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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Mar 25. 2024

내 딸이 떠난 날, 내 며느리가 내게로 왔다…

나도 이제 어른이 되어 가는 걸까?

“여보세요! 권사님 안녕하세요?”

“뭐 하냐? 그냥 전화해 봤어!”

“하, 지금 장우 방 청소하고 있어요!”

“아이고, 그만 끊자!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을 텐데…”


아들 결혼식을 마친 후 며칠이 지나 아들 방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교회 권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게는 제2의 친정엄마 같은 존재다. 실제 친정엄마와 나이가 같기도 하고, 오랫동안 한 동네에 살면서 자주 만나며 가족들의 대소사도 함께 나누며 살았다. 나중에는 엄마처럼 속 마음도 터놓는 사이가 되었는데 이 날도 내가 혹여 헛헛한 마음이 들까 봐 전화를 한 것이었다.


“왜 끊어요? 호호호!”

“아니, 아들 떠난 빈 방 청소하는데 뭐가 마음이 좋겠니”

“괜찮아요! 저 정말 괜찮아요!”

“그래그래, 암튼 울지 말고 곧 밥 한 번 먹자!”


사실 엄청나게 울었다. 왜, 갑자기! 어떻게 하다가 울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누가 듣던지, 말던지!’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대놓고 울었던 그 시간과 그 기분, 그 마음을 뭐라고 적어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들을 보내서 슬퍼서 운 게 아니란 것이다. 나는 슬픈 게 아니라 정확하게 서러웠다. 허전한 게 아니라 세상을 다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명지 누매가 니 우찌 사는 고 자꾸 물어본다! “


친정엄마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다. 내가 친정에 가면 자기 자식이 찾아온 것처럼 나를 반겨주는 엄마 친구들이 있다. 그중 한 사람. 명지 누매라고 불리는 명지엄마는 나를 대하는 게 좀 더 각별하다. 내 얼굴을 이리저리 빤히 쳐다보면서 내 손을 꼭 잡고 ‘부비적 부비적’ 쓰다듬는다.


“아이고, 장우야(내 이름을 아들 이름으로 부른다)”

“네, 엄마! 잘 지내시죠!”

출처 픽사베이

“아이고, 장우야… 건강하제…”

“네네……"


명지엄마와 우리 엄마는 40대에 남편을 잃은 과부다. 시골 인심이 제아무리 좋다고들 하지만 그 옛날 과부가 홀로 자식 네댓 명을 키워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힘든 상황을 같이 겪다 보니 엄마와 명지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서로를 아끼고 챙겨주며 살아왔다. 그러다가 안타깝게도 명지엄마가 치매에 걸려서 엄마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일상적인 대화조차 안 될 때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끔은 난감한 일도 겪는다고 했다.


한 번은 엄마가 명지엄마가 먹을 반찬을 만들어서 명지엄마네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 그 반찬을 다 먹고는 엄마를 찾아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이 도둑년아, 네가 내 반찬 다 처먹었지! “


그런 명지엄마가 나를 알아본다. 1년에 한두 번 친정집에 가는데도 말이다.


몇 년 전 명지엄마는 큰아들을 잃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자세한 내용을 묻지 않았고 지금도 그 오빠가 왜 그렇게 됐는지 잘 모른다. 그때만 해도 자세히 아는 게 두려웠다. 아마도 그 슬픔까지 들을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 역시 같은 처지였기 때문이다. 나는 명지엄마보다 더 오래전에 (장우에게 누나인) 큰딸을 먼저 떠나보냈다.  


명지엄마는 나를 붙잡고 ‘이전에는 몰랐다’고 했다. 누가 자식을 잃었다는 소리를 들어도 같이 슬퍼하긴 했지만, 진짜로 자기 자식을 떠나보내는 엄마의 가슴이 어떤지 몰랐다고 했다. 그렇다. 나도 어떤 부모가 이 세상 사는 동안 자식을 잃고, 먼저 떠나보내는 그 일을 아무도 겪지 않길 바라며 산다. 그 일을 겪은 내 마음을 누구도 알 필요요가 없기에 그 마음을 영원히 모르도록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지금을 산다.


출처 픽사베이


내 배 아파 낳고, 젖을 먹이고 아이가 싼 똥기저귀를 손으로 씻어내도 더럽지 않은 그 마음으로 키운 내 딸. 그래서 내가 아이를 키울 때 어른들이 하던 말, ’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게 자식‘이라고 했다.  그렇게 귀하디 귀한 내 새끼, 15년을 함께 살 비비며 산 내 딸이 어느 날 갑자기 떠나 버렸다. 아직도 믿기지 않을 만큼 생생한 것은 내 딸이 한 줌 가루가 되고 온기가 남은 그 따뜻한 뼈가루를 내 손으로 뿌리면서 흘렸던 그 눈물이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울던 딸내미를 '엄마 돈 벌어 올게!'라며 밀어 넣은 게 죄가 되고

동생 안 챙겼다고 큰소리로 혼내던 그 일이 죄가 되고,

방 정리 좀 안 했다고, 숙제 좀 안 했다고 소리친 게 죄가 되고

그놈의 돈 좀 벌려고 참관수업에 못 갔던 일, 벚꽃놀이에 함께 가지 못한 게 모조리 다 내 죄가 되어서!


나는 이렇게 딸에게 잘못한 모든 일들이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죄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만약에, 지금 내 딸이 살아있으면 일상적인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용서를 구하고 싶은 추한 기억이 되어 있다. 이 모든 게 시간이 가면 잊힐 거라던 그 말이 말짱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매일매일 깨치며 살아왔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또렷해지고 그 작은 얼굴을 한 번만 만져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과거, 길거리에 교복 입은 여중생만 보아도 스러지던 그 시간들이 이제는 내 얼굴 주름이 골이 지듯이 내 마음의 골도 그렇게 더 깊어졌다.


이런 서럽고 서글프고 아리다 못해서 내 뇌를 조금씩 도려내고 깎아내는 마음으로 버텨낸 이 마음을 명지엄마가 알게 된 것이다. 그 이유로 내가 보였다고 했다. 자식을 잃은 후, 그때부터였다. 그리고 명지엄마는 아들 잃은 그 상심으로 인해 모든 것을 내려놓았고 급기야 치매에 걸린 것이었다. 그러니 내 손을 잡고 이제는 눈물도 바싹 말라버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아이고…. 장우야….”



아들이 결혼하기 2년 전 일이다. 며칠 전부터 아들 얼굴이 평소와 달랐다. 무언가 편치 않아 보였는데 ‘연애를 하다 보면 티격태격할 수도 있지’ 하고 예사로 생각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보통은 하루이틀 정도 지나면 괜찮아지기 마련인데 제법 오래갔다. 그래도 며칠을 더 기다렸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물어보았다.


“너 싸웠어?”

“아니요…”

“니 얼굴에 다 티 나거든!”

“아, 요새 쫌…”


나는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나름 기준을 만들었는데, 눈치를 채더라도 아들이 말할 수 있도록 ‘일단은 충분히 기다려 주는 것’이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왜? 무슨 일로? 이렇게 길게?’ 그 내용이 실로 궁금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아들은 무슨 일이든 혼자 해결이 안 되는 것은 언제나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니 섣불리 나서서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좀 미안하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나랑) 같은 교회 다니며 연애하는 게 불편했는데. 그래, 기회는 이때다. 아예 크게 싸우고 헤어져 버려라!‘라고


“왜 싸워? 장민이가 너 공부만 한다고 뭐라 하니?”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뭔데, 왜 죽쌍(죽을 상)이야!”

“엄마, 사실은… 장민이가 자꾸… 우리는 결혼 언제 하냐고 해요…”


‘왓! 결혼? 결혼이라고? 결혼이라니!‘ 이건 뭐, 나로선 상상도 못 하는 이야기였다. 더구나, 빨리 헤어졌으면 싶었는데 결혼이라니!


“야! 스물여덟에 무슨 결혼이야! 말도 안 돼!”

“아, 엄마, 그건 엄마 생각이고요!”


그랬다. 그렇게 아들은 나 모르게 압박(?)을 받고 있었다. 상황을 들어보니 이랬다. ‘꼭, 결혼을 빨리하는 나이대가 있다더니!’ 나는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장민이 친구 대부분이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결혼한 친구들보다 아들과 장민이 커플이 연애는 훨씬 더 오래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너희는 왜 결혼하지 않느냐'하는 말이 이미 스트레스가 되다 보니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었다.


“야! 니는 지금 공부하잖아! 앞으로 박사도 해야 하고! 공부할 길이 구만리구먼. 무슨 결혼….”


이렇게 아들한테 소리는 쳤지만, 사실은 장민이한테 말하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없었지만 내 마음의 소리는 계속 쏟아져 나왔다.


“야, 그럼 헤어져! 남자 자식이 돈도 못 버는데 무슨 결혼이야!”

“연애도 이래저래 많이 해봐야 좋은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아는 거야!”

“공부 중에 무슨… 결혼 이야기를 해?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나는 아들이 결혼 압박을 받으면서 힘들게 공부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백화점에 가서 이태리에서 물 건너온 구씨네 가방 하나를 샀다. 가방 크기에 따라 가격이 더 비쌌는데 다행히(?) 요새는 작은 사이즈 가방이 유행이었다. 그래서 많이 작은 걸로 샀다. 그리고는 아들에게 주면서 말했다.


출처 픽사베이


“아들, 이거 장민이 줘라! 엄마가 사서 줬다고 하면 당분간 결혼하자는 이야기는 안 나올 수 있어! “

“뭐 이런 걸 사고 그래요!”

“그리고, 장민이 생일이 언제니? 그때 또 생일 선물 하나 사주려고…“

“엄마… 그건 말 못 해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장민이 생일을 몇 번 물었는데 아들은 그때마다 ‘엄마는 몰라도 된다’ 고 했다. 이번엔 확실히 내가 알아야지 싶어서 여러 번 추궁했다. 그랬더니, 아들이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 엄마… 놀라지 마세요…”

“왜 그래? 뭔데?”

“누나 기일이에요…”

“아……!”


그랬다. 내 딸이 떠난 날이 장민이 생일이었다. 그래서 아들은 차마 내게 말을 못 했던 것이다. 누나를 그리워하면서 일 년에 이틀, 누나 생일과 기일에 내가 남해에 내려가서 우는. 그런 엄마를 너무도 잘 아는 아들이었기에 숨긴 것이었다. 이 사실은 장민이도 내 가족조차 아무도 모른다. 지금까지 아들과 나만이 알고 있다.(이제 내 구독자님들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내 딸이 내 품을 떠난 날, 내 며느리가 내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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