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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Mar 11. 202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정여울)

리커버에디션

누군가 나를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 준다는게 이렇게 기쁠수가 있을까.


코로나로 인한 가정보육을 핑계로

육퇴를 하고 나면 며칠을 굶주린 사자처럼

즉각 티비를 켜고 아이패드를 잡아

연예인들의 말소리를 배경음악인듯 들으며

맘카페와 쇼핑몰을 들락날락 거린게 벌써 한달 째.


마음 한구석에서 소심하게

읽다가 방치해둔 책들을 읽고 싶다는

욕구가 고개를 들다가도 티비가 켜지는 순간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래서 더 반가웠다.

리뷰를 제안하는 메일이.

그리고 익숙했다. 작가 이름도. 책 제목도.


책이 도착한날.

첫인상은 뜨악. 생각보다 엄청 두꺼웠다.

대충 훑어보는데 더 뜨악. 깨알같은 글씨..


막막했다.

나는 정말 치열한 육아를 한 후

아이들이 잠든 10시 이후에나 책을 읽어야하는데

그러려면 조금은 술술 읽히는 책이어야하는데

이미 작디작은 글씨에 기가 눌려버린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 느끼는건

괜한 걱정이었다는것이다.

그리고 그 깨알같았던 글씨들이 사실 본문보다도

더 매력적일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니 20대를 위한 책이더라.

나는 30대 그것도 30대 중반이라 계속 눈에 걸리는 20대란 표현이

내가 너무 나이가 든것 같이 느껴져 조금은 서글펐지만

생각을 뒤집어 20대라는 문구를 30대로 바꿔서 읽어도 충분히

마음에 와닿겠다..싶어 그렇게 의식적으로 읽었더니 더 좋았던 책.


대체적으로 모든 글들이 다 좋았지만

작가와 나는 엄연히 다른 인격체이기에

생각이 다른부분도 있었기에 내 마음을 흔들리게 했던

가끔은 내려앉게도 아! 소리를 내도록 했던 부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보려고 한다.


우선 목차. 이렇게 많은 키워드를 다루려니 책이 두꺼워질수 밖에 없었겠구나.

하고 이해가 되던 부분. 작가가 정말 20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구나.하는 생각으로 시작되어

지금 소감을 쓰는 시점에서는 작가의 20대가 참 많은 후회들로 지나갔구나 라는 느낌이 든다.

나의 20대도 마음먹고 작가처럼 풀어놓으면 이보다 더 하겠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과 함께.


여행이라는 키워드에 있는 글이다.

읽고 또 읽었던 부분. 사실 이런 관점은 그 전에도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읽어왔다. 그런데 이 문단들이 마음에 와 닿았던건 단 한줄의 문장때문이었다.

"고생에 억지로 다채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남모르게 세상에 대한 원한을 쌓아갈 필요는 없다."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얼마나 비참한 상황인가.


도대체 누가 고생을 하고 싶을까.

특히나 존재만으로도 반짝이는 청춘에.

왜 세상은 유독 청춘들만 이렇게 고생길로 내모는 것일까.

그 수많은 행복과 가능성을 밟아버리고.


이런생각과 함께 떠날 수 있을때 최대한 많이 떠나야한다고 말하는

작가의 말이 백번 천번 맞지만 사실 젊은이들 마음에는 와닿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벌써 사회에 안주해서 애들을 책임져야하는 엄마이자

따박따박 월급나오는 직장인이 되어서 그런걸까? 20대에 읽었다면 달랐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을것 같다.

아직은 세상이 청춘들이 용기만 가지고 실행하기엔

너무나도 무섭다. 그리고 절망적이다. 또한 청춘들은 너무 비참하다.


나는 정말 솔직하게

청춘들에게 책이나 강연으로 지금 이순간 떠나라고 말해주는

모든 사람들이 너무 고맙다. 왜냐하면 허공을 떠돌다 죽어버리는 말일지라도

그나마 이마저도 누군가가 해주지 않으면 진짜 단 한명의 청춘도 지금 있는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고 누군가는 정말 끝없이 어둠속만 해매다 죽어가는 일이 앞으로 더 많아질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책이 반갑다.

비록 나는 그럴 수 없을지라도.


행복이라는 키워드에 있는 글이다.

내가 작가에게 완전히 공감했던 부분.

그리고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내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게

쓰여져 있어서 읽으면서 한숨났던 부분이다.


육아휴직을 하며 나를 꾸준히 괴롭히는 생각이

내가 무언가를 하루하루 성취하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낸다는 것이었다.

사실 아이들을 키우는것 자체가 대단한것이고

하루가 다르게 부쩍 커가는 아이들이 나의 가장 큰 성취라면 성취인데

머리는 아는데 마음이 안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마음가짐을 바꿔야하는데, 쉽지는 않을 것같지만

이로인해 또 우울증이 슬금슬금 오려고 하면

이 책을 다시 꺼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직업이란 키워드에 있던 글이다.

정말 착잡했던 부분.

작가는 옳은말만 구구절절히 하고 있는데

왜 나는 한숨만 푹푹 나왔을까.


내 얘기였고, 누군가의 진짜 현실이기때문이 아닐까.

작가말대로 진짜 가슴이 쓰렸다.


정말 정말 뜨끔했던 부분.

내가 다온이를 키울때 진짜 감정기복이 심했다.

우울함과 분노가 나를 집어삼켜서 정말 하루가 우울하다 화나다 끝나곤 했다.

그럴때마다 카톡 남김말에 그 분노와 우울함을 한껏, 내가 할수있는만큼 최대로

압축해서 늘 시시때때로 써놓았고 브런치에도 정말 가감없이 쏟아내곤 했었다.


그런데 작가말대로 그건 건강한 소통은 둘째치고

정말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고개를 못들겠다.

아직도 분노가 나를 휘감을때면 남김말에 써놓긴 하지만

얼마를 못가 지운다. 창피한걸 알면서도 행동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분노가

지나가고나면 부끄러움에 치가떨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가

차츰차츰 설레이게 했던 깨알글씨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죽은 아들아들을 껴안은 어머니의 모습도

아름다운 동화뒤에 숨은 안데르센의 상처도

일본방명록도.


일본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나날들의 연속.

일본작가의 책을 수집했고

일본만화(수사물)를 정주행했고

일본영화를 좋아했고

무엇보다 일본어라는 언어에 매력을 한껏 느끼던 내가

이 모든걸 단칼에 끊은지도 어언 몇달째.


일본여행은 가지도 않겠지만

갔다면 나도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부끄러운줄 알라고 썼을듯.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아무리 미운 대상이라도

상처에 칼질은 아닌것 같다.

이 책을 읽기를 잘한것 같다.


지금처럼 나 한명은 일본에게

아무런 영향을 안미친다 하더라도

그저 묵묵히 할 수 있는걸 하는게 최선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이라는 글에는.

우울한 마음이 자기 스스로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난 늘 다온이를 보며 생각한다.

지금은 세상에서 엄마가 젤 좋다고 항상 말하는 이 녀석이

언젠가는 친구가 더 좋다고 하겠지. 언젠가는 혼자 잔다고 하겠지.

그럼 나는 어떨까.

작가의 말대로 가슴이 찢어지겠지..


잘 해내야할텐데.

머리로는 이미 아는 말을

작가가 멋지게써서 선물처럼 주었는데

아직 받을 준비가 안되있다. 나는. ...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언젠가는 작가말대로 훌쩍 아무 계산없이 걱정없이 떠나보자고.

도착한 그곳에서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고.


그리고 우리 애들이 딱 20살이 되었을때

읽어보라고 주고싶은 책.

딱 그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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