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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n 24. 2018

나는 서기다. 4

공무원. 나는 공무원이다.


이제 곧 만 5년차 공무원.


누군가는 한없이 같잖게 보는 직업이고 누군가는 한없이 이상향으로 보는 직업.


글쎄. 공무원. 대한민국 중산층인듯보이지만 급여만 보면 한없이 영세한 소득의 직업.(교육공무원 빼고.)


이런글을 쓰려고 했던게 아닌데 하필 티비에서 공시생에 대한 글이 나와서


마음이 답답하고 또 답답해서 이렇게 답답하게 글의 문을 열었다.


내가 요즘 여유가 생겼는지 이제서야 학교구성원들의 행동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고,


혼재 고개를 끄덕끄덕 하기도 하고 갸웃갸웃 하기도 한다.


그중에 가장 내 고개를 갸웃갸웃하게 하고 나는 나중에 그러지 않아야지 하고 다짐하게 하는것은


바로 의전이다. 의전. 사실 의전이란 단어의 정확한 뜻도 모르겠지만 그냥 체감상 느낀점으로


나 혼자만의 정의를 내리자면 의전이란 윗사람 입맛에 맞춰 나를 흔드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본격적으로 의전에 대해 생각하게 된건 3년차때였던것으로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내가 속해있던 교육지원청의 한 상사중에 한명은 전체회식을 할때마다 50명이 넘는


직원들중에 누가 자신에게 술을 따라줬는지 안따라줬는지 기억했고, 본인딴에는 가볍게 그 사실을


상대방에게 인지시킨다고 던진 말로 그 상대방의 뼛속까지 얼어붙게 하곤 했는데,


그 상대방중에 한명이 바로 나다. 나는 선천적으로 의전을 못하는, 아니 안하는, 아니..


그냥 의전하라면 온몸이 비비꼬여서 구토를 할것같은 사람이다. 아마 나같은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겠지.


그래서 나는 정말 내 의지로 회식자리에서 상사에게 술을 준적이 손가락에 꼽을만큼 적다.


정말 가끔은 있다. 정말 마음이 동해서 한잔 따라드리고 싶어서.


하지만 아주 드문경우이고 거의 회식때에는 구석에서 그냥 깨작깨작 먹다가 아무도 모르게


집에가는 정말 잡초같이 있는듯 없는듯 하는 편이다. 그런데 어느날 회식때 위의 그 상사가


나에게 와서 술을 따라주며 (나한테 술 안줬다~)하는데 정말 ... 술도 몇잔 안먹었는데


정신이 아찔해서 어지러움을 느꼈다.


의전! 뭣이 중헌디 진짜..답답함이 몰려온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뭐랄까. 정말 답답하다.


상사가 출근하면 커피한잔 타드리고, 회식엔 줄줄이 높은 상사들에게 다 술한잔씩 돌리고,


아파 죽을것같아도 상사들에겐 꼭 줄줄이 다 전화해서 상황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고 병가내야하고,


출장이 있으면 꼭 말하고 가야하고, 다시 회식으로 돌아가서 숟가락 젓가락 물잔까지 다 셋팅하고


고기먹으러 가면 열기에 얼굴이 화끈거릴때까지 구워야하고, 회식장소에 들어가자마자


자켓부터 받아들어 걸어야하고, 어딜가든 운전은 필수이고 등등등등...


왜 이래야 하는걸까. 그저 어른으로서 존중을 해드리는 거라면 어느정도 나같이 의전이랑은


거리가 먼 사람도이해를 할 수 있을것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내가 출근한 상사에게 커피한잔 안타드린다면, 그 상사는 어딘가에 가서


(야, 이번에 내가 받은 애는 세상에 커피한잔을 안타준다.)라고 말할수도 있고


그 소문이 와전되면 나의 평판은 그렇게 퍼지게 되고 심할경우 인사고과에 반영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건 실화다. 내 얘기는 아니다. 지인으로부터 (@@이는 상사가 와도 커피한잔을 안탄다.)라는


뒷담화를 들은것이다. 커피, 그게 뭣이 중한디.


물론 나도 출근해서 내가 모시는 실장님이 스스로 커피 타는 모습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동해서 내가 알아서 커피를 타드리지만, 이건 정말 마음이 동한경우이고


그냥 알아서들 커피 타 마시면 안되는 걸까? 알아서들 자켓걸고 마시고 싶은 사람들끼리


알아서들 술따라 마시고, 알아서들 고기구워먹고 출장을 가든말든 복무결재했으면


신경쓰지말고(일괄결재해놓고 나중에 어쩌네저쩌네 기안자에게 책임 돌리는 상사가 정말


제일 싫다. 실무를 하는것도 아니고 검토만 좀 하면 되는데 그것도 싫어서 마우스만 딸깍딸깍.)


아프면 본인이 아니라 배우자나 가족이 연락해도 좀 이해해주고 전화가 아니라


카톡이나 메시지로 해도 좀 이해해주고. 스마트폰 보급율 130%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왜 꼭 전화만 예의라고 생각할까.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생각하겠지. (요즘애들은 이래서 안돼...) (지가 이 나이 되면 느끼겠지)


음, 나도 생각 안해본건 아니다. 내가 아직 급수도 낮고 나이도 많지 않아서 너무 내 위주로


생각하는건 아닐까?


나도 실장이 되고 계장이 되고 과장이 되면 나또한 의전을 바라고


의전을 잘 하는 직원은 이쁘고 안하는 직원은 안중에도 없게될까.


참 어렵다. 어려운데, 어쨌단 현실은 의전을 정말 기가막히게 못하는 내가


의전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공무원 사회에 있다는거다.


팔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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