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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n 11. 2020

나는 서기다. 13

나는 서기다..

앞으로 조금은 더 서기일것 같다.

그래서 슬프다.


앞으로 딱 한달만 더 서기이고 싶다.

나는 언제 주사보가 될까.


인사예고가 뜨고

내 승진이 물거품이 된 오늘.

다온이는 며칠째 집에 안오겠다며

양가 할머니댁을 전전하고.

돌 지났다고 부쩍 어린이 다워진 라온이는

징징이가 되어 정말 하루종일 운다.


나는 라온이를 보며

너를 만난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엄마에게 와줘서 고맙다고 말해주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우울한건 어쩔수가 없다.


내가 한때 정말 존경했던 전한길 선생님은

7급 1년쯤 늦게 다는게 뭐가 중요하냐고

말해주셨지만, 나에게 그 말은 비수처럼 박혔고

지금도 우울해하는 내가 참 철없는 엄마인거 같아

마음이 절망스럽다.


가치관에 차이기 때문에 나는 그분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의 내 상황에서

사랑스런 아이들과 내 커리어를 동시에 잡지못한

내가.. 그래도 6년 9개월이란 세월을

남들보다 더 꿋꿋하게 버텨온 내가..

짠하고 짠할뿐이다.


나는 6년 9개월동안

근무지에서 왕따도 당해보고

다온이 임신기간에는 기차로 출퇴근도 하고

그러다 쓰러지기도 하고

다온이 태어나서는 2년간의 독박과

라온이 임신기간에는 정말 어마어마한 갑질에

치를 떨기도 하고

관습에 맞서 버티다가 8급 고참인데 성과급 최하도 받아봤다.


이 모든 상황에는 물론 내 잘못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었지만

그게 어찌되었든간에 이제는 다 지나간 일들이고

잘잘못을 가릴수도 없이 시간을 흘렀고

나는 내 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서기다.

그리고 7급 대우다.

7급 대우..속이 상한다.


그냥 긍정적으로

나는 남들보다 우리 아이들을 일찍만났으니까 괜찮아

7급 늦게달아도 6급은 일찍달수도 있겠지

이러나저러나 나는 내 자리가 있잖아 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나라면 얼마나 좋을까.


인사발령이 하루하루 다가오는 요즘

나는 그냥 우울하고 의욕이 안생겨서

모니터보다가 멍때리고

괜한 주전부리를 입에 넣고 씹다가

결국 점심에는 입맛이 없어 반쯤 먹다 버리고

남편이랑 싸우고 괜히 술자리나 만들고

그렇다.


남편에게는 다 남편잘못인양

화도 내고 하소연도 하고 해봤지만

남편잘못은 하나도 없다는걸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두번의 육아휴직도 내 선택이고

그로인해 생긴 2년의 공백도 내 책임이고

그 공백을 메울만큼 복직해서 잘 하지 못한것도

결국 내 역량이 딱 거기까지 였던것을.


괜히 착한 우리남편만 쥐락펴락.

나는 완전 악처다.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많은 생각과

저기압 고기압을 정신없이 왔다갔다하는 기분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글쓰기로 멋지게 풀어내고 싶었는데

결국은 고해성사에 주저리주저리.


언젠가 주사보가 되면

이 시기가 다 우스워질까.

먼 훗날 이때를 돌아보면 뭘 그리 우울해했을까

하며 허탈하게 웃게될까.


젊음을 팔아 돈과 권력을 얻는게

그닥 유쾌하게 느껴지진 않지만

어차피 흐르는 시간속에

서서히 사라지는게 젊음이라면

그 순간순간 취할 수 있는 기쁨을

때에 맞게 손에 쥐고 싶은게

이리 욕심인지 이제야 조금씩 알것같다.


장황하게 썼지만

결국 승진하고 싶다는 말이다.

우울한 오늘.

내일. 주말. 월화수목금.


이 시기가 어여 지나고

나는 주사보다. 를 쓸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엄마대신 울어주는거야 아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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