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다
"엄마"
"응?"
"오랜만에 아들이랑 술 한잔 할까요?"
"술? 웬 술?"
"그냥.. 엄마랑 술 한잔 기울인 게 언제인가.. 싶어서요."
"내일은 일 안나가?"
"당분간 쉬려고요.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진짜 우리 아들이랑 술 한잔 할까~?"
"하하하.. 아들이 잘 아는 술집이 있는데.. 아들 한번 믿고 따라오실래요~?"
"좋지~그럼 우리 능력 있는 아들이 이 엄마를 얼마나 좋은 곳으로 데려가는지 기대해봐야겠는걸~"
마음을 가볍게 가지기로 했다. 내가 엄마를 모시고 갈 술집은 엄마가 기대하는 번쩍번쩍하는 화려한 곳이 아니다. 많이 사람들이 존재조차 모를 아주 허름하고 이름도 이상한 술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엄마 인생에 가장 큰 보석을 발견할 수도 있는.. 그런.. 그런 곳이었다. 그곳은.
"여기에요."
"여기? 음...."
"들어가요."
"..."
당황한 엄마의 모습에 처음 이 곳을 찾았던 내 모습이 어땠을지 상상이 갔다. 실소가 나는 것을 참고 주인을 불렀다.
"여기요."
"네~가요~ 어? 변호사님이 여길 어떻게.."
"저희 어머니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엄마,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어? 어.. 근데 아들.. 여기 좀 음침하다.. 다른데 가면 안돼?"
"일단 앉아보세요 엄마, 왔으니까 여기서 딱 한잔만 하고 가요."
"뭐.. 정 그렇게 말한다면.. 근데 저 여자랑은 아는 사이야?"
"아.. 그게.. 지연이 사건 조사하면서 알게 된 사람이에요.."
"지연이.."
"..."
"아..! 그래서 우리 착한 아들이 또 술좀 팔아주려고 일부러 여기에 온 거구나~?"
"..."
지연이 이름에 드리워진 그늘을 애써 감추려 장난스럽게 말하는 엄마의 모습이 한없이 안쓰러웠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엄마도. 나처럼. 안쓰럽고 화가 나고 어이가 없으면서도 조금은 이 해도가는.. 그렇지만 그저 품고 있기로, 아들을 위해, 그리고 나도 엄마를 위해.. 우리는 그렇게 다시 침묵했다.
"근데.. 어쩐 일로 오셨어요..?"
"술집에 술 마시러 왔죠. 주문 안 받아요?"
"지연이는..."
"..."
내가 넘겨야 할 첫 고비였다. 나는 되지도 않는 윙크를 열심히 해가며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다행히도 나의 신호를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여주인은 화제를 돌렸다.
"아, 제가 주책없이 주둥이를 놀렸네요. 술은 뭘로 하실래요?"
"소주주세요."
"근데 엄마.. 저 여자 누구 닮은 거 같지 않아?"
"누굴?"
"잘 봐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 안 들어?"
"글쎄? 술 가져오면 다시 한번 보지 뭐."
아닐까? 하는 희망과 너무 많이 흘러버린 세월에 대한 야속함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이미 오지도 않은 소주를 한 댓 병 정도 마신 듯 머리도 어지러웠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다. 정신을..!
"여기 소주랑.. 이건 서비스예요. 제가 변호사님께 신세 진 것도 있고.."
"무슨 신세를 져요?"
"네? 아니에요. 하여간 이놈의 주둥이가 주책이네요. 하하하.."
"..."
"더 필요한 거 있으시면 불러주세요 하하하.."
"..."
"엄마 어때?"
"뭐가? 근데 저 여자 좀 이상한 것 같아."
"...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 안 들어?"
"글쎄, 엄마는 잘 모르겠네.. 일단 한잔 따라봐 아들, 오랜만에 아들이 따라주는 술 한잔 마셔보게~"
"엄마, 진짜 아무 느낌 없는 거지?"
"그렇다니까, 아들! 어서 잔 채우세요~~"
잔에 채워지는 술처럼 맑고 투명하게 모든 사실이 그 누구도 아프지 않게 명백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마치 술잔에 드라이아이스를 띄운 듯 불편한 감정만이 슬슬 새어 나오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불편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나만 불편했다. 엄마는 오랜만에 아들과 술 한잔 한다는 생각에 여주인이고 뭐고 다 개의치 않고 신이 나 계셨다. 이대로 엄마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흥건히 취해 집에 가서 자고 싶은 마음이 나 역시나 간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