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어른이 되어 가는 걸까?
“여자들은 모이면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놀아? “
“왜? 궁금해? 호호호”
“아니, 얼마나 재밌으면 하루 종일 같이 있나 해서 “
“뭐, 남자들이 생각할 때 쓸데없는(?) 얘기도 많이 하지. 근데, 오늘은 우리나라 미래에 대해서 대화를 많이 나눴지!”
“???”
사실이다. 그날은 주제가 좀 달랐다. 며칠 전 뉴스에 이슈가 된 문제에 대해서 신랄한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다. 바로 출산율에 대한 이야기였다. 일부러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고 오늘 모인 사람 중에 2월 말경 출산을 앞둔 딸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축하 인사도 함께 말이다.
“언니! 축하드려요! “
“호호호, 축하축하! 드디어 할머니 되시는 거네!”
“딸 부부가 애국자야! 출산율 올리는데 한 몫했어!”
“그러게. 우리나라 출산율이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랑 같다고 하니, 완전 애국자 맞지!”
이렇게 우리는 축하와 함께 덕담을 나누었다. 그런데, 축하를 받은 주인공(?)이 꺼낸 이야기에 모두 놀라서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 애들은 둘 다 혼인신고를 안 했어…“
“네? 둘째는 얼마 전에 결혼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첫째는 며칠 있으면 곧 출산인데 혼인신고를 안 하다뇨?”
“애들이 고민해서 결정한 모양인데, 첫째가 미혼모로 출생신고를 한다고 하네.”
“아니!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데. 미혼모라니 말도 안 돼요!”
사연인즉 이렇다. 첫째 딸은 누구나 브랜드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에 다닌다. 사위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결혼 4년 차 부부로 알뜰히 가정을 꾸리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덧 입사한 지 몇 년이 지나다 보니 진급과 함께 고액연봉자가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부터라고 했다.
첫째 딸이 현재 전세자금에 대출을 더해서 자가를 마련하려고 하는데, 부동산 대출금 이율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한다. 짧게 설명하기를, 대출 금리 1%대와 3% 이율 차이라고 했다. 그래서 고액연봉자인 두 사람은 결혼을 결정한 처음부터 ‘생애 첫 내 집’ 마련을 위해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아이 출생신고를 미혼모인 상태에서 한다는 것이다. 결국, 결혼을 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것, 자녀 출생도 미혼상태에서 하는 것은 모두 ‘내 집 마련’을 위한 전략인 셈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이런저런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아, 세상 살기 참 정말 어렵구나…“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남편과 잘 살고 있는데, 미혼모라니 말도 안 돼…”
“장모님! 이 사람이 혼인신고를 안 해 줍니다…”
“이건 또 무신(무슨) 일이고? 당장 바꿔보게! “
남편이 친정엄마에게 나를 고발(?) 한 것이다. 그렇다. 나는 진심으로 혼인신고를 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는 호주법 폐지 전이어서 여자는 혼인신고와 동시에 본적부터 바뀌어 버렸다. 내 본적지가 삭제되고 남편 본적지로 변경되는 것이다.(본적은 지금의 등록기준지로 변경되어 표기되어 있다) 그래서 혼인신고를 왜 안 하냐는 엄마에게 ‘나는 우리 아부지 자식이고 우리 집에서 태어났는데 우리 집 주소가 없어진다 ‘며 대들었다. 그러자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야는, 니가 신고 안 하면 여자만 손해인기라. 쎄빠지게(혀가 빠지도록) 남편 뒷바지하는데 와 신고를 안 하고 사노. 니 참말로 미쳤나!”
2024년. 드디어, 아들 결혼식 D-1.
“엄마, 오늘은 안 나가고 휴가를 냈어요! “
“오, 잘됐네. 편히 준비하면 되겠구나!”
“우리 브런치 하러 갈까요?”
“좋지!”
그렇게 집 근처 별다방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미혼상태였던 아들과 우리 부부 오롯이 셋이서 먹은 마지막 브런치였다. 그날, 브런치 식사가 마무리될 때쯤, 남편이 아들에게 일정을 물어보았다. 차 없는 아들을 (결혼 전날이니 바쁜 일이 많을 것 같아서) 태워주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느닷없이 한 말에 우리 부부는 꽤나 많이 놀랐다. 예비 바깥사돈이 아들과 장민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혼인신고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에겐 좀 놀라운(?) 소식을 아들은 아주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장민이 아버지가 휴가를 내셨다고, 태워다 주신대요! 하하하!”
“아, 그렇구나!"
하지만, 내 마음의 소리는 이랬다.
'내일이 결혼식인데, 뭐가 급해서 하필 오늘 혼인신고를…!'
그렇게 아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혼인신고가 참 어렵더구먼. 내 자식은 뭐 이리 쉽노!'
‘에라이, 키우기도 쉬웠던 놈, (며느리한테) 주기도 쉽네. 까르르르! “
‘그래, 사람 일 아무도 몰라! 아무튼 내 아들은 미혼부는 안 되겠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