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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Mar 11. 2024

“시엄마가 신혼부부 가운데 끼어서 잤다고?”

나도 이제 어른이 되는 걸까


“결혼식 준비하느라 바쁘죠?”

“아니야! 내가 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


아들 결혼식은 1년 전에 확정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이렇게 물어 왔다. 사실 ‘나도 이렇게까지 가만히 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한가할 줄은 미처 몰랐다. 다른 신랑신부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아들과 예비며느리가 웨딩플래너의 선두 지휘 아래에서 ’척척‘ 알아서 다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꼭! 한 번, 혼주 한복을 고르기 위해서 움직인 게 전부였다. ‘아들 엄마라서 그런가’ 해서 최근에 딸 결혼식을 치른 지인에게 물어보았다.



"언니도 그랬어요? 나는 아들 측이라서 그런지. 딱히 할 게 없네!"

"딸도 마찬가지야! 지들이 다 결정하고. 결혼식 날짜, 장소 다 통보받았어. 카드만 주면 되더라고!"

"아… 그렇구나…"

“맨날 ‘띵! 띵!’ 카드 긁는 소리만 들려! 호호호"


라떼는 내 결혼식에 친정엄마가 혼사 모두를 주관했고, 따르기만 하면 됐다. 막상 내가 늙어서 혼주가 되어보니, 그 옛날 얌전한 신부로 되돌아간처럼 지금의 나 역시 다소곳이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다. ' 알려주면 고맙고, 몰라도 그러려니 ' 식이다. 좋게 생각하면, 나중에 아들로부터 군소리를 듣거나 책임질 일도 없고 하니 오히려 편해서 고맙기도 했다. 자녀 혼사를 치르면서 이런 부분에도 <세상의 판>이 바뀐 것이 실감 난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내가 할 일이 있었다. 아들 짐을 신혼집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승용차 한 대에 두 번을 옮기다가 나중에는 동생 차까지 동원했다. 그때, 예비며느리가 꾸며놓은 신혼집 인테리어를 볼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내 눈에 이쁜 것, 아들이 알려준 공부방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책상이었다. 그 책상을 보면서 ‘역시, 신혼이당! 딱, 붙어있는 책상을 보니! 우리 부부는 멀찍이 책상이 떨어져 있는 따로국밥인데! 호호호!’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면서, 지인들이 해 준 말을 명심하며 집 안을 ‘천천히, 샅샅이, 마음껏!’ 구경했다.


 “야! 시어머니는 아들 집에 갈 일이 없으니, 야무지게 훑어보고 와! 그게 마지막일 수 있어! "


출처 픽사베이




라떼도 그랬다. 그때도 시어머니가 아들집에 오는 건 며느리에겐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며느리 사이에 떠돌던 말, “시댁의 ‘시’ 자가 들어간 건 다 싫다!” 고 했다. 그래서 죄(?) 없는 시래기와 시금치를 먹지 않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친정엄마가 농사지은 남해 시금치를 좋아해서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시어머니가 장날이던 4일, 9일마다 신혼집에 쳐들어와도(?) 아무 말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친정엄마에게 일러바치긴 했다.


“엄마! 새벽에 시어머니가 왔다갔데이!”

“와, 또? 그 냥반이 뭐더러? "

장날이라고. 명태 두 마리 주러 왔다고… 아침밥 차리서 같이 묵고 갔데이"

“문디, 너그들(너희) 출근하는데. 와 그런다노! "


출처 픽사베이


당시 내가 어려서일까. 내가 결혼한 사람이 외국사람도 아닌데 시댁 식구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 지금 와서 생각해 보아도  그때 시어머니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주말마다 시댁에 와서 음식을 만들라고 했다. 내가 일을 하고, 주일마다 교회를 다니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시켰다. 상당히 힘들었지만 소위 ‘며느리 군기‘를 잡는 것 같아서 그 말을 따랐다. 그래도 나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조차 어려운 것은 ‘그러려니!’로 넘어가기로 했다. 아마도, 그때부터 어려운 것은 대충 넘어가려는 내 마음의 중병, ‘그러려니’ 병이 시작된 것 같다. 그렇게 그러려니 하다가 놀라다 못해서 기가 막히는 일, 고역을 겪기도 했다.


내 신혼집은 단칸방이었다. 옆으로 미는 새시문을 열면 작은 부엌이 나오고 그 부엌에 안방이 연결된 작은 문이 있었다. 밖에서 보면 새시 문이 길어서 집이 커 보였지만 그건 눈속임이었다. 안방으로 바로 통하는 새시문을 열면 마루가 나오지만 따로 짐을 보관할 창고가 없어서 그곳에 쌓아두었기 때문에 그 문은 늘 폐문이었다. 그렇게 ‘정말 신혼이기에 둘이 딱! 붙어살기에 좋은?' 참으로 좁은 단칸방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시어머니가 시아버지와 싸움만 하면 나타나는 것이었다.


“야! 말이 돼? 시어머니가 가운데 껴서 잤다고? "

“니는 벅시(바보)냐? 단칸방에 시어머니가 같이 잔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냐? 시엄마가 신혼부부 가운데 끼어서 잤다고?! "


“야! 그럼 어떡해? 내가 가운데 자냐? 벽 보고 자는 게 낫지…”




내가 이사를 한다는 소식에 지인들이 한 말이다.


“이제 딱 20평형대에 살면 돼!”

“너무 좁지 않아?”

“야! 둘이 사는 데 딱! 붙어살면 (따뜻하고) 좋지!

“이 나이에 무슨! 다 늙어서 딱! 붙어살라고?!!!


그들은 모두 한 통속처럼 말했다. ‘무조건! 작은 집으로 가라고!' 권유했다. 내 생각이나 계획에 1도 없었던 너무나 작은 평수를 권하는 통에, 아무런 대꾸도 못했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내 집’ 이사를 두고 논쟁하며 싸우기도 했다.


“야! 120평에 사는 사람을 20평이라니, 그게 말이 되나?! “

여긴 시댁! 얘는 시어머니잖아! 아들은 절대로 안자거든! "

”그래! 어느 며느리가 시댁에서 자겠냐고! “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나의 처지가 여실히 보였다. 아들 하나뿐인 시엄마! 그러니 딸 가진 엄마들이 나를 겁박(?)하듯이 ‘정신 차리라!’고, 이런저런 말을 해 주면 나는 한글을 처음 배우는 어린애처럼 정신 바짝 차리고 귀담아 들었다. 어떨 때는 ‘그렇게까지 시댁을 싫어한다고?’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딸이 없는 내가 딸들의 생각을 알 수 없으니 ‘요새 젊은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면서 ‘알려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다. 이들에게서 시어머니 정신교육을 받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딸이 시어머니가 너무 싫대!”

“왜? 시어머니가 무슨 실수나 불편하게 했어요?”

“아니, 그냥 싫대! 이유도 없이 그냥 싫대. 전화는 아주 끔찍하대!

“아… 그 정도로? 시어머니가 싫군요…? "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어머니 정신교육도 필요 없고, 그저 시어머니는 아무것도 안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불행중 다행히(?) 나는 '콜포비아'다. 콜포비아는 전화와 공포증의 합성어로, 전화통화를 기피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래서 나는 통화보다는 문자나 모바일 메신저, 이메일로 소통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러니 내가 먼저 며느리에게 전화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굳게 마음먹으면서도 은근히 바라며 조용히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장민이가 나를 저렇게까지 (이유 없이) 싫어하지 않게 해 주세요!



내 기도가 너무 간절해서일까? 곧장 응답이 왔다. 아들을 통해서 놀라운 응답을 받았다.


“엄마! 내일 장민이랑 갈게요. 그리 아세요!”


이게 무슨 며느리복 터진(?)  소식인가?


“호호호! 장민이 뭐 먹고 싶은 것 없대니~~~~~?"

“모르겠네요! 어제 막회 얘기를 하긴 했는데…”

"그래! 알았어! 막회~~~~~. 좋아 좋아~~~~~! 룰루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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