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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pr 02. 2017

나는 엄마다. 46

엄마가 된 이후로 나의 하루는 너무 길고도 짧다.


남편이 출근하고 애기 기저귀 갈고 먹이고 트름시키고 놀아주고 재우고를


한 대여섯번 반복하면 하루가 간다. 중간중간 아가가 잘때 유축하면 아무리 끼니를 잘챙기고


수시로 먹고싶은걸 입으로 넣어도 피곤은 풀리지 않는다. 힘조차 나지 않아..우울해진다.


나도 아가 잘 때 자고 싶다. 아니 유축이라도 하고 싶지 않다. 뭐 여튼.


남편이 퇴근하면 공동육아 후 남편은 자러 들어가도 나는 잠들지 못한다.


남편 퇴근과 동시에 유축을 하면 정확하게 10-11시, 너무 짜증나서 한시간을 버티고 버티면


12시에 유축을 하고 잠들어야 새벽에 그나마 세시간이라도 연속 잘 수 있기 때문에


나의 하루는 너무 길다. 그냥 자버리고도 싶지만 그러면 새벽에 가슴이 아파 깨면


이미 뭉칠때로 뭉친 가슴과 막힐때로 막혀버린 유선과 한시간이 넘게 씨름해야


겨우 가슴이 말랑해진다.


통잠자고싶다. 남들은 다온이가 통잠잔다고 하면 복받았다고 그런 효녀가 없다고들 하면서


부럽다고 하지만, 난 다온이 태어나고 한번도 통잠 잔적이 없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정말 새벽에 일어나지 못해 자버린 날 빼고는


다온이가 신생아때는 신생아라 두시간마다 깨서 못자고 그 이후에는 유축하느라


못자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제 유축으로 힘들다하면 남편도 친정엄마도 그러니까 진작 끊으라고 하지 않았냐고


구박아닌 구박을 하니 .. 속은 더 답답하다.


나라고 왜 안끊고 싶겠나. 하지만 다온이가 너무 잘 먹고 때 맞춰 아주 꽉꽉차오르는


젖을 나 편하자고 끊는게.. 아무리 말한들 내가 아닌데 누가 이 마음을 알까.


수없이 차오르는 이 번뇌와 고민. 우울과 미련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찌 알 수 있을까.


그래서 가끔은 옛날의 나를 생각한다.


다온이가 있어 정말 큰 기쁨이지만, 가끔은 그리울때가 있다.


퇴근하고나서 맘껏 뒹굴거리며 티비보고 책읽고 치즈초코와 놀던 내 모습이.


주말이면 조조영화보러가고 연극보러가고 맛있는거 먹으러 가고 가끔 차는 없어도


훌쩍 가까운데라도 버스타고 떠나곤 했던 내가.


어쩌다 발견한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올레티비로 첫회부터 연짱 보던 날들이.


먼저퇴근해서 남편을 위해 서툰솜씨라도 요리를 해서 같이 먹고 같이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푹 자고 일어나 늦은 아침을 맞이하던 날들이.


지금은 아가와 남편이 다 잠들고 나면 단 30분이라도 티비를 보려고 키면 얼마 되지 않아


졸고있는 나를 발견한다. 혹여나 버티고 버텨서 늦게 자면 그 다음날 너무 피곤해서


우울함에 뒤덮힌 나를 보게 된다.


그나마 주말. 그것도 남편이 일 없는 주말에나 지금과 같이 이 밤에 여유를 부려본다.


나도 남편의 공사다망한 술자리에 선뜻 보내주고 싶고 친구들 만난다하면 갔다오라고


기분좋게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다.


유일한 숨구멍인 주말에 하루종일 어떤일로 집을 비워서 결국 또 독박육아에 지치면


정말 나도 살아야하기에 뒷풀이까지는 정말 안하고 왔으면 하고 내 뜻에 따라주는 남편이


한없이 고맙지만 그만큼 괜히 내가 남편의 앞길을 막고 있는건 아닐까. 해서 속상하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칭찬받고 탐내는 인재로 쭉쭉 잘나가는 남편인데.


가끔은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이니만큼 그냥 크게 욕심부리지 않고 승진이고 돈이고


내려놓고 소박하게 일상의 행복을 누리면서 살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남편의 가슴속 어딘가 웅크리고 있는 열정을 욕심을 꺾어버릴것만 같아 차마 말을 못했다.


나만 내려놓아야 하나.. 짤릴걱정없고 꾸준히 쥐꼬리만큼이라도 월급이 오른다는것에,


못해도 6급은 하지 않을까 하니 .. 그냥 이대로..


왜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걸까. 엄마가 되니 정말 나는 없어진걸까.


혼자서 여행도 잘 다니고 글쓰는것도 좋아하고 커피와 라면은 중독수준으로 좋아했으며


잠은 하루 12시간도 자곤 했던..,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모조리 독파해야 속이 시원한..,


수사물은 만화고 드라마고 내리 10편도 넘게 보곤 했던..,


처음 임용 됐을 때 가장 친한 동기와 4급까지는 꼭 가자고 인사도 손가락 네개만 피고


했던 열정 가득했던 나는.., 없어지는 걸까.


오늘 친정엄마가 다온이가 돌 때 어린이집 보내는건 조금 그렇지 않냐고.


두살 세살은 되야하지 않겠냐고. 그래서 엄마가 봐줄꺼냐고, 아니면 내가 휴직을 계속 해야하냐고 물으니


대답없으신..,


정말로 내가 복직하고 남편에게 휴직을 종용하면 남편은 나중에 내가 자신의 탄탄대로에


금을 가게 했다고 원망하게 될까.


아는 언니가 그랬다. 지금은 힘들어도 이 시간도 훅 지나가고 돌아보면 내가 제일 잘한게


내 새끼 키운거라는걸 깨닫게 될꺼라고. 그러고 보니 엄마도 종종 그런말씀을 하셨다.


본인이 제일 잘한건 나와 동생을 낳은거라고. 그렇게 속을 썪였는데도..


참 부모란게 무엇일까. 왜 신은 부모라는 가혹하고도 찬란한 과업을 인간에게 주신걸까.


무엇을 바라며. 무엇을 깨닫길 바라며.


나도 나중에 결국에는 다온이와 훗날 태어날 다온이 동생을 낳고 키운것이 내 생에


제일 잘 한일이라고 다온이에게 말 하게 될까.


하긴 30년이 넘게 살도록 딱히 잘한일이 없네. 혹자는 지금껏 살아온것만으로도 잘했다고 하지만.


글쎄. 10년이 넘도록 지독하게도 이어진 왕따에도 목숨을 버리지 않았으니 저말이 맞기도 한듯.


그리고 뭐가 있지? 학창시절 교육감상 받은거? 대학때 장학금받고 유럽이고 미국이고 다녀온거?


공무원시험 붙은거? 큰맘먹고 다이어트해서 14kg뺀거? 이번에 공따동 1호에 참여한거?


개인시집낸거? 다 시원찮다. 아니 다 귀하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희미해져가는 나 자신을 다시 칠하기에는 그 어떤것도 붙잡을 만하지 않다.


하..결국 이 글에서 내가 하고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점점 단순해져가는 일상속에 단어도 가끔 떠오르지 않는 출산 후유증과


가만히 있어도 빠지는 머리카락, 감기라도 하면 한주먹은 뽑혀서 욕조 하수구를 막아버리고


다래끼 코피 중이염에도 모자라 주부습진. 심심하다 싶으면 설사 죽죽.


언제나 다시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나는 나를 되찾을 수 있을까.


거의 둘째는 낳겠다고 마음을 굳혔지만 사실 또 나보고 육아휴직 하라고 하면


심각하게 다시 고민해볼것이다. 낳는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 정말 맞는말이다.


출산에는 끝이 있지만 육아에는 끝이 없으니.


다온이 126일. 나날이 이뻐지고 잘 웃고 잘 울지도 않는 착한 우리딸이 너무 사랑스럽지만


하루하루 쌓여가는 응어리와 답답함과 우울함이 또 언제나 구토하듯 뿜어져 나올까.


그때는 소리라도 내서 울고 싶다.

함박웃음. 다온이.


사랑한다 딸. 마음이 울컥할 만큼.


엄마가 다온이 신생아때 부터 찍어온 영상들을 보며 지금 다시 돌아가면


더 잘해줬을텐데 하고 후회했단다. 수없이 미안하도 고마워. 하나밖에 없는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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