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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Mar 18. 2024

“사돈… 저도 제일 좋은 놈(?)으로 드린 거예요!”

나도 어른이 되어 가는 걸까?


여기저기서 봄이라고 한다. 그런데 봄을 느끼기엔 아직 일러 보인다. 며칠 전 기온이 점차 상승한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갔다가 어찌나 쌀쌀하던지 종일 벌벌 떨다 돌아왔다. 우스갯소리로 다 늙은 갱년기 아줌마가 멋 좀 내려다가 그야말로 얼어 죽을 뻔한 것이다.


그래선지 매년 이맘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봄 날씨가 변덕스럽다 못해서 참 지랄 맞아(?) 보인다는 것이다. 따사로운 봄 햇빛이 비치는 날도 바람 없는 날이 거의 없고, 잦은 비와 우중충하게 흐린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는가 하면 일교차까지 크다 보니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잘 모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봄 분위기를 내려고 이쁜 꽃 화분 몇 개를 계단에 두면 그림같이 이뻐서 참 좋은데 꼭! 그날 저녁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건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일까? '사서 고생'이라고, 때를 모르고 화분을 산 죄(?)로 4월이 올 때까지 아침저녁 화분을 들였다 냈다를 반복하다 보면 봄이고 뭐고 짜증이 절로 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면서 ‘올해는 그 개고생은 안 해야지’ 하면서도 또 봄 햇살에 넘어가서 단골 화원에 가게 된다.


“사장님, 제일 좋은 놈으로 골라서 주세요! 어지간해서 안 얼어 죽는 튼튼한 놈으로요.”

“호호호. 제일 좋은 놈으로 드릴게요! “


출처 픽사베이


올해도 환절기를 무사히 넘기지 못하고 감기가 들어서 한 달이 넘도록 고생을 했다. 그런데 이번 감기는 다른 때와 달리 (코로나나 독감도 아니었다) 기침이 너무 심하고 입맛이 없을 정도로 지독했다. 어지간해서 입맛을 잃은 역사가 없는데, 도무지 어떤 것을 먹어도 이게 무슨 맛인지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사람이 입맛이 없으면 당연히 아무것도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야 하는 게, 그게  맞는 것 같은데 꼭! 입맛을 당기는 음식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번 감기에 신기하게도 ‘파절이’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파절이는 쪽파를 ‘송송송송’ 잘게 썰어서 고추장, 진간장, 매실청, 참기름, 통깨를 넣으면 되는 초간단  반찬이다. 이 파절이가 어릴 때 밥상에 자주 올라와서 그런지 파절이만 보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우리 집은 밥을 먹을 때마다 밥상 세 개가 차려졌는데, 제일 좋은 사각형 밥상은 할머니와 아버지가 식사를 하셨고, 결혼을 하지 않고 돌아가실 때까지 함께 산 우리 큰아버지는 앞을 못 보시는 장애가 있어서 할머니께서 따로 독상을 차려 주셨다. 할머니는 큰아들이 앞을 못 보기 때문에 가족들 앞에서 음식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피하셨고, 큰아들이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독상을 주신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크고 둥근 밥상에는 엄마와 우리 조무래기 4남매가 박 넝쿨에 대롱대롱 달린 조롱박처럼 '뱅뱅' 둘러앉아서 먹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파절이가 상에 오르는 날은 아버지가 따로 주시는 게 있었다.


“한 사람 앞에 김 두 장이다!”

“앗싸! 오늘은 두 장이다. 잘 먹겠습니다!”


아버지와 엄마가 바닷가 바위에서 긁어 온 것으로 말린 김이었다. 아궁이에 밥을 짓고 난 잔불에 김을 구워서 4남매 각 한 명 당 한 장씩 주시다가 가끔 아버지가 기분이 좋은 날은 두 장씩 주시기도 했다. 그 김을 먹는 데도 아버지가 알려 주신 방법이 따로 있었다. 김을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고 4등분을 해서 먹으면 김맛도 제대로 느끼고 참 좋을 텐데, 아버지는 8등분을 내라고 했다. 이를 어기면, 꿀밤이 날아왔다. 또, 다른 사람보다 김을 빨리 싸 먹고 남의 것을 뺏어 먹어도 꿀밤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우리 4남매는 다른 사람이 음식을 먹는 속도를 눈치껏 보면서 ‘똑같이! 천천히! 맞춰서!’ 먹어야 했다. 아버지는 그래야 늦게 먹는 사람이 (자기 것을 나눠주거나 뺏길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추억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 살아서는 만날 수 없는 가족들이 매우 그리워서일까? 아프면 마음이 약해진다고, 파절이가 너무 먹고 싶었다. 게다가 이 지독한 감기를 이기기 위해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 파절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밖에 다른 음식 생각이 나지 않았다. 상상만 해도 파절이를 밥에 비벼서 딱 한 숟갈만 먹으면 잃어버린 입맛이 돌아오고 징글징글한 감기가 뚝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러고 있는데 ‘띵!’  문자 메시지 하나가 왔다.


< 고객님, 안녕하세요. 농협택배  송하인: 김순자(엄마 이름) 상품명: 쪽파, 시금치 …>


“엄마! 이게 다 머꼬? “

“인자 마지막 쪽파데이. 시금치랑 냉이랑 부추도 박스 구석에 쑤시서 넣었데이!”

“엄마는 내가 파제리(파절이)가 먹고 싶은지 우찌 알았으꼬! “

“부추는 처음 올라온 기라. 땅에서 처음 올라온 거는 약이데이. 그게 보약이데이!”


평생 그랬다. 엄마는 남이 좋다는 것은 자기 입에 넣지 않고 자식들 입에 넣었다. 이번에도 또 그런다. 마지막으로 뽑은 쪽파와 시금치 그리고 겨울을 이기고 처음 땅에서 나온 냉이와 초벌부추를 ‘보약이라면서!’ 맨날 감기로 골골 거리는 큰딸에게 보내온 것이다. 쪽파 한 단이, 시금치 한 단이 얼마나 할까 싶지만, 엄마가 보내준 택배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고 돈으로 살 수 없는 내게는 보약 보다 더 귀한 엄마의 사랑이라서 오늘도 쪽파와 시금치 택배 박스를 보고 있노라니 눈물이 나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는 너그들 입에 들어가는 거 보는 게 제일 좋은 기라!”

“제일 좋은 놈으로 골라서 보냈데이!”


출처 픽사베이


아들과 며느리는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연애를 했다. 고등학생 때 아들이 미국에서 돌아올 때 내가 동네 지인들에게 수소문해서 알아본 교회에 내가! 내 손으로! 내 아들을 끌고 가서 집어넣은(?) 교회다. 거기서 ‘신앙생활 열심히 하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아들은 교회에서 신앙생활과 함께 연애 생활도 함께 열심히 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들과 내가 같이 다니는 교회 안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내 며느리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들이 (결혼 전) 연애를 한 지 2년이 넘었던 어느 날, 내가 물었다.


“야! 니들은 안 싸우냐?”

“네? 왜 싸워요...?"

“아니 2년이면 이제 헤어질 때 됐는데. 한 번 크게 싸워 봐바!!!"

“엄마!!! 우리 안 싸운다고요!!! “


그때 사실 조금 느꼈다. ‘저러다 진짜 결혼까지 할 수도 있겠다’고. 그래도 ‘설마! 설마!’ 했다. ‘연애 한 번에 결혼까지 한다고?, 지네 엄마(나)가 한 번에 결혼해서 개고생 하고 산 거 아니까' 그러지 않을 거라고 기대도 좀 했다. 그러나, 언제나 슬픈(?) 예감은 적중하는 법, 아들은 그대로 쭉! 4년을 사귀다 결혼했다. 이런 것만 보아도 역시 DNA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닮으란 건 안 닮고, 꼭 안 닮았으면 하는 건 여지없이 닮는 걸 보면 말이다.


’아… 내 아들도 한 번에 영혼을 다 팔아버리는구나!‘


그런데, 문제는 (당시) 여자친구인 장민이 부모였다. 현재 사돈이 된 사돈은 그때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들이 연애할 때 꽤나 조심스럽고 불편했던 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장민이 부모 역시 같은 교회를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언제든 지나가다가도 예고 없이 만날 수도 있었다. 더욱이 불편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두 자녀가 연애 중이란 걸 알았기 때문에 ‘둘이 결혼을 하나, 안 하나’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었다.


아무튼, 아들이 장민이와 2년을 사귀어도 헤어지질 않아서 (장민이가) 어떤 앤지 궁금해서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5월 5일 어린이날에 ‘큰 어린이들 모여라’하면서 장민이를 초대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때부터 장민이 뿐만 아니라 장민이 부모와도 교류 즉 물물교환이 시작되었다. 첫 교류는 장민이와 함께 정원에서 바비큐를 구운 어린이날, 바비큐를 따로 구워서 도시락에 싸서 보낸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렇게 우리는 미래 사돈이 될 운명이었나 싶다. 옛말에 ‘음식 끝에 정 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작고 소소한 먹거리로 여러 차례 교류하다 보니, 아들과 장민이가 기뻐하고, 같은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조금은 불편하고 조심스럽던 마음이 점차 사라져 갔다. 그러다, 장례식 조문을 갔다가 장민이 엄마를 정면으로 딱! 맞닥뜨렸다. 이런 상황을 재밌게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서 금방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해 졌지만 얼른 최근에 장민이 엄마가 보내 준 강원도 감자를 떠올렸다.


“그렇게 크고 실한 감자는 처음 봤어요! 정말 웬만한 남자 주먹보다 크더라구요!”

“아, 그거… 제가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서 드린 거예요! “

“아! “


그 말을 들은 순간, 참 따뜻한 마음이 들었다. 그 감자를 받고는 강원도 감자는 다 이렇게 씨알이 굵고 알찬 줄 알았는데. 가장 좋은 것으로 선별해서 보내 주었다는 말이 미안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예상했다. 곧 감자 몇 알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그 눔(?), 내 아들이 물물교환 되리라는 것을!


“사돈… 저도 제일 좋은 놈으로 드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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