 작은 소리로 신혼집에서 큰일을 못 봐서 그렇다고 했다. 장민이가 있는 집안에서 볼 일을 못 본다는 말이다. 장민이가 그때서야 아들 이야기를 듣고 크게 웃으면서 자기는 일찍 퇴근을 해서 아들이 오기 전에 해결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아들은 장민이 보다 더 늦은 밤에 오기 때문에 그게 힘들었던 것이다.
"야! 그럼. 아직 방귀도 안 텄어?"
"네..."
노랗게 뜬 아들 얼굴을 보고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그동안 누구에게도 풀어놓지 않은 사실을 고백했다. 내가 '장트라볼타'라고! 장에 트러블이 자주 일어나는데 그보다 더 심하게 자주 나오는 게 방귀라고 내 입으로 부끄럽지만 말했다. 그래야 그동안 방귀를 못 뀌어서 노랑병에 걸린 내 아들이 참다가 실수를 하더라도 시어머니 닮아서 그런가 보다 할 것이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동안 숨겨 온 내 예민한 장과 큰 방귀소리를 솔직하게 말한 것이다.
그러자 며느리가 아들을 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방귀 뀌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