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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Dec 29. 2020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40

라온이가 열이 난다. 남편이 안아보더니 뜨끈하다고 해서 열을 재보니 38.5도. 헙. 숨이 먼저 참아진다.

남편과 시어머니 편에 아들을 병원으로 보내고 얼른 딸을 씻겼다. 평소같이 잘 씻겼는데, 끝끝내 같이 병원에 가지 못한 마음의 잔재가 별것도 아닌 것에 딸에게 폭발하게 만들었다. 기껏 다 씻겨놨는데 딸이 머리에 거품칠을 한 것이다. 갑자기 치솟은 짜증. 결국 큰소리를 내고 싸한 분위기쏙에 이까지 다 닦았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잠시 딸을 욕조에 두고 나와 핸드폰으로 남편에게 전화를 하는데 연결이 안 된다. 운전 중이겠지. 한바탕 괜히 혼난 딸은 아직 세면대에 손이 닿지 않아 구입한 2단 디딤 계단 위에 얌전히 서있다.

그러는데 남편이 돌아왔다. 열의 원인은 목이 부었기 때문이란다. 원인이 확실하니 코로나 검사를 권유하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이틀 뒤에 다시 오란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크리스마스부터 일요일까지 딱 한번 놀이터에 나갔는데. 그것도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한 시간 정도 완전무장하고 뛰어놀다 들어왔는데, 그게 원인이었을까. 왠지 모를 마음속 죄책감이 든다. 한숨이 절로 난다.

기나긴 연휴였다.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그래도 기다리던 선물이 아이들 머리맡에 있어서 그것으로 놀며 시간을 보냈고, 오후에는 남편이 산타분장을 했으나 폭망 했다. ㅋㅋㅋㅋㅋ라온이가 대성통곡을 했기 때문이다. 라온이는 눈치도 빠르고 인지도 빠르고 그래서 안 그럴 줄 알았더니 아주 그냥 대성통곡. ㅋㅋㅋㅋㅋㅋ 왜 이렇게 대성통곡을 하나 봤더니 오늘 뒤늦게 올라온 어린이집 산타행사 사진에서 보니 단체사진에서 혼자만 대성통곡하고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렇게 무서웠던 사람이 집에 또 나타났으니 울 수밖에. 아직 애기는 애기다. 애기. 이제 5살, 곧 6살 다온이는 눈치가 있어서 산타에게 아빠예요? 아빠예요?라고 물어봤는데, 엄빠의 극구부인으로 그냥 넘어가기로 한듯하다. 그러나... 내년에는 택도 없겠다. ㅋㅋㅋㅋㅋㅋㅋ내년에는 정말 다른 사람을 섭외해야 할 듯하다.




토요일 일요일 정말 요새는 집 앞 마트도 안 가고 학교-집만 하는 생활이라 연휴가 반갑지 않다. 오늘 정말 출근을 했는데, 나는 그래도 오래간만에 숨통도 트이고 살만했는데 날 보는 사람마다 얼굴이 너무 초췌하단다. 그러면서 애들이랑 연휴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엄청 힘들었냐고 묻는데 그저 웃었다. 사실 애들이랑 힘든 것도 당연히 있지만 그보다 집 안에만 있어야 했다는 게 더 힘들었다. 집안에서는 시간이 안 가니까. 너무너무 안 가니까. 그래서 놀이터 한번 나갔는데.. 다시 마음이 원점이다. 나비효과라는 게 이런 걸까.


결국 또 이번 주도 돌아가면서 집에서 라온 이를 봐야 한다. 나는 라온이랑 둘이 하루 종일 잘 있을 수 있을까? 사실 라온이랑 나랑은... 묘하다. 아들이랑 묘하다는 게 좀 표현이 이상하지만 진짜 묘하다. 뭐랄까. 다온이랑은 뭔가 다르다. 덜 친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까. 아들은 아직도 나보다는 아빠에게 의지하고, 아빠를 더 살가워한다. 애정표현도 아빠에게 더 많이 한다. 뭐 당연히 아빠가 더 자기를 챙기니까 그런 거겠지만 이 못난애미는 그것이 또 서운하다. 하지만 내 사랑 다온이를 놓칠 수 없어 결국 라온이는 뒷전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밥 먹는 것도 씻는 것도 라온이는 아빠랑 다온이는 엄마랑. 어찌어찌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고, 책 읽는 것도 다온이는 엄마랑 라온이는 아빠랑.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아들이 너무 짠해서(아이들에게는 엄마사랑이 그래도 가장 크니까.) 다온이랑 책읽던중간에도 아들이 책 가져오면 읽어주려고 하는데, 라온이는 다온이만큼 학구파가 아니라서 좀 읽다 보면 덮고 자꾸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가잔다. 그러면 결국 나는 아빠를 부를 수밖에 없다. 라온이도 중요하지만 자기 전 책 읽기 시간은 다온이와의 오랜 약속이고, 나의 신념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마다 라온이도 나처럼 서운하겠지. 그래서 가끔 라온이는 내가 다온이랑 책 읽는 시간에 갑자기 쫓아와서 읽고 있는 책을 덮어버리거나 툭 쳐서 떨어트리게 만든다. 그러면 다온이가 온갖 짜증을 내도 나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 아들 마음을 알 것만 같아서.

아들과 딸 사이에서 나는 너무 어렵다. 아들을 챙긴다고 무슨 건수가 생기면 아들부터 줬더니 딸이 외친다. "나는 맨날 두 번째로 주고!" 아마 라온이가 말이 트이면 라온이가 할 말이 벌써 귀에 들리는듯하다. "엄마는 누나만 좋아해!" 나는 어째야 할까. ㅜㅜ

정말 자식이란 뭘까. 이래서 내 아이를 낳아서 키워본 사람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깊이가 다르다는 말을 하는 걸까. 정말 어렵고도 어렵다. 이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열보초도 설 겸 티브이를 켰는데, 무속인이 된 자녀와 그런 자녀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의 이야기가 나왔다.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자식이란 뭘까. 마음이 무거운 하루가 이렇게 흘러간다. 내일 아이를 보기로 한 남편은 1시까지 열보초를 선다고 한다. 나도.. 아마 잠이 안 올 듯 하지만 내일 또 초보운전이 운전해서 출근해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고 또 운전해서 돌아와야 하니 이만 누워야겠다. 아들의 열이 내일은 뚝 떨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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