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Jun 12. 2020

나는 서기다. 14

내일은 지방공무원 시험이 있는 날이다.


지금 이 순간 내일 시험으로

삶이 끝날 듯한 공포와 긴장을 느끼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마치 우리가 수능 전날

수능을 망치면 인생이 망하는것마냥

치열하게 공부하고 수능날을 맞이했던 것처럼.


현직자의 여유라고 하면 여유이고

공직자의 자유함이라고 하면 자유함이겠지만

내가 지금 대략 7년전의 나를 생각해보면

참 귀엽다. 그때는 정말 내 삶을 걸었을 만큼 비장했는데.


이게 시간의 힘이겠지.

시간이 이만큼 흘렀으니 느끼는 감정이겠지.


선명히 기억이 난다.

2013년 지방공무원 시험 당일 아침이.

대략 6-7시쯤 일어났던것 같다.

그 전날 다른 과목은 대충 정리를 하고

기본서도 한번 읽어봤는데 끝까지 자신없었던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과목. 국어.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집안

거실 한가운데 작은 교자상을 펴고

국어책을 올려놨다.


기억난다.

그 핑크색 표지.

아마 선재국어 커리어 중..어떤책이었겠지.

나는 이선재선생님 강의만 들었으니까.


마무리강의책이었던것 같기도 하고.

여튼 A4보다 조금 작은 크기에

내 엄지손가락만한 두께의 그 책.

한장 한장 넘기며 시간이 없어 다 보지는 못하고

내가 유난히 약했던 부분

그래서 빨간펜으로 사정없이 별표도 그리고

밑줄도 그었던 부분들만 보고 넘어갔던 그 아침.


결국 다 보지도 못하고

혹시나 탈이 날까 아무것도 안먹고

향한 시험장.


시험장에 들어섰는데 보이는 익숙한

필기노트들. 지금도 성황리에 팔리고 있지만

나 시험볼때만해도 정말 전한길샘은 열풍이었다.


자리에 딱 앉았는데 뭔가 집중이 안되었던 기억이 난다.

하나라도 더 봐야하는데, 한국사 연표를 들고있었는데

눈으로 보긴 하는데 반쯤 멍때렸던 순간.


그리고 시험 시작.

정말 시험지를 받을때까지만해도 신기할정도로

차분한 마음이었는데 딱 시작하니 갑자기 미칠듯이 뛰는 심장.


특별히 과목순서를 정하고 들어간게 아니라

초반에 허둥지둥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순서정하기를 포기하고 시험지 순으로

풀어나가기. 그리고 기억이 안난다.


그리고 기억이 끊겼다.

마치 영화필름 잘라버리듯이.


그런데 그건 있었다.

집에 와서 시험당일이니까 오늘만 쉬자고

누워서 티비를 딱 켰는데

(서울시 시험이 남아있었다.)

뭔가 굉장히 기분이 좋고

내가 합격할듯한 기분이 들었다는거.


그때 나왔던게 무한도전이었는데

재미없어서 돌렸던 기억도 난다.


그러고 난 내 예상대로 합격했다.

수험기간 6개월. 이 때 관운을 다 써버렸나.

2013년에 충북교육청은 지방교육행정직을 100명이나 뽑았다.

물론 그래서 나도 응시했고.


면접때도 기억난다.

면접관은 네명.

정말 많이 긴장한 나.


질문은 세개였던것 같다.

1. 공무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2. 직속상사가 부정한일을 한걸 알게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3. 학운위가 뭔지 아십니까?


1-2번은 어떻게 어떻게 더듬더듬 대답했는데

학운위는 정말 내 생에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모른다고 하자 면접관님이 아주 친절하게 본인아 설명해준 기억이 난다.


그래 맞다.

면접관님들이 정말 친절했다.

그 분들은 누구였을까.

현직에 계실까 퇴직하셨을까.


그분들이 현직에 있다면

지금 일하는 근무지에서도

그때처럼 친절하실까.


정말 오랜시간을 기다려 본 면접.

추첨을 했는데 거의 꼴지였다.

운도없지. 옆에있던 지금은 동기인 동생에게

에너지바도 얻어먹고. 그와중에 배도 고팠다.


그때는 문닫고 들어가도 합격만하면

진짜 여한이 없을꺼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욕심쟁이다.


내일 시험보는 모든 이들이

시험 당일 탈이 안났으면 좋겠다.

서러운 눈물을 쏟아낼 실수를 안했으면 좋겠다.

시험장을 나와서는 합격할것 같은 좋은 감이 들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서기다. 1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