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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n 29. 2022

몸으로 울던 아이

한 아이가 울고 있다.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온몸으로 울어대고 있다. 아직 말을 할 수 없는 영유아일까 싶지만, 이미 쭉 뻗은 다리와 어여쁜 얼굴을 가진 열 살 내외쯤으로 보이는 어엿한 초등학생이다. 울어도 울어도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자 아이는 이제 발까지 구르기 시작한다. 같은 자리에서 처절한 뜀뛰기가 시작된다. 말을 할 수 있었으면 덜 했을까.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더운 날씨에 아이의 몸부림은 멀찍이 서있는 내게도 숨막힘을 선사한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조금 더 바라보고 싶지만 내가 미처 상념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누군가는 나에게 시선의 목적을 물을 것이 분명하기에 슬쩍 자리를 피한다. 알아들을 수 없는 아이의 절규는 계속 이어진다. 


아이는 선택적 함구증이 의심된다고 했다. 여느 평범한 아이처럼 충분히 말을 할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스스로 말하기를 거부한, 혹은 포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부모가, 선생님이, 더 나아가 이 나라가 아이에게 조금 더 적극적인 개입을 해왔다면 달라졌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찰나이다. 


더 이상 아이는 내 시야에 있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아이의 새끼손가락에 빨간 신을 매달아 내 머릿속에 칭칭 감아둔 듯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하나같이 다 우는 기억이다. 굳이 남겨두고 싶지 않아서 애써 눌러둔 시간들이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아우성이다. 그래서 기록해본다. 


#1. 며칠 전 첫째 아이가 나의 차키를 가지고 놀다가 잃어버렸다. 당연히 내가 늘 두는 곳에 있어야 할 차키가 없다는 걸 깨달은 건 하필 월요일 아침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여유 있게 준비했기에 두 아이 다 내가 등원시킬 테니 먼저 출근하라고 남편에게 선심까지 쓴 참이었다. 룰루랄라 했던 기분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엄마가 점점 분노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아이는 공포와 당혹감에 차키를 어디에다 놨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 순간 화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물었다면 가끔 비상한 기억력을 발휘하는 아이가 충분히 찾아주었을 테지만 나는 야속하게 흐르는 시간에 점점 초조해졌고 결국 온몸으로 발악하고 말았다. 제자리에서 쿵쿵 뛰며 도대체 왜 엄마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는 거냐며, 동생이 아빠 차키를 숨겨놨다가 혼났던 게 기억이 안나냐고, 차키 찾을 때까지 놀이터고 물놀이고 꿈도꾸지 말라며 온갖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차라리 말을 안 하기로 한 아이처럼, 표정은 험악해도 입은 닫고 있을 것을.

금방 지나쳐온 아이의 제자리 뛰기는 절박했지만, 나의 제자리 뛰기는 추악하기 그지없었다. 

그날 저녁, 퇴근 후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에 집안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결국 이미 지불한 10만 원이 무색하게,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또 발생할 수 있으니 또 10만 원을 들여 예비키를 만들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아이의 머리를 드라이기로 열심히 말려주다 번뜩 생각난 물건이 있었다.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 요동치는 심장을 애써 숨기며 마지막 머리카락 한올까지 바스락하게 말려주고 나서야 아이의 공간으로 향했다. 다행히 열쇠는 그곳에 있었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이렇게 간단한 문제를 그렇게까지 공포스럽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나였다. 나의 밑바닥은 늘 그렇게 추했다. 그럼에도 그 밑바닥을 열심히 닦아내야 하는 나는 엄마였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 엄마가 너무 크게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아이는 괜찮다고 했다. 아이가 언제까지 이런 엄마를 견뎌줄 수 있을까.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이에게 약속을 했다. 앞으로는 엄마가 그런 상황에서도 화내지 않고 차분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아이는 미소로 답했다. 언제나 느끼지만 내가 먼저 태어났으니 엄마 노릇을 하고 있을 뿐 아이가 더 큰 스승이다. 



#2. 지금은 첫째 못지않게 어딜 가나 아이가 말을 왜 이렇게 잘하냐는 말을 듣는 둘째이지만, 불과 6개월 전 나는 아이를 두고 심각하게 언어치료를 고민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24개월 영유아 검진이 미뤄진 상황, 27개월이 다 되어서야 겨우 받은 검진에서 의사는 30개월까지 기다려보고 그때도 여전히 아이가 "엄마, 아빠, 빠(자동차)" 밖에 못한다면 언어발달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첫째는 16개월부터 주어 서술어가 다 들어간 완벽한 문장을 구사했기에 당연히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둘째도 "말"로 걱정할 일은 없을 거라고 내심 단정 짓고 있었기에 더 충격이었다. 시간은 정직하게도 흘러갔다. 어느새 30개월. 주변에서는 내가 우리 첫째만 보고 비교하니 아이가 더 느려보이는것이라며 고개를 돌려 다른 아이를 보면 그렇게 늦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귀에 덮개라도 씌운 듯 그들의 말은 전혀 내 마음속에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을 늘 사서 하는 엄마를 보란 듯이, 31개월이 된 아이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엄마 누나 함니 또 함니(양가 할머니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랑~해!"를 시작으로 누나 뺨치는 수다쟁이가 된 것이다. 마음 한편에 하나하나 쌓아뒀던 돌탑이 무너지며 가슴이 개운해졌다.


흔히 정말 언어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가 아니면, 조금 늦게 말문이 트이는 아이들은 머릿속에 차곡차곡 말주머니를 쌓아놓는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는 내가 어떤 특정 단어를 해보라고 권유할 때마다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곤 했다. 때가 되면 다 할 테니 걱정 붙들어 매라는 의미였을까. 하하. 

어쩌면 우리 아이가 말주머니를 쌓아온 동안, 그 아이는 주워 담을 말주머니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아이를 놓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아이가 몸부림칠 때 아이 옆에서 잡아준 이들, 달래 준 이들, 진정시키려 노력한 이들. 그들의 손길이 아이의 마음에 굳게 걸린 빗장을 풀고 이제라도 차곡차곡 언어의 성을 쌓아가기를 소망한다. 



여기까지 쓰고 잠시 숨을 골라본다. 그 어떤 것에도 미혹되지 않는 불혹에 이르기까지 이제 손가락 다섯 개도 남지 않았음에도 내 삶은 앞에서 구구절절이 풀어낸 것처럼 여전히 불안과 충동으로 가득 차 있다. 불안은 걱정을 불러일으키고, 충동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크나큰 죄책감과 후회를 가져온다. 이쯤 되면 외딴 어딘가에서 정신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이런 지저분한 잔재만 남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과하고, 반성하고, 기록한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려 내가 마구 흩뿌린 상처의 잔재들을 주워 담을 수는 없지만 앞으로 주어질 시간에는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내가 쓰는 사람이기에 나에게 각성의 계기를 던져주는 어떤 요소에 대해 민감한 촉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엔 그 촉수가 내 시선을 저 아이에게 머물게 하여 정리하지 않아 너절하게 방치되었던 기억들을 다시 한번 나아가는 삶을 향해 노력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로 만들어 주었다. 


이것이 과연, 라라 크루 목적에 맞는 Light 한 삶의 순간일까. 고민했었다. 두 번째 이루어진 라라 크루 줌모임에서 모임을 마무리하려는 수호스트님을 붙잡아 그동안 언뜻언뜻 내비쳤던 고민을 털어냈다. Light 한 삶의 순간을 잡기가 너무 힘들다고. Dark 한 부분을 잡는 거라면 자신 있지만 말입니다. 이 말에 너무도 편안한 표정으로 수호스트님이 우울한 순간을 쓰시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라고 쓰면 그게 Light 한 게 아니겠냐고 말씀해주셨고 그 말이 이 글에 시발점이 되었다. 그리하여 내놓는 한 줄 요약.


*한 줄 요약: 내 인생은 여전히 불안과 충동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PS. 브런치 다년차임에도 이런저런 기능을 하나도 몰랐던 저에게 친절히 알려주신 레오 작가님, 수호스트님께 감사함을 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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