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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 디자이너 Aug 04. 2022

검도를 잘하면 모기를 잡을 수 있잖아

하고 싶은 것은 하게 되어 있다.

똘망이 큰 딸에게 여름방학이 되기 전부터 방학이 되면 무엇을 할꺼냐고 물어봤다. 

검도를 하고 싶다, 유도를 하고 싶다. 그리스어를 배울까 독일어를 배울까? 영어말고 다른 언어를 배우고 싶은데..


"그런거는 왜 배우고 싶은 거냐? 잘하고 싶은거야?"


하고 싶은게 워낙 많은 아이라 검도든 유도든 잘하는 사람을 보고 멋져보이니까 그 배움의 과정은 생략하고 멋진 모습만 따라 하고 싶은 건 아닌지 물어본 것이다. 


"검도를 잘하면 모기를 잡을 수 있잖아."


--;;;;;;;;;;


태명이 똘망이라고 지어서 글에서만 똘망이라고 부르고 있다. (실제로는 이렇게 부르지 않는다)

딸이라고 하면 너무 평범한 것 같아서 태명을 써보는 것인데 똘망이라고 부르는 게 맞나 모르겠다. 

작은 벌레 한마리가 나와도 소리치고 동생을 부를 정도니 어느 정도 이해는 해보려고 한다.






똘망이는 머리보단 가슴이 먼저 움직이라는 아이이다.


방학의 보름이 지난 오늘도 가슴이 움직이는 일을 하고 있으니....

아침 12시까지 내 몸이 원하는대로 잠들어주기. 


내 몸이 그걸 원한다는 데 이걸 어찌하나......

새벽 4시까지 그림을 그리고 자기 하고 싶은 걸 하다가 잠드니 아침 12시까지 자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24시간을 자기 몸에 맞게 계획한다고 하니, 할 말은 없다만......


모든 성공한 사람은 새벽시간에 영감을 받더라. 그 이유가 있지 않겠어? 했더니,

자기도 새벽 2~4시에 가장 영감이 떠오르는 시간이라며--;;;;;;;;;;;;

그 웃는 얼굴이 하도 당당해서 나도 따라 웃고 마는 신비한 아이. 

일찍자고 새벽에 일어나는 건 한번 해보겠다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하고는 있지 않는 아이. 

내가 제안을 하면 "한번 해볼께."라고 항상 "엄마말도 일리가 있어." 하며 수긍은 해주는 센스도 있다. 

하지만 결국은 자기 맘대로 한다는 걸 엄마가 모를 줄 알지? 


진지한 이유이면 똘망이는 그냥 자기가 하는 아이다. 검도를 정말 배우고 싶었으면 이미 자기가 다 알아보고 했을 것이다. 유투브로 그리스어랑 독일어를 하는 걸 들어보더니 자기는 독일어를 해야겠다고 한다. 이미 독일어의 발음은 섭렵했다. 일본어도  좋아하는 일본 만화작가 유투브를 보더니 독학을 시작했다. 일본 라디오와 코미디프로그램을 보며 깔깔거리며 웃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영어도 그런 식으로 좀 배우면 안되겠니???


이런 빠른 배움의 습득에 비해 학업성적은 정말 내 예상을 빗나가는 점수를 가져온다. 하고 싶은 것에만 몰두하는 성향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왜 자기는 사회 경제를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

"돈은 왜 쓰니? " 라고 하면 돈 쓰는 거랑 사회경제랑 무슨 상관이냐고 한다. 

사회경제는 돈이 돌아가는 그런거 배우는 거 아니냐? 실생활과 연계해서 배움의 의미를 가지면서 가르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생활과 너무 동떨어진 이론을 먼저 설명하면 누구든지 내 일이 아니요~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 라는 의미가 나에게 중요하듯이 똘망이에게도 중요하다. 

"왜 그림을 그리고 싶어? "

"그냥 .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 하루종일 그림 그린 날이 제일 좋아 "

"누가 원하는 거야?"

"내 영혼의 새????"


내가 어이없는 질문일 거라 생각하며 한 질문에 선뜻 대답하는 딸을 보며 사실 놀랐다. 

내 안에 다른 내가 또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딸. 

그냥. 이라는 말을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뒤에 덧붙인다. 아직 의미를 설명하기에는 해본 것이 많지 않은 나이, 아직 더 많은 것을 해봐야 알 나이, 청소년기이다. 아마 그래서 난 딸이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예중, 예고를 보낼 생각은 없었다. 재능을 일찍 발견해서 키운다는 입장과 반대되는 선택이긴 한데 충분히 좋아하는 것을 더 탐색하고 즐기면서 하기를 원한다. 


일찍 진로를 결정하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일찍 시작하면 실력이 더 뛰어나 보일 수 있다. 진짜 실력은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란 걸 알아버린 나는 딸에게 기술연마를 가르치고 싶진 않다. 지금 한창 꿈을 꾸고 있을 나이에 정말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도록 여유시간을 준다는 것이 때론 부모로서 잘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난 신이 주신 잠재력의 더 큰 계획을 믿는 사람으로서 부모는 아이가 하는 것에 의미를 같이 찾아주고 같이 꿈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조력자이면 좋겠다. 아마 내가 이런 부모를 원했나보다.


진로의 선택은 청소년기, 대학졸업 후 취업 할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중년에 한번 더 혹은, 노년에도 찾아오는 것이 진로의 선택이다. 긴 인생을 봤을 때 내가 정말 점수에 상관없이 좋아하는 일을 했던 것은 무엇일까 되돌아 보는 일이 분명 생긴다. 내 인생에 영혼의 새가 훨훨 날고 있는지 새장에 같혀 있는지, 아직도 알에서 깨어나오지 못한 건 아닌지. 


진짜 실력은 창조적으로 내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지 않을까. 험한 풍파가 닥쳐도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마인드. 흔들리는 꽃처럼 사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두려움에 맞서 용기있게 도전해보는 것 .지금 중년이 된 내게 필요한 것을 딸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딸을 키우며 내가 딸을 키우는 건지 딸이 나를 키우는 건지 헷갈린다. 


모기를 잡기 위해 검도를 배우다가 더 큰 고래를 잡을 수도 있는 일이다. 사실 우리 부부는 모기 잡는 일에 적극 지지해주는 편이다. 물론 첫술에 그렇진 않지만. 

집 주변의 검도학원을 신랑이 알아봤다. 딸이 하고자 한다고 하니 신랑도 적극적으로 알아보는 것은 잘해준다. 시설이 깨끗한지, 주말에는 하는지, 버스정류장에서 너무 멀지는 않은지, 그리고 기다렸다. 다시 한번 딸이 정말 검도를 해보고 싶다고 말하면 슬쩍 여기가봐 라고 말해줄 참이었다. 


나는 이런 속마음은 숨긴채 모기를 잡기 위해 검도 장비를 사고 학원비를 대주는 것은 무리다라며 

"엄마랑 같이 월수금 5만원하는 요가 다니는 건 어떠냐?" 라고 제안해보았다. 


그리고 첫 일주일 월 수 두번을 나를 따라 요가를 갔다. 

그 다음주는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내일은 꼭 간다' 말은 하면서 일어날 생각은 없다. 

내 속은 터져도 니 속은 안 터진다면 다행이다.  


하고 싶은 것은 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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