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까라 마인드 장착

자기검열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by 이준서

1.


말 한 마디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때로는 미미하고, 때로는 나비효과처럼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다.

흥미롭게도, 이는 물리학에서도 확인 가능한 개념이다.

안정한(stable) 운동을 하는 점입자에 미세한 변화를 가하면, 운동 궤도를 유지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예측 불가능한, 카오스적인(chaostic) 운동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인간을 점입자에 비유할 수는 없지만, 개인의 신념 만큼은 하나의 입자처럼 불안정한 역학 법칙을 따른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명료한 신념을 가진 사람조차, 작은 말 한 마디에 흔들리고 방황하는 것이 꽤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2.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말의 가치는 금전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다.

"말 한 마디로 수천 명의 삶에 빛을 비출 수 있다"는 표현이 오히려 말의 본질에 가까울 것이다.

말은 단순한 경제적인 수단이 아니라, 관계와 존재를 움직인다.


3.


그렇기에 우리는 언행에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지나치면, 자기검열은 자신을 감옥에 가두게 되는 일이 된다.

이 감옥의 교도관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그리고 이 감옥은 곧 사회로부터의 소외이다.

타인에게 끼칠 영향의 불확정성이 두려워 자신의 말과 존재를 억제하고 고립시키는 것이다.


물론, 영향력의 불확정성은 실재한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허구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완전한 인식이 불가능하다.

즉, 메타적인 자기인식은 본질적으로 완벽히 수행될 수 없다.


따라서, 불확정성 자체는 명백한 사실이지만, 메타인지의 특성상 자신(이 타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허구적으로 상상하고 과장한다. 그 상상위에 감옥을 지었다면, 스스로에게 가하는 불필요한 형벌이 아닐까.



4.


과도한 자기검열은 정신적인 피폐함을 안겨준다. 보통 사유의 늪에 빠진 사람들에게 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 검열이 극단화될수록, 사회로부터 자발적으로 고립되게 되고, 소외된다.


그러한 소외된 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1~3에서 말하고자 한 바는, 극단적인 자기검열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철학적인 위안을 건네고자 함이다.
이 절에서는 다음과 같은 직설적인 위안의 말을 건네주고 싶다.


조까라 마인드를 장착할 것!


남에게 피해 끼치면 어때. 어차피 내 삶인데.


라는 태도로 자신을 지키라는 말이다.

무책임한 개인주의를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차원에서의 자기검열이 자신을 해치는 형태로 변질되지 않도록 균형 있는 거리감을 갖자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당신 또한 예외가 아니다.







‘조까라 마인드’를 장착하라는 말은, 사실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이 말을,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써 내려갔다.

사랑을 주는 것에 익숙하지만, 자기 자신은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누군가에겐 조언을 해주는 데 익숙하지만 자신의 삶의 난점에 무력함을 느끼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결국, 나는 '조까라 마인드'를 장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쓴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혹시라도 이 글을 통해 작은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이 글로나마 나의 이상을 형상화 하기 위해서.

나의 가치관에, 삶의 방향에 인지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런 바람으로 나는 계속 글을 쓴다.


예전에는 글쓰기가 마음의 위안이 되곤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기능조차 무력해진 것 같다.
그럼에도 쓰는 건, 이것 만이 나를 버티게 해주기 때문이다.


'조까라 마인드'... 내겐 너무 어려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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