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Jul 23. 2022

데이지야, 잘 부탁해

Feat.웨딩피치

여느 날과 다름없이 품가 올라왔다. 우리 학교에서 나 혼자 지출을 담당하기 때문에 모든 품의는 나의 거쳐 최종결재자에게 간다. *품의란 예산을 집행하기 위해 결재권자에게 허가를 받기 위해 작성하는 내부문서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하나하나 결재를 하고 있는데 한 문서가 눈에 들어왔다. 유치원 선생님이 유치원 아이들 크리스마스 산타 행사를 하기 위해 올린 산타행사 선물 구입 품의 문서였다. 사실 너무나도 평범한 이 문서가 내 눈에 확 들어온 이유는 선물 품목 때문이었다. 선물 품목 중에 여아들을 위한 선물 품목이 "시크릿 쥬쥬 카페 소꿉놀이"였던 것이다.


나이가 조금 있으신 분들에게는 낯설겠지만 5살에서 10살 사이 정도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정말 지긋지긋하게 들었을 그 이름. 시크릿 쥬쥬. 우리 집에서도 다섯 살 첫째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그 시크릿 쥬쥬. 그걸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다니. 선생님의 센스에 정말 엄지 척을 해주고 싶었다.

시크릿쥬쥬 별의 여신

나는 장난감을 많이 사주지 않는 엄마이다. 특히나 아기가 어렸을 때에는 여기저기서 받은 중고 장난감으로 어찌어찌 보냈고, 주로 책을 읽어주었다. 그런데 아이가 한 살 한 살 크더니 네 살 정도부터는 캐릭터에 눈을 뜨고 갖고 싶은 것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니 모두 다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하, 그런데 인기와 가격은 비례한다고 시크릿 쥬쥬는 왜 이렇게 비싼 걸까. 정말 등골 브레이커가 따로 없다. 나는 그중에서도 정말 저렴한 것들로만 딱 생일선물, 크리스마스 선물 이렇게 특별한 날에만 사주는데도 벌써 집안 여기저기 시크릿 쥬쥬 투성이다.


이런 우리 집을 보고 친정엄마는 말씀하셨다. 애가 사달라고 다 사주냐고. 이런저런 할 말은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시크릿 쥬쥬가 없었다. 그 대신 웨딩피치가 있었다. 아마 내 세대라면 다 알 것이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요술봉을 휘두르던 시크릿 쥬쥬의 증조할머니쯤 될 원조 요정.

웨딩피치

그리고 웨딩피치가 한참 인기 있을 때 나는 지금의 우리 딸처럼 어린아이였다. 정확히 몇 살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나와 동생을 혼자 키우는 우리 엄마가 비싼 가격의 웨딩피치의 주인공인 피치 아이템을 사주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인기순위만큼 비쌌던 피치와 릴리의 아이템은 애초에 탐내지도 않았고 가장 저렴했던 데이지의 시계가 갖고 싶었다. 정말 그 시계가 너무나도 갖고 싶었다.

정말 갖고싶던 시계
데이지시계 실물

기억력이 좋지 않아 어린 시절의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 내가 정말 웨딩피치의 주인공중에 한 명인 데이지의 초록 시계가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을 보면 그 어린 마음에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스스로 짠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결국 엄마가 사주셨는지 안 사주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못 사주셨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그 시계는 내가 가장 솔직하게 제일 갖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처한 상황에서 많이 양보하여 갖고 싶었던 하지만 가질 수 없었던 어떤 소망처럼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그런 어린 내가 마음속에 남아있는 상태로 나도 딸을 가진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딸도 나처럼 예쁜 시크릿 쥬쥬의 수많은 아이템을 갖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도 사달라 저것도 사달라 요구하고, 그럴 때마다 마음속 어린 내가 나를 자꾸만 흔든다. 나중에 내 딸이 나만큼 컸을 때 그때까지도 나처럼 시크릿 쥬쥬 아이템 중 그 어떤 것에 대한 가지지 못한 아쉬움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우리 엄마처럼 힘든 상황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내 기준에서 적당한 선에서 아이의 소망을 이루어 주고 있다. 또한 지인 중에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 느꼈던 부족함이 성인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갑자기 발현되어 어떤 부분에서 과하게 소비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 반대로 물욕이 없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옷도, 액세서리도, 화장품도 잘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 책을 가까이하던 엄마의 영향으로 책 욕심만 그득하다. 이 정도면 데이지의 초록 시계도 삶의 일부분, 추억 한 조각으로 잘 자리 잡은 듯하다.


앞으로 아이가 커가면서 지금의 시크릿 쥬쥬보다도 더 큰 것들을 많이 요구할 것이다. 그때마다 흔들 일 나를 위해 나의 데이지가 길잡이가 돼주길 바란다. 너무 과하지도 않게 너무 부족하지도 않게.


2년전 글이라 현재와 차이가 있습니다.^^


#시크릿쥬쥬 #웨딩피치 #데이지 #시계

 


매거진의 이전글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