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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pr 27. 2017

나는 엄마다. 51

내가 죽어도

오늘 문득 아가 옆에서 쉴새없이 팔다리를 움직이는


아가를 보며.. 만약 내가 이 아이가 세살이 되기전에 죽는다면


이 아이에게 내 존재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보통 두세살까지는 기억이 없다고 하니..


첫 대면했던 순간도, 벌써 5개월전이지만 젖이 돌기도 전에 젖을 찾는 다온이에게


빈젖이지만 열심히 물렸던 기억도, 배넷저고리가 커서 움직일때마다 태극기처럼 펄럭이던 때도,


안맞는 분유로 배앓이를 하며 설사를 쭉쭉해서 약도 먹고 병원에도 집 드나들듯이 했던 때도,


첫 예방접종에 울지도 않고 기특하게 견디던 모습도, 처음으로 분수토를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도, 먹다가 잠들고 자면서 웃던 기억도, 눈을 맞추고 웃었던 기억,


같이 처음으로 유모차 끌고 나갔던 기억도, 지금은 산후풍으로 할 수 없지만


팔이 너무 아파도 끝까지 안아재우던 날들도, 터미타임 첫 시도에 포복하는것 같은 자세에


엄청 웃었던 기억도, 범보의자에 처음 앉혔던 날도, 책을 매일매일 읽어주던 것도,


직수시도한답시고 30분을 울렸던 날도, 분유바꾸고 설사가아닌 응가를 처음 한 날의 기쁨도,


모빌을 처음 유심히 보던 날도, 모빌보다 잠든 날도, 통잠을 자기 시작한 날도,


나 혼자 처음 씻겨본 날도, 코감기가 걸려 그릉그릉 하며 콧물흘리던 날도,


처음 소리내어 웃던 날도 젖꼭지 답답하다고 울어서 급하게 교체해주던 날도,


처음 내복입던 날도 우주복 입던 날도, 아기띠하고 나간날도..


이제 151일. 갓 5개월동안 위에 나열한 것 외에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다온이 기억속에는 존재하지 않고 내 기억속에만 있다가 시간이 흐르면 차츰차츰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당연하지만 마음이 숙연해진다.


한 때는 너무 힘들어서 베란다에서 뛰어내릴까 남편이 출근하기전에 도망가버릴까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쓰러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온갖 나쁜 상상을 하다가


이제는 생각이 꼬리를 물어 진짜 내가 죽는다면 다온이는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니


더 현실적으로 누군가가 내가 죽었다는걸 혹은 쓰러졌다는 걸 발견하기 전까지 다온이는 어떡하나.


하는 생각과 과연 이 시기에 아기들은 몇끼를 굶어도 살 수 있을까 하는 이상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혼자 있으니 별 생각을 다한다.


아까는 다온이 옆에 있다가 워낙 다리를 쩍벌린 상태로 바둥거리거나 바닥을 내리찍는걸


좋아하는 다온이에게 복부를 강타당하고 (으악 엄마 기절!)하고 쓰러지는 척을 했는데


너무 어린아가에게 너무 큰 기대였는지 다온이는 나를 쓱 보고 다시 바둥대며 손가락을 입에


집어넣기 바빴다.


그런 모습을 보니..더더욱 이 시간들이 거의 아가와 나와의 시간인데


공유하지 못하고 오직 나만 슬퍼하고 기뻐하고 분노하고 좌절한다고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벌써 5개월. 누구 말처럼 엄마가 아무리 잘하려고 애를쓰든 조금은 쿨하게 키운다고


내버려두든 시간은 흐르고 아기는 큰다.


이제 제법 범보의자에도 잘 앉아있고 터미타임은 선수가 되었다.


그렇다고 목을 완전히 가누는건 아니지만 세워안을때 다온이가 갑자기 몸을 뒤로 꺾거나


발버둥만 치지 않으면 목을 안받쳐도 될 정도니 정말 감개무량하다.


오뚜기랑 눈싸움!
이날 이렇게 웃은이유는 지금까지 아무도 모른다.

요즘 내가 가장 기다리는건 다온이의 뒤집기이다.


사흘 먼저 태어난 아는 엄마의 아들은 벌써 뒤집어서 이제 시도때도 없이 뒤집고


혼자 잘 논다는데 우리 다온이는 내가 앞에서 재롱을 너무 많이 부려서일까.


그저 누워서 바둥바둥대고 손가락 빨고 가끔 돌고래 뺨치는 소리를 낸다.


꺄~흐흐흐흐 꺅! 훙훙훙훙.이건 뭐 글자로 표현되지 않는 소리이다.


나는 다온이가 어떤 소리를 내도 늘 칭찬하려 애쓴다. 예쁜 소리를 내네~하면서.


실제로도 예쁘지만 의식적으로라도 칭찬해주고 쓰다듬어 주려 노력한다.


나중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온이가 아프지 않고 자존감 강하게 컸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래서 살면서 시련은 그 횟수와 깊이는 다르지만 꼭 한번은 찾아오니 그 때


높은 자존감으로 자신을 비하하지 않고 씩씩하게 이겨냈으면 좋겠다.


내가 그러지를 못하니..


그래서 뒤집기를 시도하거나 성공하면 누구보다 큰 리액션으로 폭풍 칭찬해줄 수 있는데


언제나 그 날이 올지 현재로선 기약이 없다. 그래서 나는 하루하루 기다린다.


재촉한다고 될것도 아니고 실망한다고 해결책도 없으니.


사실 다온이가 너무 예뻐서 조금은 천천히 자랐으면 하면서도 하루는 빨리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동시에 공존하는 나날들이 이어지지만,


또한 가끔 밤새 악몽에 시달려서 한숨도 못자거나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젖몸살에 꼬박 며칠을


고열과 오한에 시달리다보면 너무 몸이 힘들어 혼자있고 싶은 날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다온이 엄마고 다온이를 사랑한다.


그리고 보는 사람마다 자꾸 다온이가 아들아니냐고 하고 친정엄마가 먹보 뚱땡이라고 놀려도


객관적인걸 떠나서 내눈에는 제일 예쁘다.


오늘 다온이 혼자 목욕시키려면 체력을 비축해야겠다.


모자도 잘 어울리고 핑크도 너무너무 잘 어울리는 우리 다온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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