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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May 04. 2017

나는 엄마다. 52

단유

오늘로 다온이 생후 158일.


156일부터 완분. 153일 이유식 시작.


요 며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38-39도의 고열을 한 손이 지닌 손가락수 만큼


겪고 난 후 더이상은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과감하게 단유약을 처방받았다.


약만먹으면 바로 마를 줄 알았던 젖은 여전히 때에 맞춰 차 올랐고


나는 그 후에도 두어번의 고열로 해열제를 하루 두번씩 네번이나 먹었고


가슴은 가슴대로 아프고 고열로 인해 두통은 두통대로 단유약때문에 속은속대로


미식거리고 오한때문에 이 더운 날씨에 위아래로 수면잠옷에 수면양말까지 껴입고


겨울이불을 뒤집어쓰고 막을 틈도 없이 흐르는 눈물을 홀로 삼켜야 했다.


이제는 단유약 부작용이고 뭐고 다 감수할테니 제발 말라달라고 젖에게 무릎이라고


꿇고 싶을정도가 되었을 쯤 내 몸은 38.9도라는 성인이 된 후 최고 높은 고열을 찍고


해열제를 또 먹고 남편이 찬 물수건을 이마에 계속 올려주어도 떨어지지 않아


응급실을 가야하나 고민하게 만든 후에야 차차 마르고 있다.


지금은 아예 유축을 안하고 있지만 처음 단유를 시작했을 때에는 (5일전)


너무 힘들어서 코피가 줄줄나고 그래서 10분, 5분, 3분. 2분 30초씩 시간을 줄여가며


유축을 했는데 끝끝내 녹색모유가 나오기에 이르렀고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았으나


이러쿵저러쿵 너무 말이 많아서 결국엔 유방외과를 찾게되었다.


이미 임신때부터 한쪽 가슴만 심하게 커져버렸기에 그냥 그렇구나 생각했는데


유방전문의의 소견은 달랐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가슴은 쌍둥이처럼 똑같아야 정상이고


원래부터가 짝짝이였으면 수유하면서 더 부각될수는 있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나처럼 3배 가까이 차이가 나면 정상소견은 아니라고 조직검사를 해보는게 어떠냐고


하는것이다. 정말 재수가 없으면 암일 수도 있다고. 응? 암? 암? 암!?


내 혈연중에는 유방암이라고는 전혀 없는데..? 암..?


불안한 마음에 초음파를 봤는데 다행히 초음파상으로는 젖만 아주 꽉 차서


성이 나있고 염증소견도 없으나 너무 큰 차이에 자꾸 의사가 암 얘기를 꺼내서 겁도나고


심기도 불편했다. 사실 혈연중에는 유방암 환자는 없으나 셋째 외숙모가 유방암으로


결국 수술을 받고 가슴을 절제하는 것을 봤기때문에 유방암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고 있기에..


게다가 재발해서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했다는 소식까지..


그러나 저러나 남편은 30만원에 달하는 조직검사 비용에도 불구하고 해보라고 하는데


난 어쩐지 나의 맹목적인 믿음에 기대어 영 내키지가 않아서 일주일 후에 다시 와보겠다고


하니 의사도 일주일까지는 양호하다고 더이상 권유하지 않았으나 끝까지 괜히 한달넘게


버티다가 겨드랑이까지 암세포가 퍼져서 오는 최악의 상태가 있을 수도 있으니


유념하라고 ㅡㅡ 이 의사 뭐야 진짜..그러면서 그럴때를 대비해 초음파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증거를 남겨놔야 한다며 초음파사진을 찍어 내 차트에 붙여놓는 제스쳐까지--;


생각할수록 불쾌하고 찜찜하다..


다행히 가슴은 조금씩 말랑해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뚜렷하게 차이나는 크기때문에


만약에 실손보험을 들은 보험사에서 조직검사비용도 보상해준다고 하면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며칠전 38도로 아무것도 못먹고 병원에 실려가 영양제와 진통제, 항생제를


쓰리콤보로 팔에 바늘을 세개나 꽃았던날 혹시나 해서 실손보험에 보험료 청구를 했더니


급여부분 뿐만아니라 비급여 부분까지 다 보상해줘서 괜히 이번에도 기대가 된다.


뭐 여튼 나의 단유는 이렇게 요란법석하게 진행되고 있다.


계속 되는 고열로 정말 내 생에 처음으로 그만좀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울었고


이렇게 잘 차오르는 젖을 결국 나 편하자고 끊은게 미안해서 다온이를 안고 있다가


울었고, 지금도..막상 젖이 말랑말랑해져가니 왠지모를 우울함이.. 내 주위를 맴돈다.


나중에 다온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전까지는 자기가 모유를 먹었는지


분유를 먹었는지 관심도 없겠지만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후 내 기억속에는 이 시간들이


어떻게 남을까. 28년이 지난 지금도 내 동생에게 젖을 짜서라도 먹였어야 했다고


속상해하시는 친정엄마처럼 나도 그때 6개월까지는 먹였어야 했는데..하고 속상해 하려나.


그치만 난 진짜..노력했다.


정말.. 젖몸살도 다섯번이나 겪고 툭하면 뭉치는 젖때문에 고생도 정말 많이했고


그렇게 좋아하는 잠도 포기하고 새벽에도 꼬박꼬박 일어나 유축하고 그런데도


가끔 다온이가 안먹겠다고 하면 한시간걸려 겨우 짜낸 150전후의 모유를 버리며


남몰래 울기도 하면서.


이제 모유 안녕. 유축기 안녕.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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