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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May 21. 2017

나는 엄마다. 56

새벽에 꼭 한번씩 뒤집다가 깨는 다온이 덕분에


덩달아 잠이 홀랑 깨버린 이 시간. 새벽 네시 사십분.


누군가는 누워서 젖을 물리고 누군가는 나처럼 급하게 분유를 타서 먹이고


누군가는 울어재끼는 아가를 달래고 있거나 갑자기 깨서 노는 아이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 시간. 문밖으로 앞집의 누군가 출근하는 소리가 들린다.


자주 드나드는 온라인 쇼핑몰을 들어갔다가 속옷 세트 특가 뜬것을 보고 문득


그동안 엄마가 되느라고 내가 한송이 꽃과같은 여자였다는 사실을 너무 잊고 살진 않았나 하는


씁쓸함이 온몸을 뒤덮어 온다. 어제는 동기 결혼식때문에 무려 5개월만에 솜씨는 없지만


아이섀도도 바르고 비비크김에 팩트도 팡팡 두드리고 입술도 바르고 나니


아, 나에게 이런 얼굴도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온이를 키우며 엄마가 되어간다는 것에 엄청난 보람도 솔직히 아직은 모르겠지만


이제는 엄청난 후회도 들지는 않는데 살살 새어들어오는 이 서글픔은 뭘까.


물론 화장해서 예뻐진 내 얼굴과 고운 옷을 차려입은 여성스런 나의 모습보다도


맘껏 우리 다온이에게 뽀뽀할 수 있고 다온이를 안아줄수 있는 것이 더 좋아서


평소 집에서든 밖에서든 스킨이랑 수분크림정도 바르고 입이 바싹 말라서 갈라져도


혹여나 다온이 얼굴에 묻을까 립글로즈는 자기전에나 바르는 나인데, 그래도


너무 진해져버린 다크서클과 퀭한 눈 쑥 패여버린 양 볼과 칙칙해진 피부,


젖을 끊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편하다는 이유로 수유나시와 임산부용 속옷을 입고 있는


내가 한없이 처량하고 초라해보이는 순간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다가올때면 뭘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


시간이 날때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연극을 보던 나는 없어진지 오래고


아가용품 특가뜬거 없나 누가 드림글 올린것 중에 받을 만한거 없나 뒤지고 있는 내 모습,


맘카페만 수도없이 들락거리고 어쩌다 알게된 엄마들이랑만 수다떠는 내 모습.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하는 걸까. 벗어날 수는 없으니. 공감대라는 것이 참 편안하면서도


무섭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생겨도 아기얘기, 남편얘기, 시댁얘기.


나라는 존재는 어디로 간걸까. 내가 이렇게 목표도 꿈도 없는 사람이었던가.


그저 직업있고 가정있으니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 그저 해야할 일을 하며 .. 살아가는데


만족하는 사람이었던가.


끝도 없는 집안일. 하루종일 다온느님 시중들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고 나름 청소도 한다고 하는데도


늘 산만하게 어지러져 있는 우리집. 몸은 여기저기 아프고 나는 만성피로에 시달리는데도


뭔가 늘 해야할일은 쌓여있는 요즘의 생활이 가끔은 버거우면서 전업주부로 살림도 기가막히게


잘하고 아이들도 잘 키워낸 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임시 전업주부인데 뭐가 문제일까.


시어머니 처럼 다 내다버리고 미니멀리즘으로 생활을 하면 .. 좀 나으려나.


그렇다면 정말 최소한으로 남겨두고 다 갔다버리고 싶다. 현실적으로 다온이를 위한


물품이 쌓여있어 그럴 수도 없지만.. 답답함이 몰려온다. 그리고 피로감이 두 눈을 짓누른다.


가만히 있어도 계속 빠지는 머리카락. 바람빠진 풍선이 되어 쳐져버린 배.


벌어진 골반. 아프고 저릿저릿한 손가락 손목팔목팔다리. 이미 옛날로 돌아갈 순 없지만


한번쯤은 그리워지는게 다온이를 보면 뭔지모를 죄책감으로 다가오는것 조차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나는 엄마고 모든 엄마들이 어쩌면 한번쯤은 나와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것만 같다.


오늘은 나를 위해 이제 수유나시와 임산부용 속옷은 곱게 접어 나중을 기약하며 넣어두고


또 다시 엄마라는 이름으로 이유식을 만들어야겠다.


그래도 어제는 다온이가 처음으로 이유식을 75ml를 먹어줘서 나름 뿌듯했다.


처음에는 몇숟가락이라도 더 먹게하려고 안절부절 하며 한입만 더~하다가


아이가 먹을준비가 되어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라길레 조금씩 기다려뭐


한숟갈 한숟갈 먹여봐도 최대 35-40정도밖에 안먹어서 늘 반은 버렸는데.


이제 맛없는 채소는 다 지나가고 오늘 만들 완두콩부터 앞으로는 나름 맛있는 감자, 고구마, 사과, 배 미음이


기다리고 있으니 다온이가 더 잘 먹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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