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Jul 16. 2022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자

가벼워지기

나의 시어머니는 미니멀라이즘의 선두주자다. 집에 들어서면 기본 가구 외 생활필수품과 우리 딸(손녀)을 위한 장난감(색연필 스케치북 등등) 외에는 텅 비어있다. 어느 날부터 어머님은 우리 집에 오셔서 나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시기 시작하셨다. Carrot Market!  일명 당근 마켓.


안 그래도 휑한 어머님 댁이 아주 허허벌판이 되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이거 내가 선물한 거 아니여?"

"응?"

어머님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랬다. 이것저것 팔면서 집을 비우는데 재미가 붙으신 어머님은 아들이 베트남 여행 가서 사다 준 기념품까지 싹 팔아버리신 것이다. 그런데 그 물건이 아들이 사다준 것이라는 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들에게 자랑하고 있었던 것. 하하. 역시 과유불급. 무엇이든지 과하면 모자라느니 못하는 법이다. 



어머님 댁을 다녀올 때마다 우리 집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 집은 어떠한가. 늘 생각해왔듯이 아이들 물건만 없어지면 우리 집은 깔끔해질 것인가? 정말 모든 공간이 아이들 물건 때문에 이렇게 너저분한 것인가? 아니다. 아니었다. 물론 일부는 맞지만 100%라고는 할 수가 없었다. 


나와 남편은 기본적으로 물욕이 없다. 오죽하면 10년도 넘게 입어 온 옷들이 대다수이다. 혹여나 미래에 이사를 가게 되면 남편 짐은 이사 박스로 두 박스면 충분하지 않을까, 할 정도다. 그럼 나는 어떤가? 나는.. 기본 10박스는 나올 것이다. 물욕이 없다는 사람이 열 박스씩이나? 하는 생각이 들것이다. 중요한 건 남편의 (추정) 두 박스와 나의 (추정) 열 박스에는 생필품은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많을까?


바로 책이다. 책. 나는 책 욕심이 많다. 한 때는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빠져서 그의 저서를 독파하는 것이 목표일 정도로 팬이었다. 그래서 그의 책만큼은 다 사서 읽었고, 책장에 차곡차곡 쌓아가며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었다. 그러나 꽤나 수년간 이어진 이 소확행은 일본과 우리나라의 사이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일본 물품 불매"라는 이름으로 나에게서 떠나갔다. 나는 더 이상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사지 않는다. 그의 팬이었던 시간에는 한참 모자라지만 탈덕한지도 이제 몇 년이 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책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문학회에서 건네주시는 책이 많다. 내가 활동하는 문학회를 제외하고도 여러 경로로 알게 된 지역 문학회에서 알게 된 작가님들이 출간을 하실 때마다 책을 보내오신다. 게다가 매년 지급되는 공무원 자율연수비로 무언가를 배우고 싶지만 아직까지는 그럴 짬이 없어서(사실 핑계이다.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이니, 결국은 내가 게으른 것) 거의 책을 사다 보니 1년에 한 박스씩 책(주로 인문학)이 배달된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책을 처분한다고 하면 자꾸 기웃기웃 대며 몇 권만 골라볼까, 하는 게 결국 두 손 가득 쥐고야 만다. 


그렇게 책은 계속 쌓여가고, 쌓인 만큼 느껴지는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읽기도 참 많이 읽었는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한 번쯤은 느껴봤을 테지만, 뒤표지를 딱 덮었을 때 "아! 이 책은 진짜 소장각이다."라는 책이 있고 "별로다"라는 책이 딱 판별이 된다. 그러면 별로라는 책은 중고서점에 팔아버리던가 버리던가 남을 줘야 하는데, 내가 그걸 못한다. 그래서 읽은 이후에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책도 책장에 꽤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미련스러운 미련이 나에게만 해당되면 다행인데 아이들 책에도 해당되어서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당장 필요 없는 연식이 오래된 책들이나, 여기저기서 내가 책 육아를 하는 것을 아는 엄마들이 준 책들(한 번쯤 읽히면 좋지만 소장가치까지는 없는 책들)이 엄청 많은데, 버리지를 못한다. 둘째도 읽혀야 하니까,라고 핑계 대고 싶지만 사실 우리 둘째는 취향이 확고하여 읽는 책만 읽어서 결국엔 나의 미련이라는 사실을 피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대로는 안되었다. 그래서 나름의 큰 결심을 하게 된다. 일단 나의 책. 고심하고 고심했다. 다시 읽지도 않을 건데 아까운 마음은 왜 이렇게 큰지. 왜 그렇게도 아까웠는지. 겨우겨우 10권 정도를 골라 지역맘 카페에 올렸다. 올리자마자 띠링! 책을 좋아하는 것이 댓글로도 느껴지는 어떤 엄마가 가져가셨다. 마음이 이상했다. 시원 섭섭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 하지만 실제 내가 느꼈던 기분은.. 허탈했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것을 굳이 왜 쥐고 있었나. 그렇게 한번 버리고 나자 조금씩 용기(?)가 생겼다. 그 뒤로 하나, 둘씩 버리기 시작해 며칠 전에도 아이들 단행 본책들 중에 2-30권을 버렸다. 사실 모든 책들은 한 번쯤 읽히기에는 괜찮은 상태라 지역맘 카페에 올려보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도 가져가겠다는 희망자가 없으면 그냥 처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집에는 물건이 많다. 차츰차츰 더 과감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미니멀라이즘을 실현할 수는 없겠지만 집을 돌아보았을 때 물건들로 인해 답답함을 느끼지는 않을 정도가 될 때까지. 오늘도 둘러본다.


뭐 버릴 것이 없을까?

 

한 줄 요약: 내 손안에 쥐고 있다고 능사가 아니다. 이제는 조금씩 비워야 할 때!


#비우기 #버리기 #라라크루

매거진의 이전글 그 어딘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