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

학문, 예술, 인간됨 - 철학

by 이준서

1.

나는 '인간관계론'을 비롯한 자기계발 서적을 극도로 꺼린다. 그런 맥락에서 ‘인간론’이라는 말조차 나에겐 불쾌하게 들린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단일한 기준으로 규정짓는 행위는 일종의 폭력이며, 자기계발서는 그러한 폭력을 열렬히 정당화한다. "어떤 인간은 ~해야만 행복해진다"는 식의 문장은, 마치 강박적인 학대처럼 반복된다.


나는 이러한 규범성을 철저히 거부한다. 반드시 따라야 할 규범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신념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인간론을 시도하는 것은 가능할지 모른다.
간주관적인 가치를 함부로 정당화하는 태도를 경계하면서도, 오히려 그 경계심 자체로부터 몇 가지 주장을 끄집어내는 것—그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론’의 출발점이다.



2.

이공계를 공부한다고 해서 냉철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아니다. 비합리성은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다. 물론 이공계 과목은 ‘합리적·논리적 사고를 통해 진리를 추구한다’는 이상을 지향한다.


마찬가지로, 문과 계열을 전공한다고 해서 감성을 속이지 않는 정직한 사고를 하는 것도 아니다. 기만은 역시,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다. 문과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됨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데에 있다.


이처럼 비합리성과 기만성이라는 결함들은, 역설적으로, 인간됨에 대한 탐구의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인간론은 그 단서로부터 사유를 시작해야 한다.


3.


행복, 정의, 사랑과 같은 윤리적 개념들은 명확한 논리적 명제로 환원될 수 없다. 윤리학이 철학의 주요 분과로 존재하되, 그 실천은 논증보다는 프로그래밍에 가까운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프로그래밍’이란 삶 속에 반복적으로 새겨진, 새겨질 감각과 행위의 코드를 의미한다.


학자가 진리를 향한 지적 여정을 평생 이어가듯, 윤리적 인간이 되기 위한 여정 또한 존재한다. 그 여정은 문학을 비롯한 '예술'의 감각을 평생에 걸쳐 내면화하는 과정일 것이다. 이는 추상적 이념이 아닌, 삶 속에서 실현되는 과정이다. 즉, 예술로 살아가는 것이 곧 인간됨의 탐구이다.



4.


수학과 자연과학은 인간을 ‘놀라움’의 세계로 이끈다. 인간의 관념이 하나의 소우주라면, 이 세계는 그에 병렬되는 평행우주다. 앞서 말한 비합리성과 기만성의 세계와는 대조적으로, 자율적이고 투명한 질서가 이곳을 지배한다.


우리가 신념이라 여기는 규범들은 이 세계에서는 무용하다. 우리의 규범은 사회나 타자에 의해 구성되지만, 놀라움의 세계에서의 법칙은 인간 외부의 실재 - 자연 그 자체 - 로부터 주어진다. 수학의 공리나 물리 법칙은 인간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초월적 사고에 의해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초월적 사고는 칸트에 따르면 ‘선험적 종합 판단’이라 불린다. 그러나 이 역시 인간의 언어로 기술되는 것일 뿐, 그 표현은 역시 자연이 제공하는 질서의 윤곽에 불과하다. 놀라움의 세계가 이끄는 자연에 대한 경이감은, 인간이 자기 바깥의 실재를 만나는 순간이며, 이는 곧 인간됨의 또 다른 단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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