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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l 12. 2022

그 어딘가

순수문학과 대중성의 사이에서.

정돈된 글을 좋아한다. 그래서 책을 주로 읽고, 브런치 속을 계속해서 헤맨다. 정돈된 글을 찾아서. 정돈된 글이란 무엇일까? 언어의 한계를 느끼며 표현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을 말로,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듯이 내가 좋아하는 정돈된 글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내 기준에 정돈된 글을 읽고 싶을 때 찾아가는 브런치 작가님들이 몇 분 있다.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메시지가 담겨있는 그분들의 글을 읽다 보면 A4 한 장이 훌쩍 넘어가는 장문의 글인 것 같은데도 금세 완독이 가능하다. 마치 작가님들이 글에 만들어놓은 장애물이 없는 평탄한 길을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산책하고 돌아온 기분이 든다. 이는 실감 나고 편안한 에세이를 읽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가끔 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머릿속이 어지럽거나, 마음이 심란할 때는 그 글의 정돈함이 마음을 더 무겁게 하는 느낌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정돈된 글의 정의를 일부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정해진 주제를 가지고 너무 가볍지도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게 하지만 끝내는 독자가 생각의 숲으로 빠질 수 있게 하는 그런 글. 그래,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정돈된 글이다. 


한편 생각하면 운 좋게도, 다르게 생각하면 아쉽게도 정돈된 글에 대한 욕구가 넘칠 때 찾아가는 브런치 작가님은 딱 두 분이다. 한 분은 우연히 그 작가님의 책을 갖게 되었고, 책 속에서 그분이 브런치 작가님이 리는 걸 알게 되어서 구독하게 된 분이다. 감사하게도 그분도 맞구독을 해주셨고 가끔 댓글도 남겨 주셔서 참 감사한 마음이다. 또 다른 한분은 브런치 속을 헤매다 메인에 뜬 어떤 글을 보고 눈이 번쩍 뜨여 구독하게 되었다. 요새 써주시는 글에 초보운전에 관한 주제가 있어서 더 그분의 브런치에 브며들고 있다. 



요새는 글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계속 드는 생각은 아무래도 출간이다. 출간이란 무엇일까? 독립 출간, 자비 출간, 반자비 출간, 기획 출간, 혹은 그저 책으로 만드는 것까지. 기획출판을 하면 대단한 것이고, 자비출판을 하면 그저 그런 것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출간을 한 사람은 글을 굉장히 잘 쓴 사람이고, 출간을 못한 사람은 글을 못쓰는 사람일까? 그렇지 않다. 굳이 책이라는 형태로 나오지 않은 글도(예를 들면 브런치, 블로그 등등) 너무 멋있는 글이 있고, 대형 서점에 진열된 책 중에서도 "돈 아깝다." 하는 생각이 드는 글도 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출간을 꿈꾼다. 나 역시 출간을 꿈꾼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지역 자체에서 글쓰기를 권장하기 위해 출간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일부 금액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다. 나 역시 지원을 받아 책을 냈고, 친정엄마는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계신다. 며칠 전, 손주들을 보시러 집에 오신 엄마가 뜻밖의 얘기를 꺼내셨다. 


지인분들 중에 기획 출간을 하신 분이 있는데, 이번에 2쇄를 찍으셨고 전자책도 나온다는 소식이었다. 오. 친정엄마 주변에는 순수문학을 추구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았는데, 의외의 소식에 귀가 쫑긋했다. 그런데 뒤에 이어지는 말씀은 더 놀라웠다. 엄마에게 지역 지원금을 받아서 책을 만들지 말고 출판사 끼고 출간해서 서점에 깔으라는 제안을 하셨다는 것이다. 나에게 들어온 제안도 아닌데 내 심장이 쿵쾅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평소에도 소신이 강하신 친정엄마께서 차분하게 말씀을 꺼내셨다. 


엄마는 완전한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대중성만 따지는 글은 쓰고 싶지가 않아. 남들에게 읽히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순수함을 잃지 않는 그 어딘가에서 계속 글을 쓰고 싶어.
 

우리 엄마가 이렇게 멋진 사람이었다. 맞다. 글이라는 게 꼭 팔리기 위해서 쓰이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글을 내놓는 건 또 글 쓰는 사람의 너무 무책임한 태도이니까. 그 어딘가. 그래 바로 그 어딘가. 그 어딘가에서 계속 글을 쓰고 싶다라니..!



나의 글은 어디쯤 있는 것일까?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누군가에게 팔릴 수 있는 글만 너무 지향하고 살지 않았나 하는 자문을 해본다. 그리고 대답은 0.1%도 부인할 수 없이 "YES"다. 그러면 앞으로라도 글 자체에 목적을 두고 쓸 수 있겠는가? 답은 "NO"다. 그럼에도 팔리는 책을 출간하지도 못했고, 작품성을 운운할 만큼의 글도 쓰지 못했으니 어쩌면 순수 문학도 아닌, 대중성도 아닌 그냥 계속 끄적이기만 한 것이 나의 현실이다. 이 현실을 어찌할까. 가끔은 들춰보기 조차 싫을 만큼 답답하다. 


하지만 오늘도 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다. 왜 쓰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써야 할 것 같으니까. 쓴다. 이처럼. 쓰다 보면 언제쯤 그 어딘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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