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녀는 곧 며느리가 된다. 그러니까 한 달후면 나는 그녀의 시어머니다. 오늘, 그녀와 아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점심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전화가 오는 걸 보고는 ‘몇 시간이면 만날 텐데 급한 일이 생겨서 못 온다는 전화인가?’ 생각이 들었다.
“어, 그래? 장민아!”
“어머니…”
“…!!!”
순간, 내 손에서 휴대전화가 툭 떨어졌다.
‘아! 어머니…!'란다.
나를 부르는 그 단어에 너무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얼마나 놀랐던지.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고 내 머릿속은 하해 졌다. 그렇지만, 얼른 떨어뜨린 휴대전화와 정신을 움켜잡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답했다.
“그래, 장민아! 무슨 일이 있니?”
“오늘 (신혼집) 에어컨 설치를 하는데요. 기사님이 지금 오셔서…”
상황인즉 에어컨 설치 담당 기사님들이 벽에 구멍을 뚫는데 상의할 부분이 있어서 연락을 해 온 것이었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면서 내가 ‘어머니’란 단어에 받은 충격이 조금 완화되는 듯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당장 에어컨 설치라는 긴급한(?) 상황을 해결해야겠기에 잠시 잊힌 것이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남편이 내게 물었다.
“여보, 어때? 장민이가 당신을 어머니라고 처음 부르던데!”
“아… 그렇지… 그러게…”
“근데, 왜 핸드폰을 던지고 그래? 하하하!”
“뭘 던져! 놀라서 손가락에 힘이 빠진 거야…”
“인사 잘해서 굶어 죽는 사람 없데이!”
“저어 기서 어른 그림자만 보이도 먼저 고개 숙이래이!”
“말부터 먼저 하는 (사람이 사는) 집에는 놀러도 가지래이!”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엄마. 이 세 분은 내가 글을 몰랐을 때부터 이렇게 말하며 가르치셨다. 정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이 중, 세 번째는 잘 몰라서라도 지킬 수가 없었다. 요즘은 말부터 먼저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가릴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나는 특별히 남보다 잘하는 게 없지만 인사 하나만큼은 잘하려고 노력했고, 어른을 잘 섬기려는 마음은 늘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병원 진료대기 중 처음 만난 할머니인데 몇 번의 대화가 오가면 곧장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동네 이웃 할머니는 당연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어디 가세요?”
심지어 버스 안에서 만난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무슨 일로 서울에 오신 거예요?”
내겐 그렇게 쉬웠다. 누구든 엄마뻘(?)되는 할머니라면 어머니라고 부르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선지, 처음 만난 어르신들이 나에게 ‘성격이 좋고 인사성이 밝다!”라고 말한 것 같다. 이런 내게도 정말(진실로) 어머니란 말이 나오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 삼십 년 전, 결혼한 직후였다.
“저기… 이건 어떻게 할까요?”
“여기… 좀... 봐주세요.”
‘저기, 여기‘는 시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해서 나오는 첫마디였다. 그 말조차 안 나올 때는 시어머니가 나를 쳐다볼 때까지 간절히 바라보며 서서 기다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며칠 후 친정엄마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 ’엉엉‘ 울면서 했던 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주 생생하게 기억한다.
“엄마! 넘의(남의) 엄마를 우찌 어머니라 카노!”
“야가 이게 믄 소리고? 어머니라 캐야지!”
“내는 못한다! 죽겄다... 참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