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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Sep 16. 2020

나는 과연 진짜 실장인가?

벌써 실장이라는 직위를 달고 출근한 지 2주가 되었다.


"벌써"라는 수식어를 붙였지만 사실 "아직"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처음 실장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다짐했던 것처럼 이제는 꽤나 실장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졌고, 내 자리에도 자연스럽게 앉고 전임지에서는 상상조차 못 했던 관리자로서의 결재도

척척하고 있지만 아직은 모든 게 부담스럽다.


모든 학교 대소사에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어색하고 어렵고

모든 학교 예산을 다 내가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부담스럽다.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공사 책임 사장님 및 학교와 관련되어 있는 모든 업체들의 사장님과

실무자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상대하는 건 정말 많은 에너지 소모를 일으킨다.

(가끔은 대화를 마치고 자리에 앉으면 현기증이 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차츰차츰 익숙해져서 그런지 외로운 감정이 밀려든다.

그 전 전임지에는 사무실에 6명이 있었고, 실장님 부장님을 제외한 네 명은 나이도 비슷비슷하고

직급도 비슷하고 그래서 일하다가 수다도 떨고 장난도 치고 그랬는데 이 곳에서는

일단 같이 계신 분들이 50대 남자분 두 분이라 수다도 장난도 영 어색하다.

게다가 한분은 시설담당이시라 거의 밖에서 일을 하시고 다른 한분은 사무직렬이신데

아주 자유로운 영혼이시라 사무실에도 거의 없고 들락날락 많이 하신다.


결국 요점은 사무실을 나 혼자 지키고 있는 경우가 아주아주 많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조금 외롭고 조금 소외감이 느껴지고 그렇다. 물론 편하기도 하다.

내 위로 높으신 분들이 두 분이나 있었을 땐 그렇게 눈치 보이고 그랬는데 지금은

내 할 일 하고 눈이 너무 피로하거나 머리가 아플 때는 의자에 기대서 조금 쉬어도

눈치 볼 사람 하나도 없다. 다 일장일단이 있다는데..., 뭐, 이 부분은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내가 어느 정도 업무를 거의 파악했을 때 다시 한번 써봐야겠다.


요새는 실장이 되어서 느끼는 감정이 있는데 그건 바로 기싸움이다.

사실 같은 직원들끼리 호흡이 착착 맞아서 잘 지내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겠지만

막상 내가 실장이 되니 도대체 직원분들에게 어디까지 간섭을 해야 할지,

어디까지 용납을 해줘야 할지 고민에 고민이다. 예를 들면 지금 사무직렬 직원분이 하시는 일은

사실 나도 승진 전까지 늘 하던 일이라 웬만한 건 다 아는 상황인데 뭔가 내가 아는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일을 처리할 때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하는데도 괜찮다고 말하실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저번에 날짜 맞추는 걸로 (아무래도 우리의 주된 업무는 회계이니 돈 맞추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한 말씀드렸더니 바로 복무를 달고 나가신 직원분. 뭐 명목상 이유는 내가 뭐라 할 사항이 아니니

그냥 결재해드렸지만 지켜봐야겠다. 하... 나이도 경력도 많으시니

강력하게 말하기도 애매하고 내가 온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시기상조인 것 같기도 하고 참 어렵다.


빨리빨리 승진해서 실장이나 부장이 되고 싶었던 나의 소망은 정말 수박 겉핥기처럼

정말 그분들의 겉모습만 보고 (실무를 거의 안 하고 자기 아래 직원이 있는 모습) 가졌던

허망된 소망이었던가 하는 회의감이 든다.


비록 나는 무늬만 실장이지만, 무늬뿐이어도 실장이 되니 지금에서야

그분들도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힘을 내봐야겠다.


동기들이 보내준 축하 쿠키(고미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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