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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l 12. 2020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30

가장 무서운건 바로 사람이에요.

"저...선생님, 저번에 사진보니까 다온이가 혼자놀던데 혹시 친구들이랑 어울리는걸 어려워하나요?"


정말 어렵게 던진 질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제 갓 돌을 지나 14-15개월 되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조금 동떨어져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사진을 보고 무척이나 심각해져 있는 나를 보고 황당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정말 두려웠다. 원래 그즈음 아이들은 친구와 협력해서 혹은 경쟁하며

노는것을 모르기에 다 자기만의 세상에서 같은 공간에만 있을뿐 따로 노는게 당연하다는걸

모르기도 했지만, 사진속 아이의 그 모습이, 더군다나 내 아이의 그 모습에서

여지껏 떨쳐내지 못하고 가슴 깊은 곳에 있는 힘껏 몸을 웅크리고 있는 나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가 없다. 아니, 나는 학창시절 친구가 없다.


누군가는 고등학교 친구야말로 평생친구라고 말하고, 정작 초등학교 시절에는

알지고 못했던 친구를 성인이 되어서 동창회에서 만나 또 다른 의미의 친구로

삼는다는데 나는 친구가 없었고, 그랬기에 동창회라는 기회의 문조차 한번도 열어본적이 없다.


나에게 학창시절 동급생이란(친구란 표현은 너무 가깝게 느껴진다. 그렇게 가까운 사람이 없었으므로

동급생이란 표현을 쓰겠다.) 갑자기 내 자리에 와서 내 책상을 걷어차 쓰러트리거나,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사이 내 정독실 자리에 쓰레기를 잔뜩 갖다논다거나, 겨우겨우 학교를 벗어나 집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쉬려는 나를 굳이 캄캄한 밤에 불러내 둥글게 에워싼 뒤 때리거나, 누가봐도 나를 타켓으로

한 듯 칠판에 '저질'이라고 쓴 뒤 조롱하는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무서웠다.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내 첫 아이 다온이를 가졌을 때부터

아무도 모르게 걱정했고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두려워했다. 나의 이런 과거가, 사라지지 않는

사람에 대한 공포가 뱃속의 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져 아이가 세상밖에 나왔을 때 내 아이에게 반복될까봐.


그리고 나의 이런 마음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고 난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나는 항상 어린이집카페에 올라오는 사진을 유심히 보며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안심했고, 아이가 조금 동떨어져있는것 같으면 불안하고 초조했다. 모든것이 내 탓인것만

같았다. 나의 남편은 평범한 누군가처럼 동급생이 아닌 친구라는 존재들 사이에서 살아왔기에.


아이를 하원시키러 갈 때마다 마주하는 선생님께 아이가 친구와 어울리는지

혹시 같은반 친구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진 않는지, 미움받지는 않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매번 꾹꾹 누르며 보내온 나날들. 일도 쉽지만은 않았지만 근무지를 옮길때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 붙이지 못하고 결국 동료들 주위를 뱅뱅 맴돌며 지내온 날들.


다행히 아이는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밝게 자랐고, 나는 여전히 외로움과

싸우던 어느날 전화 한통을 받았다.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이었다. 보통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오면

아이가 열이 나거나, 다쳤다거나, 다른 아이를 다치게 한 경우이기 때문에 바짝 긴장을하고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의외의 한마디.


"어머님, 하늘반 어머님들중에 한분이 어머님 연락처를 알고 싶어 하시는데 알려드려도 될까요?"


덜컥 겁이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알려주셔도 되요."


통화가 끝나자마자 초대된 단톡방에는 처음만난 사람들이 흔히 느끼는 설레임이

가득했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은 (몽키스)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새로운 문이 되었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로에게 학창시절 친구와는 다른 또 다른 정의의 친구로 남아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오랜시간 나를 괴롭혀온 사람에게서 온 상처가 한 순간에

사라졌다는것은 아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늘 마음이 더 잘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해와 다툼이 없을 수 없으며 그럴때마다 나의 불안증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내가 단톡방에 집착하면 집착할 수록 불안함과 초조함에 안절부절 할 수록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나의 딸 다온이와 이제 갓 세상빛을 본 아들이 나의 품 밖에서

맴맴 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내가 그렇게도 두려워했던 소외감이 우리 아이들을 나로부터

소외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지금의 나는 조금은 의연한 척, 그리고 무심한 척 사람들을 대하고

항상 나를 괴롭혔던 누군가의 표정, 행동, 말투를 신경쓰지 않으려 노력하고

문자, 전화, 카톡과의 일정한 거리두기를 연습하고 있다.


흔히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상처를 받은 기간의 두배의 시간이 흘러야

치유된다고들 한다. 풍문에 떠도는 말들을 많이 신뢰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딘가에는 기대고 싶은 내 마음이 저 말에는 유난히 의지를 많이 하는것 같다.

나에게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학창시절 총 12년. 그래서 필요한 시간 24년.

아직 나에게는 10년의 시간이 남아있다고. 혹은 아직 10년은 더 노력해야 평범해질 수 있다고.


"그래, 나도 평범해질 수 있어. 노력하지 않아도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그런날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꺼야. 나의 딸이 혹여나 어디에서든 소외당할까 두려워하지 않는 엄마가

될 수 있어"


오늘도 되뇌인다. 북받치는 감정은 출근버스니까 잠시 하늘에 맡겨두고.


아마 지금도 누군가는 그 옛날의 나처럼 네모 각진 교실에서 네모 각진 마음들을 대하며

쉬는 시간 말 한마디 건넬 친구가 없어서 네모 각진 책상에 엎드려 10분이라는 이 지옥같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것이다. 그렇게 겨우 보낸 하루 끝에 마주한 엄마의 얼굴에 아무말도 못하고

방안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혼자 견디는 아이들이

어쩌면 엄청나게 많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무너지는 마음을 어찌할 바를 몰라 결국 발길을 하늘로 돌린 이름도 모르고

얼굴고 모르는 어린 소녀의 혹은 소년의 소식을 접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하루종일

그 아이의 소식이 머릿속을 맴돈다. 나도 수시로 선택할 뻔한 그 길이기에.

안타깝고 슬픈 마음에 뒤덮여 어찌할바를 모른다. 길게 이어진 감정선 끝에

꿈속에서 생에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마주하고 있는 나를 보고 깜짝놀라 깨기도 한다.


"해주고 싶은 말은 버티라는 말 뿐이다. 마음에 쌓이는 슬픔, 분노, 좌절, 가슴이 패이는 외로움을

껴안으려고도 하지말고 어디로 내보내려 호기도 부리지 말고 그냥 버티는 수 밖에 없다."


나를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이미 나는 그들과 어울릴 수 없는 그런 사람이고

그들이 엄청나게 대단치도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들에게서 가장 큰 상처를

받고있는것이 나의 현실이니 그저 버티는 수 밖에 없다. 내가 그랬다.


신체적으로 엄청난 위협을 받는다면 적극적으로 방어해야하지만

그저 어떤 무리와 융화될수 없는 상황이라면 난 제발 말하고 싶다.

버티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라는 목적도 찾지말고

버티다보면 어느새 학교라는 울타리에서도 벗어나있고 나를 그렇게도

비참하게 했던 그들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순간이 오니까.


"제발 포기하지 말라고. 나도 포기하지 않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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