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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Dec 15. 2019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19

 인생이 잿빛이 된것 같다.


결혼전에는 은은한 회색이었는데

결혼하고 다온이를 임신하고

점점 짙은 회색이 되더니

다온이를 낳고나서 검은색이 되었다.


아주 검고 검은 검은색.

아이의 빛남도

환한 미소도

존재자체만으로도 축복인것도

 덮어버리고도 모자라 

 자신을 파괴해버린 암흑.


그리고 라온이가 태어나고

남편의 상황이 바뀌고

친정엄마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시어머니의 간섭이 사라지면서

점점 옅은 검은색이 되더니

얼룩덜룩 지저분해졌다.


 아이의 미소에

잠시 마음이 환해져 찍힌

하얀 발도장.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아이의 말에

잠시 따뜻해져 찍힌

노란 손자국.


 밖에도 행복한 순간들이

남긴 아름다운 알록달록 자국에도

불구하고 군데군데 남은 검은색들은

나를 아주 자주, 너무 자주

미치게 만든다.


 자신의 약간의 실수에도

아이의 조그만한 떼와 고집에도

아기의 확실한 의사 표현에도

석유에 불을 붙인듯 

분노가 폭주한다.


이어폰을 귀에 끼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들을정도로

소리를 크게해도

미친년처럼 딸과 아들에게

그리고 남편에서 소리를 질러도

가시지 않는  분노와 슬픔과 절망은

대체 어디서 온걸까.


나를 비난하는 말들.

엄마가 왜저래.

애가 뭘보고 배우겠냐.

니가 문제다.


 숨통을 끊임없이 조여오는

 찾는 아이의 목소리.

 찾는 아이의 울음소리.

엄마는 나한테 화만낸다는 아이의 .

엄마가  사랑하는줄 알았는데

안사랑한다는 아이의 .


나를 너무나도 두렵게 하는

 분노로인해 아이가 받은 상처.

받았을 상처. 받고있을 상처.

그리고 가늠이 안되는 상처.

그리고 아이가 느낄 죄책감과 불안감.


쏟아지는 비난과 죄임과 두려움에

쌓여만 가는 분노가  나를

나의 아이들을 불행으로 처박을것을 알면서도

벗어날수도, 벗어날 생각조차도 못하게 

 자신을 나는 어쩌면 좋을까.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밝은 정서를 위해

곧은 심성을 위해

따뜻핸 마음을 위해


그리고  훗날

지금보다   후회을 안하기 위해

  자책을 안하기 위해

나는  참고참고 울고울고

폭발하고 불행을 느껴야 하는걸까.


시간은 모든걸  가져간다던데

지금 이순간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건

 어떤 미련과 자책과 후회라는 사실에

 커져만 가는 암흑.


내가 아무리 화를 내도

소리를 질러도 아무렇지도 않게

 나이때의 밝음을 지키며

곧고 바르게 자라는 아이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기에는 너무 어린 나의 아이들.


그리고 내가 원하는대로 알아서 척척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정리도  하는 아이는

너무 일찍 철이 든것같아 짠하고 안쓰러울까봐

그런 소망조차 갖지 못하는

나의 모순.  속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행한 .


아이가 너무 일찍 철이드는것도 싫고

끊임없이 일을 저지르고 반항하는 것도 싫고

 중간 어디에 서있기를 바라는

나의 무모한 바램이 자초한  불행.


나는 어쩌면 좋을까.


거리를 두면 거리가 생길까 무섭고

거리를 안두니  자신이 없어져 불행한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누가 무슨말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아니 누가 억지로라도 나를 끌어내주면 좋겠다.


집안에서 아이들과 뱅뱅 도는  삶이

나를 돌게하고 우리 아이들을 돌게하는것만 같다.


귀청이 떠나가도록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시원해지던 은은한 회색빛의

 삶이 그립다.


눈물을 펑펑 쏟으면 그래도

다음날의 서러움을 견딜 힘이 생기던

 순간들이 그립다.


지금의 나는  불행을 벗어나

  불행을 맞이할까 두려워

아무것도  수가 없다.


나는 점점  검어지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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