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지식, 거꾸로 학습
성공적인 거꾸로 학습이 이루어 질 조건은 '학생이 사전학습을 성실히 해올 것'이다. 이러한 전제 조건 하에,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하는 촉진자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어떤 지식(학문적 사실)에 대한 본질적인 내용이 학습의 핵심이 되는 경우가 종종 존재한다. 수학의 경우에 미분의 개념을 설명할 때, \lim_{x->a} = \frac{f(x) - f(a)}{x-a} 와 같은 '미분의 정의와 그에 대한 (텍스트를 통한 표현) 및 (수학적 표현) '이 본질에 해당될 것이며, 사회의 경우에 마르크스의 상부구조 - 하부구조 개념을 설명하게 되는 경우에 지형학적 메타포가 어떤 식으로 개념화됐는지, 하부구조, 상부구조엔 어떤 종류의 사회적/문화적 개념들이 포함되는지가 본질이다. 본질적인 내용을 배운 후에는, 이에 대한 활용을 배우게 된다. 수학의 경우엔 다항함수의 미분, 사회의 경우엔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규정짓는 사회 현상이 그 예시 이다.
이러한 "본질적인 내용"은 온전히 이해하고 가야 할 부분이기 때문에, 사전학습만으로는 이해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교사가 수업시간에 짧은 복습을 넣는다고 하여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의 인지수준을 평가하는 데엔 크게 두 갈래로 구분지을 수 있다.
'본질적인 내용'을 완전히 이해했는가? ', 그리고 '개념(본질) 활용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가?'
후자의 경우엔 거꾸로 학습이 효과적일 수 있음엔 동의하나, 전자의 경우엔 거꾸로 학습이 무용하다고 주장하려 한다. 무분별한 거꾸로학습의 사용은 참된 지식인을 양성해내지 못한다.
한편으로, 디지털 리터러시가 중요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사전학습'은 특히 디지털 매체를 통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위의 비판점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학습을 사용하는 분위기가 교육현장에 느껴지는 것 같다.
나는 거꾸로 학습이 단일한 방식의 적용만을 의미한다 라고 해석하지 않는다. 당연히, 교수방법은 복합적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하나의 예시답안을 알려주는 것에 불과함을 알고 있다.
다만, 본질적인 개념은 단순히 교사 중심 지도가 우선되어야 학생들에게 효과적인 지식 전달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주장을 하려한다.
앞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예로 들었는데, 자연과학대학에서 개설된 강의의 경우에, 이론적 지식 전달을 중시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플립러닝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다.
즉, 본질적 개념, 더 나아가 심화된 이론적/추상적 개념은 교사 중심 지도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 기존 교육의 단일한 방식으로 회귀하여, 교사는 지식 전달자만의 역할을 수행한다.
디지털 리터러시가 중요해지는 현대사회를 언급했는데, 이에 대한 사회적/문화적 고찰은 다음과 같다.
'사전학습'은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학습이기에 디지털 매체의 대중화 이전엔 '거꾸로 학습'은 단순히 이론적인 논의에서 머물러 있었다. 그나마, 대학교처럼 성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현장에서만 가능한 방식이였을 것이다. 거꾸로 학습에 대한 논의가 이론에서 실천으로 관점이 이동한 것은 분명 과학 기술 문화의 산물이다. 일반적으로, '담론'은 TV, 신문 등 대량화된 매체 기술의 발전으로 그 형식이 발전했다. 과거엔 극장, 콘서트홀에서 벌어졌던 담론, 상호작용이 기술의 발전으로 - TV, 신문등을 통해 - 보편적인 사람들이 지식을 얻게 될 수 있었다.이러한 맥락에서, 현대 사회에서 '사전학습'은 특히 디지털 매체를 통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음을 주장한 것이다. 만약 디지털 매체가 발전하지 않았다면 거꾸로 학습의 중요성이 대두되지 않았을거란 주장이기도 하다.
시간이 흘러, AI 교과서 등 디지털 리터러시가 중요해지고 있다. 단순히 '디지털 매체에 의해 거꾸로 학습의 중요해진다'라는 논의에 머물지 않고, 거꾸로 학습이 현대 교육계를 지배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지식의 본질'의 예시로 들었던 상부구조 - 하부구조의 예시를 응용하면, 하부구조[과학 기술]의 진보가 상부구조[교육방식]의 변혁을 불러 일으킴은 자명하다.
다만,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거꾸로 학습이 지나친 권력을 갖게 되는 것 같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싶다.
거꾸로 학습이 지나친 권력을 갖는 것은 진정 '교양인'으로서의 학생을 길러내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디지털 매체'에 잠식당한 사회를 교실에 투영시키려 하는게 아닌가?
(고전적이고 진부한 얘기지만) '자연에 대한 경이'를 위한 목적을 지녔던 고대 그리스의 Liberal Arts는 현대 사회에서 메마른, 죽어있는 지식이 된 것 같다.
그러한 사실이 거꾸로 학습이 교육현장에서 통용되고 있는 현실을 대변한다.
지식의 본질을 가르치는 것은 참된 지식인으로서의 스승이 학생 앞에 나타날때만이 가능한 일인데, 거꾸로 학습은 이 가치를 훼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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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교육관이 어떤 '교사됨'의 가치를 요구하는지 잘 모르겠다.
디지털 매체에 의존한 '사전교육'.
엄연히 '참된 지식인으로서의 스승'의 영역이었던 "지식의 본질"을 전달하는 교육은 기술에 의해 대체된 듯 하다.
'교사됨'이라는 정체성의 영역의 일부를 훼손되는 것에 대해 경각심이 드는 것은 미래교사인 내게 일종의 생리적인 반응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