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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May 18. 2022

형수, 이 정도예요?

뭐가 이 정도라는 게냐.

저번 명절, 서방님, 그러니까 남편의 동생이 내 핸드폰을 보고 한 말이다. 

내 핸드폰은  보급폰(일명 공짜폰)이다. 사실  아직 2년도 안되었지만 벌써 액정에 열개가 넘는 금이 가있고 테두리가 다 깨져서 약간 보기가 흉측스럽다. 평소에도 핸드폰보다 아이패드를 애정 하는 터라 늘 핸드폰은 보급폰을 선택했고, 그래도 평균 3년 정도씩은 꼭 썼었는데 이번 핸드폰은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나의 분노조절 실패이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그날, 아무 죄도 없는 핸드폰을 풀스윙으로 던져버렸다. 그날 이후로 내 핸드폰은 반쯤 정신을 놓았다. 


그래도 잘 쓴다. 가뜩이나 적은 용량이 (32G) 아이들 사진으로 다 차서 사진 한 장 찍으려면 한 장을 지워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새로운 어플은 깔 엄두도 못 내고, 첫 화면에서 잠금 암호를 누르면 한 박자 늦게 풀리고, 통화라도 할라치면 상대방 번호 누르고 5초는 있어야 화면이 바뀌는 치명적인 단점들이 있지만 다행히 나란 사람이 주어진 환경에 불평하기보다는 적응 하는 쪽을 택하는 성향이라 약 23개월 동안 우리는 그렇게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에게는 아이패드 미니(mini)가 있다. 그리고 아이패드를 위한 무선 와이파이 기기(일명 에그)까지 총 세 개를 같이 들고 다닌다. 남들은 그냥 핸드폰에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걸어서 하나만 들고 다니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매번 묻지만 이런 생활을 거의 10년 가까이하다 보니 아무렇지도 않다. 게다가 주로 아이패드를 쓰다 보니 아무리 큰 핸드폰이라 하여도 액정 크기가 성에 차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당사자인 나는 정말 가방에 꽉 차게 세 개를 들고 다니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 


내 아이패드는 2018.9. 에 나에게 왔다. 그 전 아이패드를 3년 6개월 만에 와장창 깨진 액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내고 만난 아이이다. 그 전 아이패드는 용량이 64G였는데 역시나 아이들 사진으로 금세 다 차 버려서 부족함을 아주 많이 느꼈기에 과감하게 돈을 더 주고 128G로 샀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128G도 턱없이 모자랐다. 아이들 사진 욕심을 버리고 버리고, 비우고 또 비웠지만 여전히 가용 공간은 1G가 채 되지 못한다. 


늘 가용 공간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알지를 못했던 이 아이들의 겉모습을 서방님의 한마디에 다시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느꼈다."아 이 정도였구나..."


핸드폰은 자꾸 액정 끝에서 떨어지는 유리 파편 때문에 투명테이프로 빙빙 돌려 붙여놨다가 테이프까지 너덜너덜 해지면서 설상가상의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테이프를 미련 없이 뜯어버렸더니 유리가 더 뜯겨나가 이제는 회복 불가이다. 그래도 나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그동안 내 핸드폰을 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평소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지독할 정도로 남의 시선을 신경 안 쓰는 나였지만 막상 전면에서 저런 질문을 받으니 여러 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들었다. 아마 서방님이 뒤이어 한 말 때문에 마음이 더 복잡했는지도 모른다. 


"형, 형수 핸드폰 좀 바꿔줘, 이게 뭐야 이게, 이 정도야?"


이게 어때서? 뭐가 이 정도야? 난 괜찮은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가치관이 많이 다른 동서네 부부였다. 굳이 말을 꺼내도 통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동서네 부부는 당시 최신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카한테도 기저귀부터 분유까지 다 고가의 물품들로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우리 애들은 장난감도 중고, 책도 중고, 옷도 물려 입히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여기서 반전은 동서네는 서방님 외벌이이고 우리는 맞벌이라는 것이다. 결국 각자의 환경이나 소득과는 상관없이 가치관의 차이인 것이다. 한동안 심란하긴 했지만 내려놓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 출근길에 평소와 같이 아이패드로 브런치를 열심히 탐방하다가 문득 아이패드 커버가 눈에 띄었다. 3년 8개월 동안 내 아이패드를 지켜준 커버는 정말 말 그대로 너덜너덜하기 짝이 없었다. 왜 그동안 몰랐을까? 정말 무심한 주인이다. 한 1-2년 아이패드를 더 쓸 예정이면 커버를 교체하겠지만 다음 달에 핸드폰 약정이 만기여서 어찌 될지 몰라 다시 투명테이프를 집어 들었다. 칭칭 휘감았더니 더 볼품이 없어지긴 했지만 너덜너덜 한 건 잡아줬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새롭게 배운 것이 있다. 바로 서로의 가치관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이미 알고 있었지만 좁고 좁은 인간관계 탓에 체감하지 못했던 것을 요새는 너무나도 많고 많은 소통들 덕분에 마음으로 절절하게 느끼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방법부터, 교육에 관한 가치관, 돈 씀씀이에 관한 가치관, 투자와 저축에 관한 가치관, 부부관계와 가족에 관한 가치관 등등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다 다른지 가끔은 신기하다. 그것에 대해 서로 지적하거나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게 제일 좋지만 결국 우리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어떤 것에 대한 가치관들이기 때문에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다. 그저 듣고 앞에서 수긍하고 자체적으로 거르는 수밖에.


주말에 시댁 식구들과 같이 밥을 먹기로 했는데 아마 서방님은 내 핸드폰과 아이패드를 세트로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하겠지. 옆에서 동서도 말은 안 해도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 혹여나 이번에도 입 밖으로 내 핸드폰을 운운한다면 그때는 나도 말을 꺼내야겠다.


"난 괜찮아~"


나의 아이패드. 3년 8개월동안 하루도 떨어져있지 않았던 너란 존재. 앞으로 얼마나 더 같이 있을 수 있을까.


아마 이번달이 마지막일 내 핸드폰. 그동안 미안했고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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