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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 디자이너 Jul 25. 2022

중3도 귀여워

딸의 레시피

5월 18일,

오후 5시가 되자 큰딸 똘망이는 얼굴은 벌게지고 앞으로 책가방을 힘겹게 멘 채로(요즘 중학생 스타일인가 보다) 집에 들어왔다. 

"엄마~`더워~~~ 어제 먹었던 바나나 주스 해주세요~"

자기가 부탁할 때만 존댓말로 바뀌는 똘망이 양. 존댓말을 할 때마다 귀엽다는 생각을 한다. 

중3도 귀여움이 묻어나다니!!!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나름의 애교작전 아닌가.


"어제 학원 빠진 거  엄마가 병가 냈어"

"엄마 어제 왜 안 깨웠어? 학원 가야 하는데."

"너무 곤히 자서 깨울 수가 없었지, 요즘 몸이 피곤한가 본데? 정말 곯아떨어졌어. 수학 문제 하나 더 푸는 게 뭐가 문제니, 건강한 몸이 먼저지."

"오~ 이렇게 말하는 사람 엄마밖에 없네~"

"어떡하냐~~ 바나나 주스에 우유가 없다. 우유 사 올래?"

"편의점 갔다 올게"

"우유 2개짜리 붙은 거 세일하는 거 있어 그거 사 오면 돼"

"카드 줘"


이 대화는 평소의 대화가 아니기 때문에 특별하다.  '그럼 안 먹어, ' 이럴 줄 알았는데 순순히 심부름을 하는 걸 보니 진짜 먹고 싶은가 보다.

진짜 우유만 사 오려나? 편의점 가서 자기가 먹고 싶은 거 사 오겠지? 순순히 심부름을 하는 똘망이를 보며 웬일인가. 


"엄마 갔다 왔어. 바나나 주스~~~ 어제 진짜 맛있던데~"

정말 두 개짜리 우유만 사 왔다. 언빌리버블. 


똘망이는 어제 코맹맹이 소리를 하며 코로나 검사를 받고 오더니 저녁도 안 먹고 침대로 바로 뻗었다. 바나나 2개, 우유반, 물 반 넣고 갈아서 이것만 먹고 자라고 했더니 바나나 주스 먹고 진짜 꿀잠을 다음날까지 쭉 잔 것이다.  아이의 입맛에 딱 맞는 간식이 있다니. 계속 이 맛을 기억하고 엄마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등하교를 볼 수 있는 기쁨이 이렇게 달콤한 것이었다니.



똘망이의 5월 중학교 졸업앨범 찍는 날 

제 작년 사촌 조카가 중학교 졸업앨범을 찍는다고 우리 집에 와서 이것저것 입어보고 봐 달라고 했던 적이 있다. 사복을 입고 찍는 컷이 있어서 조끼리 콘셉트를 잡았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옷들을 들고 내려와서 입어보고 이상하면 반품한다며 외숙모랑 한바탕 패션쇼를 했었다. 


이번엔 똘망이의 졸업앨범을 찍는 날이다. 사촌 언니 찍는 것처럼 친구들이랑 콘셉트를 잡았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한다. 몇 주 전에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이 있다고 사진을 보내줬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주인공 같은 옷인데 검은색 티셔츠에 검정 주름치마 콘셉트, 티셔츠는 어깨가 중간은 뚫리고 코스프레하는 아이들이 입는 것 같은 옷이다. 이런 걸 어디서 파나. 몇 번 검색하다가 잊어버렸다. 그런데 당장 내일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다. 


"옷이 없으면 너라도 좀 챙기지. 얼굴이 예쁘니까 옷은 관심 없는 거냐? ~엄마는 다음 주가 사진 찍는 날인 줄 알았네"

"뭐 입지??"

그러더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옷을 찾아볼 생각도 안 하고. 

마지못해 내가 20대 대 입은 옷들을 꺼내서 맞을 만한 것이 있나 장롱을 봤다. 20대 때 입던 짧은 치마와 작아진 어른 옷을 다 모아두길 잘했다. 나랑 몸매가 비슷할 것 같이 아담한 똘망이에게 물려주려고 혹시나 하고 쟁여놓고 있던 옷들이다. 그나마 중학생스럽고 캐주얼한 옷 2개를 골랐다. 짧은 청치마와 아디다스 티셔츠를 입어보라고 하니 

" 어 ,,,"

그리고 들은 척 만 척, 계속 그림만 그리고 있다. 

더 이상 말하는 것은 나도 포기, 알아서 해라 하고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등교 20분 전 청치마를 입어보더니 "괜찮네. 이거 입고 찍을게. 티셔츠는 맞을 것 같으니까 그냥 싸갈래"  사뭇 조카의 졸업앨범 찍는 날과 비교된다.


그날 저녁, 

"애들이 너 옷 보고 뭐래?" 

"나보고 중학생 같대, 잘 찍었어."

"중학생 보러 중학생 같다는 말은 뭐냐?"


친구들은 원피스를 입고 화려하게 멋 내고 왔다고 한다.

아이의 말투는 너무 쿨해서 패션에 무관심한 건지, 자기가 관심 있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외골수 기질이 있는 건지, 똘망이는 아직은 화장도 안 하고 외모를 가꾸는 거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자기가 예쁘다는 걸 아나보다.^^

그런데 내 딸이지만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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