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말을 걸어온 것 : 고도원의 아침편지
진정으로 치료해야 할 상처들
병에 걸려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면,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고 우리가
치료해야 할 정말로 중요한 상처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상처 입은 관계,
우리의 신앙에 뚫린 구멍, 깊이 감춰진 두려움이라는 종양,
서서히 무너져 가는 창조주에 대한 믿음,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냉정한 마음 등이 우리가 진정으로
치료해야 할 상처들이다.
- 말로 모건의《무탄트 메시지》중에서 -
* 우리가 진정으로
살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양한 형태로 세상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때로는 그것들이 아픔으로 상처로 화살로 다가오며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갈 수 있게
이끌어 줍니다. 그것을 품어 안을 수 있는
몸과 마음일 때 우리 마음에
치유가 시작됩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중-
메일함을 여는 것은 나를 찾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일까.....
난 사실 메일도 카톡도 잘 확인 안 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이상하게 내게 하는 목소리처럼 들린다. 세상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나는 그 편지들을 어느 순간부터 소중히 읽고 있었다. 음 그렇군 , 아주 심오한 울림이 있다.
아직, 이 내용이 무엇과 연결될지 모르고 있었다.
아이들이 방학이 되니 아이들을 피해 남한산성 작은 도서관에 자주 가게 되었다. 선풍기 바람 앞에서 방귀를 끼지 말라는 것으로 서로 다투는 딸들을 피해 나는 도서관으로 향한다. 가족이라도 기대감과 환상 같은 것은 있어야 한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부탁을 하셨다. 반납함이 작아서 미처 구겨 넣지 못하고 돌아가는 도서관 이용자들이 있었다며 나에게 도서관 이용자로서 건의를 해달라는 것이다. 도서관에 와서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왠지 글을 써줄 것 같은 느낌이 드셨나 보다. 도서관 사서의 말은 빨리 반영이 안 된다고 하시며. 나는 반납함이 작은지 어떤지 불편함이 전혀 없었지만
"아 ~~~ 그러셨어요~~ 진짜 여기 사람들은 불편한데 빨리 조치를 안 해주는군요" 하며 불편함을 겪는 사서 선생님과 이용자들의 마음을 대변해 글을 올렸다.
내 의견으로 바로 반영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다음 주에 정말 도서관 반납함이 큰 것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그렇게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후 " 이 책 한번 보셨어요? " 하면서 책을 내미신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다.
"본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잘 읽어볼게요~" 하며 책을 빌렸다.
고도원의 편지와 <진정으로 치료해야 할 상처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내용은 서로 날실과 씨실로 엮어져 나의 마음을 두들겼다.
나의 마음을 두들이며 다양한 형태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것의 존재는 무엇인가. 그것이 세상인지, 나를 창조한 신인지....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갈 수 있게 다시금 나를 깨우는 것인지, 그것을 내가 온전히 품어 안을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상태인가 다시 돌아보라는 어떤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치료해야 할 상처와 내 삶에서 진정으로 살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 질문을 하고 있을 때
두 번째 말을 걸어온 것
모리 교수님과 미치 앨봄의 마지막 수업이야기다.......
한 영혼이 잠들고 한 영혼은 깨어난다...........
죽은 후 잊힐까 봐 걱정스럽냐는 질문에 “사랑은 살아있기 위한 방법이라네. 사랑은 이 세상을 뜬 후에도 그대로 살아 있기 위한 방법이지”라고 모리 교수가 말했다.
죽어가는 사람이 살아남을 사람과 대화하면서 살아남을 사람이 알아야 할 것들을 말한다. “묘비에 뭐라고 적을지 결정했네. “마지막까지 스승이었던 이 “
모리 교수님의 "사랑은 살아있기 위한 방법이라네."
어머니가 마지막 남기신 말. "선미야 , 사랑해. 서로 사랑하며 살아라."
우리 엄마의 마지막 수화기를 통해 전해진 말 " 선미야 사랑해."
이 말들 속의 '사랑'이 진정 나는 무슨 뜻인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나 보다.
사랑을 나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남녀 간의 사랑, 희생해야 하는 것, 부모로서의 내리사랑, 가장 중요한 것인데 너무 흔하게 쓰이는 말 같아서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서,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특별한 단어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나 이런 자만심은 어디서 올라오는 것인가.
아직 나의 뿌리는 완전히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 아무렴. 땅 속에 보이지 않게 묻혔던 상처가 어찌 쉽게 치유될까.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처럼, 나도 어머니와 함께한 한 달을 잊지 못한다. 다음 달이면 1년이 되어 간다.
병실에 있을 때 거의 밥은 못 넘어가고 식욕도 거의 떨어져 가고 있던 차에 어머니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하셨다. 그것이 차가운 것이던 뜨거운 것이던, 영양가가 있던 없던 뭐든지 드셔야 할 때였다.
"입맛은 없고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네. 그거 이름이 뭐더라 갈색........"
여전히 우리 집에는 누가바가 인기 있는 아이스크림이기에 단번에
"누가바요?"
어머니의 냉장고에 어떤 아이스크림이 있었는지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아버님도 항상 쟁겨놓던 누가바가 생각났다.
"아니~~~~"
진짜 어머니가 지금 찾는 이 아이스크림을 맞추고 싶었다.
"그럼 뭘까요?"
요즘 아이스크림은 아닐 거 같고, 어른들이 좋아하는 3대 아이스크림으로 말할 것 같으면 누가바, 비비빅, 바밤바?
"바밤바요?"
"어 ~~ 그래 그거."
진짜 내가 어머니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닌지 내 귀를 위심할 뻔했다.
'나 너무 대단한데' 내가 이렇게 자랑스럽다니!!!! 속으로 나를 칭찬하며 병실과 같은 층에 있는 편의점에 갔다.
다행히 다행히,,,,,바밤바가 1개 남아 있었다.
"사장님, 바밤바 1개밖에 안 남았는데 더 갖다 놓으시면 안 돼요? 저희 어머니가 식사는 못 드셔도 바밤바를 찾으셔서요."
" 1개 남았어요? 여기 환자들도 바밤바를 많이 찾으세요."
식욕도 욕구다. 살고 싶은 욕구. 누가 바대 신 바밤바가 먹고 싶은 오늘이다.
한 영혼은 잠들고 한 영혼은 깨어나야 한다. 살아있기 위한 방법으로 사랑으로 밥을 차려 먹어야 한다.
오후가 되더라도 한 끼도 안 먹고 싶은 마음을 잠들게 하고 뭐라도 먹어야 한다. 한 영혼이라도 살찌워야지.
오늘 내가 진정으로 살펴야 할 것은 가족들의 식사, 한 끼라도 사랑으로 먹이기.
결론이 왜 이리 시시하게 끝나지........ 글을 쓰며 스펙터클한 깨달음이 올지 알았다.
모든 여자들이 날씬하지 않은 것이나 모든 남자들이 부자가 아닌 것도 마찬가지, 그런 건 문화가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강요한 것들일 뿐이야, 이들 역시도 절대로 믿지 말게.
.... 어떤 사회든 문제는 안고 있지. 달아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네,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자기의 문화를 창조하려고 노력해야지, 어디에서든 우리 인간의 가장 큰 단점은 근시안이야, 우리는 어떻게 될지를 바로 보지 못해. 우리의 잠재력을 가능한 만큼까지 쭉쭉 뻗어 나가질 못하지,.... 인류라는 대가족에 관심을 가져야 하네, 자네가 사랑하고 자네를 사랑하는 작은 공동체를 세우란 말일세.
나에게 책을 건네준 사서 선생님의 관심의 손길도 도서관을 이용하는 인류에 대한 사랑이다.
방학 내내 삼시 세끼 차려먹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작은 공동체 '가족'을
먼저 세우라는 현시점의 깨달음......
내가 품어 안을 수 있는 몸과 마음이 될 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보이게 될 것이다.
내가 정말 자랑스러웠을 때는 '주는 것이었을 때' 임을 잊지 말자.
내가 줄 수 있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