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레시피
<딸의 레시피> 매거진을 만들게 된 이유는 둘째 딸(태명 : 달님이)이 중학교 면접 캠프를 마치고 나오면서 한 말 때문이다.
초등학교도 뺑뺑이 추첨으로 10대 1의 경쟁을 뚫고 경인교대부설초등학교를 붙던 운 좋은 달님이는 중학교도 뺑뺑이 추첨으로 1차를 모집하는 중학교에 합격했다. 2차 면접은 학생 캠프와 학부모 면접을 보고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캠프를 끝나고 나오는 달님이에게 어땠냐고 물어보니 '급식도 안 남기고 다 먹었고. 그런데 교과서 수업이 아니래. 나는 복습노트 정리하고 싶은데... '라고 한다. 더 생각나는 거 없냐고 물으니 마지못해 마지막 시간에 30문항 자기에 대해 쓰는 문장 만들기를 했다고 한다.
"엄마와 나는 00한 관계이다. 이런 게 나왔어. "
"뭐라고 썼어?"
나는 아이가 뭐라고 썼을지 기대 반 불안감 반.
엄마와 나는 잘 알아가는 관계이다
이건 무슨 관계람????
"누가 보면 엄마가 계모인 줄 알겠네~~"
겉으로는 웃지만 웃는 게 아니다.
"엄마, 우린 지금 잘 알아가고 있잖아. 나쁜 뜻이 아니라고. 면접 볼 때 얘기 잘하면 돼"
더 이상 묻지 않았다.
20년의 회사생활 동안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아이들의 반짝반짝한 순간들을 많이 보지 못했다는 것.
나도 널 이제야 알아가고 있는 것 같으니까.
엄마보다 더 할머니에게 애착이 가있는 둘째에게 서운할 때도 있었고,
가장 행복한 기억이 할머니와 등산가고 할머니와 매주 금요일 밤 같이 자던 것이라고 할 때도 서운하기도 했었다. 제일 슬픈 기억도 할머니와 산에서 만든 솔순이(솔방울 이름)가 없어졌을 때이고.
엄마의 이야기는 잘 등장하지 않는 둘째.
아기 때는 엄마 바라기였던 아이다. 늦게 퇴근해서 오더라고 제일 반겨주는 건 둘째였고, 매일 한 침대에서 잤다. 달님이 가 일곱 살 때 아동 미술치료 임상으로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려준 이 그림을 여태 화장대 앞에 붙여놓고 있다.
안 버리길 잘했다.
퍼플색을 칠하고 "내가 중 1 되면 이러게 돼 거야"라고 썼던 일곱 살.
사춘기를 이때 알았던 것일까?
작년 사랑하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죽고 싶다고 마음의 문을 닫았던 달님이가 문을 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기 때 엄마에게 주었던 사랑을 잊지 않지.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무한 사랑을 주었던 아가야'
잘 알아가는 관계임을 증명하기 위해 딸들의 반짝반짝 기록을 남기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