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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Dec 12. 2019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

단지 잘 쓰고 싶어 할 뿐.

어떤 이들은 나의 글에 울고 웃고 위안을 받지만

어떤 이들은 나의 글이 너무나도 부족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고도 한다.


그 말에 상처 받아

글로 불을 뿜어내던 시절을 지나

이제 등단이니, 출판이니 하는 모든 욕구가 희미해지더니

갑자기 어느 순간 그 어떤 글에도 무감각해지고 말았다.


정말 세상에 다신 없을 작가의 글도

내 마음에 콕 박히지 않고 미끄러지는 기분.


그런데 84년생. 나보다 겨우 세 살 많은 이 작가의

글이 자꾸 나를 흔든다.

어딘가에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글에 대한 욕망을

찾아내려고 하듯이 마구잡이로 내팽개친다. 울라고.


내가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건 그녀의 소설 쇼코의 미소였다.


그녀의 글은 내가 싫어하는 단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 한편 그렇게도 무거울 수가 없었다.

눈물이 철철 넘치는 그런 슬픔이 아니라

마지막 문장을 읽고도 뭔가 더 있어야 할 듯한

그렇지 않으면 당장 지금 이 순간부터 앞으로 쭉 아무것도

못할 것만 같은 암담한 슬픔.


쇼코의 미소를 읽을 때는

그저 감탄했다. 그녀의 글이 담고 있는 이런 슬픔에.

그리고 그런 시선에. 엄청 어렵고 복잡한 문장이 아닌데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 때마다 나에게 주는 묘한 죄책감과

어느새 쉬고 있는 한숨에 내가 두둥실 떠내려갈 것만 같아서.


내게 무해한 사람을 읽을 때는

그녀의 삶이 어쩌면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감히 판단할 부분은 아니지만.

작가 소개란에 있던 그녀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느낀 슬픔만큼이나.

그 언젠가 충주에서.

그래, 충주니까 다온이를 낳기 전에.

정말 등단하고 싶은 마음이 하늘 끝까지 달 했을 때.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작품을 모아논 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들을 하나하나 필사하던 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책을 보면서 무엇으로든 기록으로 남겼던 게.

그 이후로도 나는 정말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정말 그냥 읽었다. 읽고 또 읽고.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마음이 동해서, 그리고 찢어질 듯 아파서

사진 찍기도 전에 외운 저 문장들.


그녀의 책이 기다려진다.

오늘도 우리 집 문 앞엔 14권의 책이 도착하여

그리고 그전에 도착했지만 아직도 읽지 못한 4권의 책이 있어

당분간 책 살인은 없겠지만.


그녀의 신간이 나오면 가장 먼저 구매하고 싶다.

그리고 한번 만나보고 싶다.

그녀가 출판기념회나 사인회를 하면 좋겠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냥.. 그냥 그녀를, 최은영 작가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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