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이유
"자기 엄마가 자기를 버렸다고.. 자기는 고아라고.. 나한테 고맙다고.. 난 어이가 없어서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나와 자기 아빠 관계를 끝내게 하려고 엄마한테 연락을 했다고 하더라고.. 엄마한테 자기 아빠랑 다시 같이 살면 안 되겠냐고.. 근데 자기 엄마가 단박에 거절을 했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자기는 그것도 모르고 아버지가 나랑 바람이 나서 엄마가 집에 못 들어오는 줄 알았다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고맙다고 계속 그러더라고.. 뭐가 고마운지.. 어이가 없어서.. 난 그냥 가만히 서있었어..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안나더라고.. 지금 생각해도.. 참.. 딱 내 딸아이 나이인데.. 너무 안쓰러워..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어.."
"그다음에는요? 지연이는 집에 갔나요?"
"그랬지 뭐.. 내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아주머니! 생각이 있으세요 없으세요, 애한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셨어야죠.. 그렇게 애를 그냥 보내면 어떡합니까.. 아직 어린애를.."
인정이었다. 죽어도 받아들이기 싫었던 사실.. 결국 살인자는 지연이라는 지독하게 아픈 사실에 대한 인정.. 그게 절규로 지금 엄한 사람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변호사 양반.. 내 얘기를 들은 거요 만 거요? 난 몇 번이나 말했어.. 근데 그 아비나 딸이나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서 내 말은 도통 듣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걸 내가 어찌합니까? 나야말로 피해자예요. 주위 좀 둘러봐요 저 벽 찍힌 거나 의자 금 간 거나.. 내가 솔직히 무슨 죄요? 그래도 저 어린 게 자꾸 눈에 밟혀서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위로나 해주려고 했던 건데.."
맞는 말이었다. 내가 고함을 지를 대상은 이 아주머니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모든 게 확실해진 이 순간에도 차라리 내가 범인을 앞에 놓고 아니라고 외치는 바보 같은 변호사가 되는 게 낫다는 생각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변호사 양반.. 이렇게 화를 내는 거 보니.. 지연이를 참 많이 아꼈구먼.. 나는 얼마 전에 알았다오.. 그런 일이 일어난걸.. 그래서 지연이가 마지막으로 찾아온 날 혹시나 해서 받아둔 집주소로 찾아갔었어. 그리고 거기서 얘기를 전해 들었지.. 그 집 앞에서 주저앉은 나를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더라고.. 근데 그건 아무 상관이 없었어.. 난 알았거든.. 난 처음부터 느낌이 이상했거든.. 여기를 찾아온 마지막 날.. 그 애 눈이 나한테 무언가를 계속 말하고 있었거든.. 그건 15살짜리가 느낄 분노가 아니었어.. 꼭 사람이라도 죽일 것 같은.. 그런.. 분노였어.. 아무런 계산도 없이 자기감정이 충실하기에 더 무서운 분노를.."
"말리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설마설마.. 한 거지.. 아무리 세상이 무서워졌어도... 그 어린 게.. 그런 생각을 할 줄은.."
"...."
"변호사 양반.. 어떻게 안 되겠소..? 티브이 보면 뭐.. 심신이 어쩌고저쩌고.. 정신병원에만 잘 가더만.. 그 어린 게 솔직히 무슨 잘못이겠소.. 이 썩어빠진 세상이 문제지.."
여주인의 말에 나는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썩어빠진 세상. 정의란 말이 어딘가 모르게 밍구스럽고 차마 다가서기에 너무 어려워진 세상. 그래서 정상적인 아주 평범한 가정을 원했던 한 소녀가 감당하지 못할 슬픔에 지어버린 감당할 수밖에 없는 죄. 근데 그게 하필이면 살인이라서 그것도 존속살인이라서 나는.. 마음이.. 마음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가보겠습니다."
문턱을 나서기는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나는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당장 구치소로 돌아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지연이를 대할 자신도 없고, 바로 내 사무실로 향한 들 지금 이것저것 알아보고 다니면서 지연이 걱정에 분주할 문영 씨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소리를 안 지를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향했다. 왠지 엄마는 나와 같이 울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
"어? 우리 아들... 요즘 귀가가 이르네.. 근데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왜 이래? 어디 아프니?"
"엄마..."
"우리 아들 말해봐 무슨 일이야? 엄마가 다 들어줄게"
"엄마는.. 나랑 같이 울어줄 거지?"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야.."
"엄마는 나랑 같이 울어줄 거지.."
복받쳤다. 엄마 앞에서. 엄마라서. 엄마를 붙잡고 분노와 배신감이 뒤섞인 눈물이 주체하지 못하고 흘렀다. 다 큰 아들이 엄마 앞에서..
"아니 대체 무슨 일이야.. 뉴익아 진정하고 다 말해봐.."
"엄마.."
"무슨 일이 길레 이렇게 말도 못 하고 우는 거야 엄마 속 터져 죽겠네"
"..."
"지연이가 지 아버지를 죽이기라고 했대?"
"..."
"....?"
"맞아.."
"뭐..?"
"맞아 엄마....... 지연이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