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이 내 인생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살아가면서 숱한 질문을 던진다. 나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할 때 내 마음을 대변하는 글귀를 찾고자 책을 펼쳐보곤 했다. 하지만 그 문장들은 내 생각이 통할지언정 내 문장이 아니었다. 그 문장을 충분히 소화하고 작가와 소통하지 않았기에 좋은 글귀 정도로만 잠깐 내 마음에 머물렀다가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읽었던 책들 중 인생 책을 고르라면 딱 꼽을 수가 없다. 나의 경험과 생각이 담긴 글이 내 인생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에게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내 삶에서 자꾸 뭔가 빠진 듯한 공허한 이 느낌을 채우려고 글도 써보고 미술 심리 공부도 해보고 있다. 나를 위로하고 있는 시간을 갖고 있는 셈이다. 치유의 글쓰기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치유가 되려면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 어디가 아픈지 제대로 알아야 찌르든지 말든지 치유가 일어난다. 내 글에 생각을 나눠주는 사람은 내가 어디가 아픈지 이해한다. 나를 이해하는 한 사람을 만나고 내가 또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는 관계 속에 삶의 어떤 답이 있을지 모른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지 두 달이 되어가는데 계속 맴도는 말이 있다.
“뭐하던 분이셨어요?”
병원 관리자분이 올라오시더니 근조 화환을 보고 놀란 듯이 물어본 것이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는 정말 많은 근조 화환이 양쪽으로 길게 줄을 세워져 있었다. 관리자분은 고인이 어떤 지위에 있던 분이길래 이렇게 많은 화환이 들어왔냐는 뜻으로 물어봤을 것이다.
“자식을 잘 키우셨어요.”
나는 불쑥 이 말이 나왔다. 그러면서 난 질문에 적절하게 대답을 잘 한 건지 잠시 헷갈렸다.
어머니는 2녀 1남의 자식을 두었다. 그중 막내아들이 내 남편이다. 삼 남매가 적정한 시기에 다 결혼을 하고, 각각 두 명씩 손녀, 손자를 낳았으며 각기 제 뜻을 펼쳐 일하고 있다. 아들, 사위, 딸 모두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덕분에 예의상 회사에서 화환이 많이 들어왔다. 그 많은 근조 화환을 보낸 이들은 어머니의 얼굴 조차 모른다.
자식의 덕으로 어머니의 장례식장이 외롭지 않고 어머니의 덕으로 자식들이 잘 성장할 수 있는 삶의 순환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가족이구나.
그동안 나는 사회생활을 하며 팀장이 되고 실장이 되는 그 무엇이 되려고만 했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에 초점이 없었다. 어머니가 죽음이라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그렇게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어머니는 고통 속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어머니가 가는 길을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떠올리며 내 삶의 초점을 찬찬히 살피고 있다. 이런 깨달음의 시간을 주시려고 어머니가 나를 옆에 두셨나라는 생각도 든다.
어머니의 친구분들에게 장례 소식을 전하려 어머니의 핸드폰을 켰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연락처가 너무 없는 것이다. ‘아 ~~ 이런.....’ 그때 머리를 스쳐가는 기억. 병실에 있을 때 어머니가 핸드폰을 가져오라고 해서 계속 만지작거리시길래 어머니가 어디 문자를 보내시나 했었다. 연락처는 연락이 되어야 할 사람들로만 정리되어 있었고 사진들도 지울 것은 다 지우고 가족들 여행 갔던 것. 작년에 난타하며 이웃분들과 지냈던 사진, 손녀와 찍은 사진, 교회 구역 식구들 사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자식들이 누구에게 연락을 할 것인지, 누가 장례식에 올 것인지 어머니는 틈틈히 본인의 장례식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것이다. 어머니가 뭔가를 나누고 베풀었던 사랑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관계만 핸드폰에 남은 것 같았다.
내가 죽음을 맞이할 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가 중요했다면 어머니의 행동은 정말 의외였다. 과감하게 관계를 정리하고 소중한 것들을 먼저 챙기게 되는구나. 나도 누군가의 핸드폰에서 지워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 내가 소중한 사람도 나를 소중한 사람으로 남도록 서로 세심하게 신경써야 하는 구나.
오히려 가까이 있고 소중한 사람을 챙기지 못하고 남에게 더 잘 보이려고 하고 체면 차리려고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가족은 너무도 당연히 내 옆에 있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더 살피고 섬세하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이 가족이고 나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람들이다.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라.” 유언처럼 남기신 어머니의 말에서 유독 ‘사랑’이 콕 박힌다. 산다는 것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력 있고 충만한 삶을 사는 법은 마치 ‘사랑’으로 사는 것이어야 한다고 알려 주시는 것 같다. 남이 말하면 너무 당연한 말이어서 마음에 와닿지도 않아할까 봐 직접 나에게 해주시는 말이 아닐까. 내 삶에서 채워야 할 것은 '사랑' 한움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