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
엄마랑 나랑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 울고 있다는 것을 숨길 수 있다고 믿고 고개를 돌려 몰래 울음을 했다. 몰래 울음.. 다 보이는 몰래 울음.. 나는 속았다는 배신감과 함께 이제는 별 수 없이 내 손으로 한 아이의 인생을 망가뜨려버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미련한 짓이었다. 그 아이는 아무리 어리다 하더라도 아주 치밀하게, 계획적으로 자기 아버지를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자였다. 그렇지만.. 억울하게 사망한 사망자보다도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많이 지연이와 정이 들었기에 변호사로서 하면 안 되는 생각까지도 하고 있었다. 이미 존속살인이라는 죄명 때문에 굳이 실형을 받지 않아도 영원히 지금의 일이 지연이 인생에 꼬리표로 남을 것이라는 것으로 나의 이 어긋난 동정심을 합리화해야 하는 것일까. 한참 이런 불순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슬며시 거실로 나가시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엄마는 왜 우시는 것일까. 지연이 얘기를 처음 꺼냈을 때처럼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물론 엄마도 보지 못한 이종사촌이 생각나서..? 이유는 몰라도 나의 예상대로 나와 함께 울어주는 엄마가 너무 고마워서 나는 눈물이 또 흘렀다.
그렇게 울다가 잠이 들었나 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사람은 죽음에 기로에 섰을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은 끔찍한 일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또 어떤 사람은 병과 싸우며 또다시 다가올 고통에 몸서리를 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태양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오늘따라 더 환하게 빛나는 것이 이 두 눈으로 보이니 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보다 반갑게 거실로부터 아침드라마 속 그 가여운 여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씻고 나는 슬며시 집을 나섰다. 비록 보진 못했어도 내가 나간 후 한참을 현관문을 바라보았을 엄마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엄마도 나도 어제의 일에 대해 무슨 말이라도 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바로 지연이에게로 향했다. 확인할 것이 있었다.
"..."
"죄송해요.."
"다른 말 다 필요 없고,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 왜 아버지를 죽였니?"
"네?"
"재결합을 거절한 건 엄마인데.. 왜 아버지를 죽였어?"
"... 엄마에게 복수하고 싶었어요.. 난 엄마에게 기회를 주었어요.. 엄마가 집을 나간 건 나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아빠 때문이었으니까.. 그런데 엄마는.. 저의 마지막 부탁도 단번에 거절하셨어요.. 그렇지만.. 난 느꼈어요. 엄마는 아직 날 사랑하고 있다는 걸.. 왜 그런 말도 있잖아요.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그래서 난 그걸 이용하기로 했어요.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용해 엄마에게 복수하는 거죠. 내가 망가지면.. 그 누구보다 가장 먼저 엄마가 충격을 받을 테니까요..! 그리고 아빠는 정말 멍청했어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도 몰랐죠. 정말 멍청한 사람이었어요. 내 마음속에 어떤 분노가 싹트고 있는지도 몰랐으니까요. 정말 죽이고 싶도록 멍청한 사람이었어요 멍청한 사람.. 아빠가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아빠가.. 난 딸인데.."
"..."
안 아픈 손가락.. 내 나이 서른. 내가 세상을 너무 모르는 걸까. 이제 열다섯의 저 아이가 세상을 너무 잘 아는 걸까. 나는 무엇을 근거로 대체 저 아이가 내 사고 속에, 아니 내가 배웠던 교과서 속에 순수한 열다섯 살일 것이라고 믿었던 걸까. 가정을 깨버린 아빠를 죽임으로써 엄마에게 복수를 한다. 결국 엄마 아빠 모두에게 벌을 내린다. 이런 끔찍한 생각은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너무도 놀라워서, 이제는 끔찍하다는 생각조차 사라진 채 마치 외계인을 마주하기라도 한듯한 기분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덤덤한 저 표정. 그리고 그 속에 약간은 흔들리는 동공조차 전혀내게 와 닿지 않는 이 상황. 나. 그리고 저 아이.
"..."
"너를 낳아주신 분들이야. 너의 상처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네가 한 행동 그 무엇도.. 너의 상처가 합리화시켜주진 못해."
"제가 그러지 않았어도 어차피 아빠는 술 마시다 죽었을 거고, 그럼 엄마는 완전 자유로워지셨겠죠. 그러면.. 아저씨... 저는요..? 저는요?"
"..."
만약 내가 변호사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도 애가 무슨 죄냐고, 부모를 잘못 만나서 잘못된 가치관이 성립되고 그로 인해 끔찍한 범죄자가 된 거 아니냐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변호 사고, 이제 변호할 이유가 사라졌고, 이제 이 아이와는 공식적으로 관계가 없어질 테니 그 어쩐 비난도 옹호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아저씨, 이제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더 이상 볼일이 없을 것 같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나한테만이라도.. 말했어야 하는 거 아니었니? 수차례 묻고 또 물었을 때.. 아니 차라리 거짓말이라도 하지 말지. 아무 말도 하지 말지."
"그러먼 이 순간이 더 빨리 왔겠죠.. 전 아저씨가 좋았어요. 그래서 아저씨를 조금 더 보고 싶었어요."
"이기적이구나. 내가 느낄 배신감과 허탈함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 그렇게 머리를 써서 아빠 엄마에게 한꺼번에 복수를 계획한 아이가 왜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네가 나를 속인 날이 많아질수록 앞으로 우리가 다시는 얼굴을 맞댈 일이 없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걸 말이야."
"..."
"이만 가봐야겠다. 아마 다음부터는 다른 분이 오실 거야."
"됐어요. 죄를 지었으니 죗값을 받아야죠."
"아니,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넌 그저 가만히 있으면 돼. 더 이상 거짓말은 하지 말고. 그게 너한테 좋을 거야."
"..."
"서글프구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곧 김지연의 국선 변호사 자리를 내놓았고 그 이유는 나의 역량 부족이라고 했다. 오히려 사임을 결정하기 전까지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이 막상 사임하고 나니 꽤나 많이 홀가분했다. 나의 뒤를 이어 누가 그 아이를 맡았는지, 그 사람을 그 아이는 어떻게 대했을지(나한테 했듯이 완벽한 가면을 썼을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한바탕 같이 운 날 이후로 우리 엄마도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그리고 문영 씨도 나에게 갑자기 사퇴서를 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아마 대충 아는 눈치였지만 우리는 서로를 위해 침묵했다. 난 그렇게 침묵이라는 벽에 둘러싸여 남들은 알 수 없는 자유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