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떠날 사람과 남는 사람을 이어주는 장면

애도의 시간 9 > 8월 23일 월요일

by 결 디자이너

덜컹덜컹.

어머니가 침대 보호 장치를 흔드는 바람에 눈을 떴다. 병실에 오면 어머니와 같이 생체리듬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간호하는 사람도 발 뻗고는 못 잔다. 작은 인기척에도 깼던 내가 오늘은 일어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머니 옆으로 가니 침대에 손으로 글씨를 쓰신다.

"미안해. 자는 시간에 깨워서. 물 좀 갖다 줘."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는 어머니는 계속 목이 타고 갈증이 나서 물을 수시로 드셨다. 내가 좀 피곤한 기색이 보였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뜨끔 했다.

어제는 미음도 안 넘어간다고 못 드시더니 점심에는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 드셨다. 이렇게 어느 순간은 정말 살아날 것처럼 먹고 싶은 것을 찾으시며 기력을 찾는다. 라면 국물에 밥 말아먹는 어머니를 보고 간호사는

“대박이세요~”

“어머, 라면 먹으면 안되죠~”

“괜찮아요. 먹고 싶은 거 다 드셔도 돼요.”


오늘은 아버님이 면회를 오는 날이다. 아버님을 기다리며 어머니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고 싶다고 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고 하신다.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립밤도 발라 드렸다. 긴장이 되는지 숨이 찬다고 하신다. 정말 소녀다. 소녀. 보호자 1인 외에 면회가 안 되지만 간호사가 눈감아 주었다.


아버님이 오시기 하루 전날 마지막 두 분의 마음이 서로 어긋나지 않도록 가족들은 작전을 짰다. 사위와 아들은 아버님에게 어머니가 듣고 싶은 말을 알려드렸다. 어머니가 제일 서운했던 것은 '표현 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오늘이 마지막 면회가 될 수 있으니 어머니께 하고 싶은 말을 진심을 다해 하시라고 코치해드리라고 신랑한테 말한 뒤 오늘을 기다렸다.


아침 8시. 핸드폰이 울렸다.

"네 아버님 벌써 오고 계세요?"

다짜고짜 큰소리로 아버님은 말씀하신다.

"아니, 이게 무슨. 너가 시킨 거냐? 무슨 편지를 쓰고 말을 하라고 해!"

"네? "

나는 아침부터 이게 뭔 상황인가 싶었지만 이 말 한마디에 상황파악이 되었다.

"호영이 아침에 나가는데 뭘 그렇게 시키는거야."

아마도 어제 저녁이 아닌 아침에 출근하면서 신랑이 아버님한테 오늘 면회의 작전에 대해 이야기한 모양이다.

나도 좀 화가 났다.

"아버님. 그냥 오실려면 오세요. 어머니 마지막 면회일 수도 있어서 부탁드리는 건데 이따 형님이랑 오세요."

어머니에 대한 아버님의 진심은 무엇일까. 한숨이 났다.


큰 형님이 아침에 아버님과 꽃집에 가서 어머니가 좋아하는 보라색 꽃을 함께 골라 드렸다고 전화가 왔다. 이제 병실에서 이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두 분을 돕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언제 화를 냈나는 듯 보라색 꽃을 쇼핑백에 숨겨서 들어오는 아버님의 모습에서 젊은 시절의 사랑했던 두 분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눈물이 맺혔다.


무뚝뚝한 아버님이 표현을 잘할 수 있을까. 그건 가족들의 우려였다. 아버님은 문을 열고 들어오자 급격히 야윈 어머니를 보시고 눈물을 흘리며 손을 잡으셨다.

“미안하다~~~아내로서 지금 그 자리를 지켜줘서 고맙다. 나도 아파서 병원 한 번 못 데려다줘서 미안하다.”

“아니야. 잘했어. 당신은 나한테 잘해줬어.”


이 말은 어머니의 진심일까?

나한테 말할 때는 아버님에 대한 서운함이 가득했는데 한순간 풀리신 걸까? 어머니의 ‘당신 잘했다’는 말은 사실은 서운했던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말일 것이다. 여태까지 산 세월의 잘잘못을 풀어헤치기보다는 모든 걸 품고 가겠다는 어머니다운 진심이다.


떠날 사람과 남는 사람을 이어주는 장면을 만든 것으로 자식의 역할은 다했다. 그 장면 넘어 어머니 아버님의 삶을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좀 더 건강하게 살 때 좀 더 사랑을 표현하고 살았더라면....

마지막 날 후회하지 않도록 그때 그때 풀어헤치리라.

내가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약속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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