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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n 28. 2022

평행선을 달리는 남과 여

공감대가 필요하다.

아이들을 일찍 재우고 오랜만에 같이 잠들지 않은 밤. 티브이를 켜고 출연진들의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핸드폰을 뒤적거리다, 갑자기 낮에 딸의 친구 엄마가 한 말이 생각이 났다.


"얘가 흙에서 더 이상 흡수할 양분이 없어서 이렇게 키만 크는 것 같아."


여기서 말하는 "얘"는 내가 집에서 키우는 방울토마토이다. 방울토마토가 우리 집에 온 지 어언 1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키만 쑥쑥 커서 거의 세배 가량 자랐을 뿐, 꽃이 필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문제가 무엇일까. 혼자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중, 딸의 친구 집에서 방울토마토가 열린 것을 본 것 같아 물어봤더니 나온 진단이었다. 흠. 그렇군. 어쩐지 뿌리가 점점 바깥으로 노출되는 것이 이 녀석 키에 비해 화분이 너무 작았어!


대책이 필요하다! 사실 처음에는 액상비료를 사다가 줘볼까 생각했지만 그 정도로는 안될 거라는 것이 진단자의 의견이었다. 그래서 결국 큰맘 먹고 화분과 배양토를 사기로 결정!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세상은 넓고 화분과 배양토 종류는 너무도 많다."


크기와 실용성을 따져 화분을 고르고 상품평이 가장 좋은 배양토를 골라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하기 직전. 문득 내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바로,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할 때는 남편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 원래도 체력이 약하지만 요새 살이 자꾸 빠지면서 더더욱 힘이 없어진 내가 10L의 배양토를 든다는 건 언감생심인 데다가 어찌어찌 든다고 해도 그걸 과연 화분에 제대로 부을 수 있을까? 베란다 전체를 배양토 천지로 만들 가능성이 더 높다.


그래서 간만의 자유시간에 신나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가서 신이 나 물었다.


"남편 이 정도 크기의 화분은 어떨까? 너무 큰가? 어때 어때?"


나는 신이 나있었다. 왠지 분갈이만 성공하면 주인 닮이 키만 크고 삐쩍 마른 나의 방울토마토가 줄기가 두꺼워지면서 금방이라도 꽃이 필 것만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달리 남편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사실 관심이 없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평소에는 내가 말을 꺼내면 그동안 받아온 구박의 내공으로 진심은 아니지만 성의는 있는 듯한 대답을 해주곤 했는데, 이날은 정말 귀찮았는지 짜증을 냈다.


"나는 관심도 없는데 왜 자꾸 그래"


정말 찰나의 순간, 기분도 상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화도 났지만 오래간만에 서로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에 괜히 싸울 필요 없다는 생각에 알았다고 하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생각해보면 연애와 결혼을 합쳐 무려 강산이 바뀐다는 10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른 서로의 성향을 용하게 잘 버텨온 듯하다. 남편은 내가 책 읽는 것과 끊임없이 무언가를 쓰는 것을, 여유가 있는 시간에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듯한 강박에 더더욱 책에 집착하는 것을 항상 답답하게 생각했다. 반대로 나는 남편이 책 한 장을 안 읽는 것을, 자유시간이면 핸드폰과 패드를 합쳐 여러 대를 켜놓고 하나는 유튜브, 두 세대는 말로는 안 해도 상관없다는 게임을 계속해서 반복해 돌리는 것을 한심하게 여겼다.


언젠가 보다 못한 내가 결국 남편에게조차 엄마 모드로 다가가,


"좀! 생산적인 것을 할 수는 없어? 허구한 날 게임이나 하고. 애한테 책 읽는 모습 좀 보여줘!"라고 지르고 말았다. 그러자 남편이 "당신이야 말로 꼭 뭘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해, 자유시간에 하고 싶은 것 좀 한다는 게 뭐가 잘못이야?"라고 항변했다. 접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평행선이었다. 몇 번의 부딪침 끝에(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몇 번의 지적질, 그리고 남편의 성토 끝에) 우리는 이런 식의 대화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하여 나도 이제 더 이상 남편이 자유시간에 뭘 하든 개의치 않는다. 여전히 청소년기 남자아이들처럼 게임이나 하고 있는 남편이 눈엣가시이지만 그냥 못 본척한다. 남편도 허구한 날 노트북으로 뭘 쓰고 있는 나를 신기하게 생각해며 가끔 흘긋흘긋 쳐다보지만 그 관심은 채 30초를 못 간다.


이렇게 평화 아닌 평화가 이어지고 있는데 내가 최근에 빠져버린 식물 이야기를 남편에게 계속 해댔으니, 자신의 안전지대를 계속 침범당한 남편이 얼마나 그동안 귀찮았을까. 그럼에도 그동안 꾹꾹 참아왔을 남편을 바라보니 내심 미안하고 기특했다.



아무리 사랑이 밑바탕이 되어 가정을 꾸렸어도 살면 살수록 가족이란 나이를 불문하고, 역할을 불문하고 서로 끊임없이 맞춰가야 한다는 것을 계속 깨닫는 요즘이다. 그렇기에 남편은 남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다 다른 인격체임을 머리로만이 아닌 마음으로, 더 나아가 행동으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늘 되뇐다. (물론 되뇌는 만큼 실천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다짐을 하면서도 한편 앞으로도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은 계속해서 든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은 점점 커가면서 서서히 내 품을, 그리고 남편의 품을 떠나갈 것이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어리고 자기들끼리는 어디를 갈 수가 없어서 집이 늘 시끄럽고 복작복작하지만 당장에 초등학생만 돼도 가족보다 더 소중하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기 바쁠 테고 결국에 집안에 남을 사람은 딱 두 사람. 나와 남편이다.


둘만 남은 상황에서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따로따로 놀아도 충분할 시절이 과연 몇 년이나 될까. 10년? 15년? 그런 세월이 지나고 나면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우리가 진짜 부부가 맞나, 할 정도로 서로에 대해 모르고 그제야 둘이 같이 무언갈 하려 해도 너무 어색하지 않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백년해로를 약속했지만 인생의 황혼기에는 남보다도 어색한 그런 사이가 될까 걱정이 된다.


그렇기에 조심스레 드는 생각은 아이들이 먹고, 자고, 씻는 생활의 기본적인 것들을 자기들 스스로 할 수 있는 때가 오면 의식적으로라도 남편과 내가 무언가를 함께할 시간을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 무언가는 어떤 것이라도 좋다. 내가 집착하는 어떤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어도 좋고, 남편이 늘 주장하는 유희와 쉼에 치중된 것도 괜찮다. 가장 핵심적인 가치만 잊히지 않는다면. 바로 둘 중에 한 사람의 취향에만 적합하면 안 된다는 것.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기꺼이 내줄 만큼 서로에게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나의 생각을 남편에게 말할 적절한 시기는 언제일까?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현재는 부모의 역할만으로도, 직장에서 주어진 업무만으로도 충분히 지쳐있기에 때가 아님을 알고 있다. 그저 언젠가 찾아올 그 타이밍을 내가 너무 늦지 않게 깨우치기를 소망한다. 더불어 남편이 나의 제안을 탐탁지 않게 생각해도 정말로 그런 시기가 오면 굳이 이 같은 어떤 노력이 아니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이 눈앞에 저절로 보일 수도 있으니 너무 상처도 받지 않기로 벌써부터 마음을 다잡아 본다.


*  요약: 가족 구성원은 서로 다른 인격체이므로 존중해줘야 함이 마땅하다. 허나, 훗날 부부만 덩그러니 남았을 때를 대비해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어떤 공통 관심사를 천천히 만들어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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