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어제는 결혼하고 처음맞는 남편의 생일.
선물보다는 근사하게(?) 나름 생일상을 차려주고 싶어서 거하게(?) 장을 봤다.
메뉴는 소고기 미역국, 돼지갈비찜, 잡채! ㅎㅎ 그리고 소소한 반찬들.
일단 미역국 끓이는건 힘든게 아니니까 일단 미뤄두고 갈비찜과 잡채만들기 시작,
아마 이때부터 재앙은 그 씨앗을 뿌렸나보다..
생전 처음 고기 핏물도 빼보고 데치고 양념장 만들어서 냉장고에 숙성시키고
그 사이 잡채에 들어갈 야채 손질하고 볶고 잡채 삶아서 행구고.
무려 돼지갈비를 1.3kg를 데치는데 물이 끓으면서 넘치는 바람에 급하게 전기레인지 끄고
냄비 들어다가 물 약간 버리고 다시 올리려는데 갈비 몇개가 우르르..
순간 울컥. 악! 소리 한번지르고 다시 일일이 씻어서 담궈서 마자 데치기..ㅜㅜ
우리엄마도 해보지 않은 많은 양을 첫 도전에 선택한 이유는 시댁과 친정에 골고루 나눠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여튼 무사히 데치고 양념에 절여서 냉장고 입성! 이때까지만 해도 뿌듯함에
정말 감격스러웠는데.., 왜냐면 밤도 직접까고 대추도 다듬고 표고버섯 다듬고 당근에 무에 등등..
여러가지 정말 다양하게 준비했기 때문이다.
여튼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잡채 만들기 시작. 양파랑 당근이랑 오뎅 그리고 미리 절여놓은
돼지고기까지 준비해놓으니.. 뭔가 허전한 느낌이 팍! 앗! 식탁위에 사온 그대로 방치되어있는
느타리버섯! 사실 목이버섯을 하려고 했으나 차마 그 다듬을 자신이 없어서 느타리 버섯으로
급 변경, ㅋㅋ 근데 .. 느타리버섯이 아무래도 화근이었던것 같다.
당면까지 삶고 간장과 올리고당으로 양념해서 볶고 모든 재료를 섞어 섞었는데..
잉? 이 야릇한 비린내는 뭐지? 내가 임신해서 예민한건가?
어째 간도 심심하고.. 그치만 음식은 싱겁게 먹는게 나으니까 과감하게 간장과 올리고당은 패스.
근데 진짜 이 비릿한 냄새는 뭐지....? 느타리버섯인가? 분명 잘 다듬어서 잘 씻어서 볶아서..
넣었는데 .. ㅜㅜ 흠, 뭐 그래도 일부러 냄새를 킁킁 맡지 않는 이상 티는 안나니까 일단 패스.
잡채 완성.
당면이 많기도 했고 시금치가 워낙 비싸서 못넣어서 좀 아쉬운 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정성이 가득이니, 만족만족
이제 갈비찜만 완성하면 된다..
근데 퇴근하고 장보고 저녁도 못먹고 바지런히 움직인다고 움직였는데 벌써 10시가 넘어가고 있는 상황..
다행인지 불행인지 회식중인 남편은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몸은 점점 지쳐가고 머릿속에서는 완벽한 생일상을 위해 갈비가 양념에 숙성되는 동안
소고기 미역국을 뚝닥 끓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누워 있는 나.. ㅋㅋ
게다가 자리를 깔고 누우니 갑자기 몰려오는 허기 ㅜㅜ 그리고 퍼뜩 생각나는 사실 하나!
밥이 없다...급하게 벌떡 일어나 밥을 앉히고 나니 정말 다리가 후들후들..
간신히 정신줄 잡고 냉장고에서 엊그제 밤에 사다먹고 남은 닭강정 세개를 꺼내서
전자렌지 돌리고 우유한잔 따라 입으로 넣는데 .. 말로 표현 못할 복잡한 기분이..
ㅜㅜ 억울하고 힘들고 서럽고 뿌듯하고 지치고 뭐 그렇고 그런 수많은 감정들...
여튼 그러고 좀 쉬니까 어느새 12시, 그리고 도어락 열리는 소리.
남편이 돌아왔다. 그런데 다른때보다 덜 반가운 느낌적인 느낌. 왜냐면. 너무 지쳐서 ㅜㅜ
여튼 남편얼굴 보고 씻으라고 하고 갈비를 재우기 시작.
이때가 이미 12시 30분이 넘어간 상태.. 갈비를 끓이다가 모든 고명 투하!
하..그러나 체력적으로 너무 무리를 했던 것일까.
한시반까지 버티던 나는 결국 졸아버렸고. 갈비는 정말 다 타버렸다.
그걸 알아차린것이 2시30분.. 눈물샘 폭발. 정말 그 새벽에 꺼이꺼이 울기 시작.
울면서도 안탄부분은 살려보겠다고 발악을 했지만 결국 실패. 또 꺼이꺼이 울기 시작.
허망해져 버린 내 시간과 노력. 다같이 맛있게 먹고 싶었던 기대도 와장창 깨지고..
울면서 남편을 깨워말어 심적갈등을 겪으며 설거지 시작..
모든게 제로 상태로 돌아간걸 보니 진짜 영혼을 털린듯이 멍때리게 되고..
그때가 3시 30분.. 자려고 누웠는데 눈치없이 왜이렇게 배는 고픈건지..ㅜㅜ
결국 이기지못하고 우유한잔과 다이제 하나를 꺼내 꾸역꾸역 안방 화장대에서 먹고있는데..
슬며시 열리는 안방문. 남편의 입장. 또 다시 터진 울음보...
남편에게 말도 못하고 우니 착한 우리남편 자기가 술먹고 실수라도 한 줄알고 안절부절하고..
힘들게 울음을 그치고 얘기하니 남편이 자기가 졸이기 전에 봤으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사실 남편을 보여주려고 남편이 오자마자 졸이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갈비를 숙성시켜야 할 시간이 필요해서 그런건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시간이 그렇게
맞아떨어진것이었다. 여튼 그렇게라도 남편이 내 정성을 알게되어서 지금은 다행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냥 다음날 졸일걸 하는 아쉬운 마음도 .. ㅜㅜ
다음날 우리 아가보러 가는 날이라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더 서두른게 결국..에혀..

결국 건진건 잡채뿐.. 남편 생일 당일 점심상에 소고기 미역국과 잡채, 급하게 만든 오뎅반찬과
비엔나소시지 반찬으로 마무리. 사진한장 찍어둘걸.
욕심이 부른 참사가 결국 갈비를 다 버리게 만들었지만, 이번일을 계기로
요리는 한번에 하나씩만 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착한 남편이 이해해줘서 정말 고맙고.. 다음에는 한우갈비로 꼭 맛있게 갈비찜 해줄게 남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