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진로, 예술

by 이준서

1.
자아와 세계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자기를 곧 세계 전체로 인식하는 개인을 소위 낭만주의적 인간이라 부른다. 이들은 ‘나’와 ‘세계’가 분리되지 않은 혼연일체의 상태를 꿈꾼다. 이러한 개인에게 자아는 본질적으로 무한한 것이며, 어떤 구체적인 형상으로 고정되기를 거부한다. 형상을 부여함은 곧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며, 이는 자아의 무한성과 모순되기에 자기 부정으로 느껴진다. 따라서 낭만주의적 개인에게 진로란 단순히 생계나 사회적 역할이 아니라, 자기의 무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다.

2.
흔히 예술가라는 직업은 ‘낭만적’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현실의 예술가들은 과연 낭만적인 예술을 실천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예술은 기존에 ‘천재’라 불린 이들이 만든 규범과 형식을 계승하며 이루어진다. 소위 예술계의 규칙이라는 일종의 게임이 존재하고, 개별 예술가들은 그 안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즉, 예술은 대개 제도화된 영역 안에서 기능하며, 진정한 낭만적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3.
예술이 낭만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예술 자체가 아니라 ‘천재의 예술’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천재는 뛰어난 재능 외에도, 우연한 시대적 맥락과 사회적 서사화에 의해 구성된다. 천재는 곧 사회로부터 만들어지는, 사회가 만드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천재가 되고자 하는 것은 이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덧 없는 바람이다.

4.
결국 ‘낭만적인 진로’란 무엇인가? 낭만은 본질적으로 경계 지어지기를 거부하고, 고정된 정체성을 회피하며, 현실에 포획되기보다 이상 속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진로를 통해 낭만을 실현하고자 하는 시도는, 역설적으로 그 낭만의 본질과 충돌할 수 있다. 낭만은 실현보다는 끊임없는 추구와 질문 자체에 더 가까운 개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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