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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n 28. 2020

나는 서기다. 16

이 세상의 모든 패자들을 위하여

알고맞는 매가 더 아프다.


한 20년전 쯤.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학생일 때 나는 무척이나

숙제를 안하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숙제검사가 있는 날이면

혼날 것이 불보듯 뻔했다. 그렇지만 내가 혼날것을 알고 있었다고해서

막상 혼날때 기분이 덜 나쁘다거나 손바닥이 덜 아픈것은 아니었다.

되레 (너는 원래 숙제를 안하는 아이니까 이제부터 나는 너를 투명인간취급하겠다.)라고

눈도 안마주치고 말했던 담임선생님의 말이 거의 기억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내 초등학교시절 기억속에 뚜렷히 남아있을정도니까.


얼마전에 지방공무원 인사가 났다.

누군가는 자신의 승진을 알고 있었을테고 누군가는 자신의 승진 누락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본격 인사발령이 나기전에 인사예고를 통해 우리는 모두다

몇급에서 몇명이 승진하는줄 보았으니까.


발령과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축하를 받았다.

내 가장 가까운 곳에서도 굉장한 승진에 한 사람을 향해

엄청난 축하가 쏟아졌다. 물론 나도 진심을 다해 축하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번쯤 뒤돌아보았을까.

누군가는 정년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마지막 승진기회를

허무하게 보내버렸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후배에게 승진의 기회를

전적인 타의로 먼저 줘버린 꼴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맞을 것을 알고 맞는 매는 덜 아플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항상 어떤 일은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아프게 서럽게 다가오니까.


찐한 축하가 한바탕 사무실을 휩쓸고 간 후

주저앉아 결국 눈물을 쏟은 이가 있었다.

있는 힘껏 꽉깨문 어금니도 막지 못한 눈물이

콧등을 타고 내려오는 순간에도 혹시나 축제의 분위기를

망치지는 않을까 걱정스런 마음을 내비친 이가 있었다.


원래 사회생활이 그런거라고

너는 아직 젊으니까 기회가 많으니 너무 실망하지말라고

나중에 더 잘되면 된다는 말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그저 내 다리로 먹은것도 없는데 무언가 있는듯

다 게워버리고 싶은 몸뚱이를 간신히 버텨야 하는 순간을

직면한 이가 있다. 아니 그런 이들이 있다.


담담하게 자신이 맞을 것을 맞은 사람도

그 곳에 보이지 않게 멍이 들었겠지.

그 곳을 살짝 문질러주고 싶다.

누군가 내 등을 토닥거려준것 처럼.

누군가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멋쩍어한것 처럼.


창창하게 펼쳐질 내 미래를 두고

먹구름이라도 던져주려는 듯 패자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 뒤에 하나 더 힘겹게 붙이고 이 글을 마무리 하려한다.


현재 패자가 된것 같아도 당신이 최후의 승자가 되라고.

시간이 또 다시 우리를 품고 품어 일상에 이 서러움이

묻힐때쯤 찐한 축하가 지금의 슬픔을 다 덮고 지나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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