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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Apr 06. 2024

남편이 망했어!

남편이 망했어


버스 안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얼마 전 버스에서 친구를 만났다. 평소 버스를 잘 타는 편이 아니어서 이렇게 우연히 친구를 만나는 게 참 신기했다. 전업주부인 내가 어디 출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바깥 활동을 즐기는 성격도 아니어서 특별한 일이 아니면 집 밖을 나서질 않는 집순이라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 어쩌다 한 번 탄 버스에서 만난 그 친구가 더 반갑게 느껴졌다.


더구나 나는 가끔씩 이 친구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만큼 '잘 지내는지?' 안부가 궁금할 정도로 좋은 감정을 가진 친구였기 때문이다. 죽마고우는 아니고 내가 이 동네로 이사 오면서 알게 된 사이다. 그러니까 다 늙어서 만난 사이로 사회친구인 셈이다. 우스갯소리지만, 나는 ‘사회친구’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학교 동창(옛날친구) 아니면 사회친구는 늘 조심하는 게 좋아!”


이 말은 그 옛날, 소위 나를 좀 애정(?)하는 사람들이 한마디로 나를 아껴서 해 준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을 자꾸 듣다 보면 소심해지는 부작용이 있었다.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데 미리 걱정을 하거나 가끔 저돌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신경이 예민할 정도로 지나치게 조심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정작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도 주저하게 돼서 나중에는 깊은 사이가 되지 못했다. 물론, 그런 티를 안 내려고 하지만 내 마음 자세가 그러니 어지간해선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런 말도 들었다.


“야! 서울에서는 눈 한 번만 잘 못 감아도 니 코 베인다! “


사실 지금 생각하면 그동안 내가 닳고 닳아서 그런지 이제는 그냥 한 번 웃고 넘길만한 말이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내가 이런 말을 자주 들은 이유가 있었다. 내가 지방 출신으로 시골에서 막 올라온 생초짜였기에 그랬던 것이다. 그러니 서울사람 즉 도시사람들 누가 보아도 사회생활에 대해서 너무 아는 게 없으니 좋은 말로 순수한 것이지 얼마나 멍청하게 보였을까 싶다. 한 번은 당해도 크게 당할 것 같은 진짜 얼뜨기 같아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도시사람들이 해 주는 말을 믿었고 사회친구를 만나는 걸 극도로 조심하며 지냈다.


그러나 기우였다. 내 경우는 오히려 그 말들과 정반대였다. 가령, 나에게 아주 오랜만에 연락을 해와서 집으로 찾아온 친구도 있었고 강연장에서 만난 고향사람도 너무 반가워서 한참을 반갑게 만나기도 했다. 그러다 한 번은 기업체 강의장에서 나를 본 학교 동창이 강사 대기실에 찾아와서 만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바란 따뜻한 추억 속 고향친구나 옛 친구가 결코 아니었다. 그러니까 ‘밥 한 번 먹고 웃으면서 다음을 약속하며 헤어지는’ 간단한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선뜻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을 했고, 가면 갈수록 만나는 게 부담스러워지는 일이 많았다. 대부분 ‘뭐 좀 사라! 이것 좀 팔아 달라’, ‘개업하니 와 달라’, ‘주변 사람들 소개 좀 해 주라’ 등이었다. 결국, 그 부탁을 들어주거나 팔아주면 얼마 못 가서 게 눈 감추듯 사라지는 이도 있었다. 그래서 내 경우는 옛날친구(?) 보다 사회친구가 훨씬 더 좋았다. 더욱이 내가 이 동네에 산 만큼 사회친구들을 만난 세월이 쌓이고 쌓여서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사람들이 되었다. 멀리 살아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가족들보다 자주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

.

이러니, 나는 옛날친구가 갑자기 연락을 해오거나 나타나면 먼저 겁부터 난다. 무서워서 나는 겁이 아니라 ‘또 무슨 부탁을 하러 온 걸까?’ 싶다. 그만큼 옛 친구들에게 당한 게 있다 보니 앞으로도 조심스러운 대상이 될 것 같다. 지금 내 마음상태가 그렇다 보니 버스 안에서 옛날친구가 아닌 사회친구를 만난 것이 더욱 반갑고 좋았다. 


출처 픽사베이


이 친구는 취미모임에서 만났다. 한때는 자주 만나서 친구처럼 지냈는데 모임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몇 년간 만나지 못했다. 언젠가 운전을 하던 중 걸어가는 이 친구를 본 적이 있는데 차를 급하게 세울 수가 없어서 지나친 게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더 반가웠다. 그 친구도 내가 반가웠는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머! 여기서 만날 줄이야! 너무 반가워!”

“그러게! 잘 지내지? 그 집에 계속 사는 거야? “

“응응. 나는 그기 살지! 자기도 그 동네 사는 거지? 각자 이사도 안 했는데 서로 못 만난 거네! “

“아냐. 나는 이사했어… 00 신도시로…”

“와 그기 새 아파트? 호호호 새 집으로 갔나 보네!? “


내 말에 표정이 바뀌는 친구의 얼굴을 보았다. 뭔지 모르지만 입을 꼭 다물면서 잠시 생각을 다 잡는 듯 보였다. ‘아, 내가 뭘 잘못 말했나???’ 내가 아는 바로는  00 신도시라면 현재 새 아파트가 입주 중이란 것뿐이었다. 그런데다 며칠 후에 지인이 집들이에 초대를 해서 그 동네에 가야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도 당연히(?) 그 단지, 새 아파트, 새집으로 이사한 걸로 생각한 것이다. 그나마 내가 눈치는 좀 빠른 편이어서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로 돌리려고 할 때, 그 친구가 조용히 말했다.


“호호호… 새 아파트는 아닌데 새집은 맞아…”

“아! 그렇구나…“

“새 오피스텔… 이전 집보다 좀 많이 작아졌어…”

“아… 그렇구나… 정말 미안해…“


9평, 오피스텔이 지금 친구가 사는 집이었다. 그곳으로 이사한 지는 벌써 2년 전이었다. 내가 만날 때만 해도 30평형대 아파트에서 남편과 아들 그렇게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일로 9평 오피스텔로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삿날, 이삿짐을 나르던 사람들이 '집이 너무 좁아서 더 이상 안으로 옮길 수 없다' 면서 그 많은 이삿짐을 문 앞에 내려놓고 가버렸다고 했다. 그 사람들의 행동이 당연한 건데도 기가 막히고 제대로 숨을 못 쉬어서 금방이라도 꼭 죽을 것만 같았다고 했다. 그날 밤,  그 짐을 붙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너무나 힘들었다고 했다.


마치 나를 만나서 그동안 가슴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듯이 쏟아내는 것 같았다. 또, 친구는 내가 듣고만 있어도 그 상황이 얼마나 감당하기가 힘들었는지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급기야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이야기까지 했다. 자신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법을 위반한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 큰 죄도 짓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한 적도 없으며 그런 악한 마음을 품음 적은 더더욱 없었다고 토로했다. 다만 이 동네, 이 집에서 세 가족이 쭈욱 계속해서 잘 살아가기만 바랬다고 했다. 실제로 아들이 커서 지방대학교를 갔어도 기숙사에 보냈고 남들처럼 남편 직장이나 아들 학교를 따라 이사를 갈 생각도 없었다고 했다. 한때 남편 사업이 잘돼서 제법 큰돈을 벌었어도 큰 평수에 대한 욕심도 없어서 이대로 살았다고 했다. 그만큼 친구는 자기가 사는 그 집을 지키고 그 집에서 계속 살고 싶었던 것이다.


친구 이야기를 한편으로 생각하면 대궐 같은 집에서 단칸방으로 간 것도 아닌데 뭘 그러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친구 말을 듣고 있으면 그 상황을 직접 겪지 않고는 함부로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수백 평에서 10평으로 가거나 30평에서 6평으로 가든 당사자가 겪어야 하는 현실은 똑같기에 그렇다. 평수만 차이가 있을 뿐이지. 여태껏 살아온 집 규모를 줄이고 현재까지 누리던 것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마찬가지이니까 말이다. 특히 이 친구처럼 자신의 집에서의 삶 그 자체를 사랑한 사람이 겪은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근데, 어쩌다…”

“남편이 망했어…!”

“아…”

“여자 팔자 두룸박 팔자라고 하더구먼. 남편이 망하니 우리 가족이 다 망하더라고…”


그 말을 할 때는 먼 곳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기도 했다. 물론 행복한 미소는 아니고 나에게 '그래도 지금은 좀 괜찮다'는 의미로 보였다. 그리고 나를 만난 지금은 그래도 2년이란 세월이 흐르다 보니 어느 정도 마음 정리가 된 상태라고 했다.  지금은 9평 오피스텔에서 남편과 단둘이 지내며 매일 남편이 운영하는 사업장에 함께 출퇴근을 같이 하고 있다고 했다


“정말 많이 힘들었겠다…”

“어. 누가 알았겠어. 내가 이런 일을 겪을지!”

“응. 그렇지… 어떻게 알아…”

“나 같은 전업주부가 뭘 알아? 생활비 조금씩 주는 거 따박따박 들어오면 그런가 보다 했지. “


나도 친구의 손을 꼭 잡으면서 이렇게 밖에 말하지 못했다. 


"그렇지... 우리가 뭘 알아... 아무것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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