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철학, 교육

에세이, 실존주의는 교육을 거부하고 교육은 실존을 가르친다.

by 이준서

1.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나는 무엇인가?'. 실존주의 철학은 고민하는 과정이 곧 삶임을 주장합니다.

그러한 고민에 대해 타자가 답을 내려주는 것은 곧 규정짓는 행위이며, 규정은 곧 억압입니다.

타자가 설령 교사일지라도, 윤리적 선언을 가르치는 것은 분명 부조리입니다.

조금 더 순화된 / 일상적인 표현으로는, 실존주의를 수행하는 태도의 학생에게 " 너는 - 같은 방식으로 살아야돼"라고 조언하는 것은 훈수가 될 것입니다.

실존주의는 교육을 거부하고 교육은 실존을 가르칩니다.

교육체제가 부조리라면, 학교의 평가는 폭력입니다.

이러한 부조리 속, 삶의 방향성을 선택해야 하는 학생은 폭력으로 인해 부조리에 종속됩니다. 실존에 대한 고뇌는 없어지는 대신 자아는 사회의 암묵적인 폭력에 순응하고 (입맛에 맞게)수정됩니다. 교사는 공장 노동자고 학생은 부품인가요?


이는 어디까지나 철학적 논증이지, 교육관에 대한 실천적인 논의와는 꽤 거리가 있습니다.

교직 수업을 들으며, 저는 사범대학에 재학중인 대학생입니다.

강의시간에 '어떻게 살아야되는가?'에 대한 물음이 나왔습니다.

비슷한 결의 질문들을 여럿 떠올릴 수 있는데,

'왜 살아야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가?' 등

이에 대해 학생들은 저마다의 답을 내놓습니다.

교사는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순간, 어떤 가치를 규정하게 된다는 역설에 놓입니다.

예를 들면,

어린 아이는 '왜'를 무한히 반복하여 질문합니다.

그럴때면, 답할 수 없는 순간이 오죠.

혹은, 사회의 상식이라 통용되는 지식을 '왜라는 물음이 적용될 수 없다'는 이유로 가르치기도 합니다.

이것이 아마 실천적인 영역일 것입니다.

어느정도의 '왜'라는 물음을 허용해야할까요? 이에 대해, 이론적인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물론 학생이 교사의 말을 맹목적으로 수용하지도 않을 것이며, 이 글은 단순히 철학에서의 사고실험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사의 말'에 대해 - 특히, 실존적 질문에 대한 대답에 고민할 수 있습니다.

빛은 필연적으로 어둠을 만들듯, 교사의 말은 그에 따른 그림자를 만들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역설적인 성격을 인지하는 것이 '교사됨'에 도달하는 과정에 놓인 것 같습니다.



1. 부록


글에 나온 '교사'는 '가상의 교사'입니다.

가상의 교사는 학생에게 진리에 가까운 정답을 알려줍니다. 이는 교육이 아닌 철학의 영역처럼 보이지만, 최근에 읽은 이홍우 교수님의 '눈물겨운 스승의 날'에 등장하는 개념을 차용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선생에 대한 환대와 존경은 자연인으로서의 그 선생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선생의 '뒤에' 있는 것, 그 선생이 대표하고 있는 도 또는 학문에 대한 것".

그 선생의 뒤에는 '가상의 교사'가 있습니다.

선과 악,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장단, 옳고 그름… 모든 가치판단에 진리를 내려줍니다.

교육학을 잘 모르지만, '교사됨'은 이러한 가상의 교사를 좇으라는 것 아닐까요.


저는, 실존의 문제를 극단으로 끌고 가 세계에 우연히 태어난 개인이 어떠한 관점을 취해야 할지, 개인의 무한한 자유가 침해되지 않는 것을 제일 목표로 상정합니다.

개인은 계속해서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삶을 떠올리기 이전에, 삶의 이유를 떠올리는 것인데요.

타자-특히 교사의 조언은 개인에게 기본적으로 기만입니다. 자유를 침해하니까요.

왜 살아야할까? 라는 삶의 이유에 대한 답은 오직 개인만이, 학생만이 답할 수 있다는 것이 철학적 전제였습니다.


교육학적 에세이가 아닌 철학적 에세이입니다.

교육철학인가요? 교육에 밑바탕이 되는 철학이 교육철학이라면, 철학이 밑바탕된 교육이기 때문에 교육철학은 아닌 것 같습니다.

즉, 교육이 갖는 고유의 따스함은 결여되있습니다. 에세이는 엄연히 철학의 영역에 분류됩니다. (너무 딱딱해보여 문학적 표현을 넣긴 했습니다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 글의 목표입니다.






2.


'좋음의 가치를 탐색하도록 하는 교육'에 대해 다소 허무한, 비생산적인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리고,

곧 있을 강의시간 전까지 예쁜 산철쭉들을 관찰하며 사범대학 주변을 산책했습니다.

전 날 비가와서 그런지, 날씨도 화창하고 풀색과 산철쭉의 진분홍색의 대비가 정말 예뻤습니다.

감각을 통한 아름다움은 즉각적인 교훈이기에 어떤 가치보다도 고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살아야되는지', '왜 살아야하는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생각한다지만,

꽃을 보며, 봄의 햇볕을 쬐며 받는 그러한 감각들은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기에 사람들이 '아름답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답을 유보하는 듯 하면서도,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해야 하는 일'에 억압되다보면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산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일상에도 적용시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종종 날씨가 좋은 날엔 산책을 나갑니다. 오늘 강의는 진짜 가기 싫었는데 산책을 하다보니 좀 기분이 풀리더라고요.

이러한 아름다움의 가치를, 교사는 가르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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