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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in Sep 19. 2016

내가 나를 만난 시간.

김연수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문장 기록. 

1.그러므로 사랑은 모든 인류를 유일한 존재로 만들고, 또 그러므로 이 우주는 유한할 수 밖에 없다. 

2.한때 퀼른에서 아우슈비츠로 가는 열차에 올라탄 적이 있는 헬무트 베르크는 인간이 이 세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까닭은 모두 사랑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라는 산상수훈의 한 구절은 평생 헬무트 베르크를 괴롭혔다. 자신은 증오도 이해했고 분노도 이해했지만, 결국 사랑만은 이해하지 못했다고 헬무트 베르크는 내게 털어놓았다. 증오나 분노와 달리 사랑이 가리키는 것은 저마다 달랐다. ... 사랑은 그 모든 것이었다.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 까닭은 그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이었다. 헬쿠트 베르크에 따르면, 하지만 그게 바로 신의 뜻이었다. 

3.아버지가 "이 세상에 말이다. 사랑이 없는 삶도 있을까?" 라고. 정민을 향한 물음인지, 자조의 혼잣말인지 혹은 원망어린 질책인지 좀체 분간하기 어려운 말을 내뱉었을 때, 정민은 "기억이 존재하는 한,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라는 자못 비장한 문장을 떠올렸다. 

4."내말이 그말이야. 운우지정이라는 게 바로 사랑이 아니겠냐? 그동안 마이산에는 한 서너번 가본것 같구나. 그런데 거기가서 그 돌탑들을 볼 때마다 사랑이란 걸 생각하게돼. 누군가 하룻밤 사이에 그렇게 많은 돌탑을 쌇을 수 있다면 그건 오직 사랑 때문이겠지.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그 돌탑들을쌓은 사람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세상을 갈망했다고 하더구나. 그런 갈망이 있었으니까 가능한 일이었겠지.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다 그런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5. 사랑은 입술이고 라디오고 거대한 책이므로. 사랑을 통해 세상의 모든것들이 내게 말을 건네므로.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그 입술을 빌려 하는 말은, 바로 지금 여기가 내가 살아가야할 세계라는 것이므로. 그리하여 우리는 이세계의 모든 것들과 아름답게, 이토록 아름답게 연결되므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니 사랑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것을 그도 알았더라면.

6.누구라도 죽을 수 밖에 없었기 대문에 그들이 죽은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필연적인 결과에 비하면 내가 살아남은 건 너무나 우연에 가까웠다. 그 죽음이 필연이라고 떠들어대면 떠들어댈수록 내 삶은 점점 더 우연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가장 먼저 삶과 죽은이 서로 그자리를 바꿨고, 그 다음에는 정의와 불의가, 진실과 거짓이, 꿈과 현실이 서로뒤엉키기 시작했다. 

7. 나를 구한 건 "자기 자신이 되어라" 라는 마지막 문장이었다. 인생은 자기 자신이 지배하는 것이다. 너의 인생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라. 무엇보다도 네가 선출한 지도자에게는 맡기지 말라. 자기 자신이 되어라.

8.칼 세이건은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전제를 통해 이 우주가 이처럼 광활한 까닭은 어딘가에 우리와 같은 인류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무의미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셋아은 온통 읽혀지기를, 들려지기를 , 보여지기를 기다리는 것 천지 였다. 

9.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그 순간 우리가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인생은 신비롭다. 그런 탓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몇번이나 다른 삶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무주에서 정민과 나란히 누워 바라본 밤하늘처럼 인생은 광활하고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무한한 삶.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일생, 즉 하나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구 미쳐버렸을 것이다. 

10.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번 뿐이었다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평 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 그런 순간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으므로, 그 기억만으로 그들은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여행을 시작한다. 




작년 겨울이었던가. 김연수 작가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을 읽으며 마음에 울림을 준 문장들을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 기록해뒀었다. 이게 저장되어있는 줄은 몰랐고, 몇일 전에 발견했다. 요즘 박웅현 CD의 <다시, 책은 도끼다> 를 읽고 있는데, 저자의 습관이 떠올랐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울린 문장들을 파일로 기록해둔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난 먼저 하고 있었다.  기억이란게 참 신기하다. 

이런 경험이 한 번 더 있었다. 초등학교 때 부터 가꿔왔던 네이버 블로그. 어느 날 우연히 임시 저장글을 열어보게 되었다. 꽤 숨어 있었던 글이 많았는데. 언제 쓴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감성이 충만했더랬다. 


김연수 작가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문장기록이나, 블로그의 임시저장글을 읽다보니, 과거의 나의 감성과 조우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저땐 저런 생각을, 저런 마음을 가지고 살았구나. 


마치 그 때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지금의 나는 느낄 수 없는 감성. 글에는 감성이 기록된다. 



내가 쓴 나의 글을 읽는 그 순간이, 바로 내가 나를 만나는 시간이 되지 않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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