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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an 10. 2021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41

불쌍한 아이들이 너무 많다. 요새 한참 화제가 되고있는 정인이. 그리고 12년전 몹쓸짓을 당한 나영이. 그리고 알려지지 않았을 수많은 아이들까지. 왜이렇게 아이들이 자꾸 겪어서는 안되는 일을 겪는걸까. 나는 사실 이런 불행한 사건을 접하면 나와 관련이 있든 없든 마음에 오래 남는 사람이라 왠만하면 모르고 지나가려고 노력한다. 어찌보면 무책힘한 태도일지 모르지만, 나 자체가 그 사건을 알게되면 알게될수록 너무 우울해지고 일상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래서 역시나 정인이 사건도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노출되는 정보말고는 되도록 알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정인이의 죽음은 나와 같은 엄마들의 분노를 많이 샀고, 덕분에 나는 의도치 않게 정말 많은 얘기를 들었고 알게되었고 읽게되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이 너무 무겁다.


오늘은 하루종일 우리 둘째, 라온이를 보면서 정인이가 생각이 났다. 사실 정인이 사건을 안 이후에도 한번도 그런적이 없었는데 이게 다 결국 자업자득인 것이다. 올해 나는 지역신문에 집필진으로 2주에 한번씩 기고문을 쓰게 되었는데, 새해 첫 글은 어찌어찌 나가게 되었고, 다음주면 또 다른글을 내야했다. 사실 이것저것 생각은 많이 했는데 그 어떤 소재보다도 정인이에 대한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될것같은 마음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결국 애들이 다 잠들고 난 후, 정말 어렵게어렵게 노트북을 키고 정인이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새벽에, 가뜩이나 감성적으로 변하는 그 시간에 말이다.


너무 우울해지고, 마음이 아프고, 약간은 울컥할것 같은 마음을 다잡으려 이어폰에서만큼은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오게끔 했는데도 마음이 전혀 가시지 않았다. 그저 화가났고, 그저 슬펐다. 지금도 슬프고 화가난다. 정인이의 죽음에, 그들의 뻔뻔함에. 지금도 많은 분들이 그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하여 진정서를 쓰고 탄원서를 쓰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있다. 다음주에 내 글이 지역신문에 나가면, 단 한명이라도 정인이에 대해서 알게되고 펜을 들어 너무 가여운 정인이를 위해 단 한줄이라도 써주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이번주는 참 힘이 들었다. 라온이가 괜찮아진지 하루만에 다온이가 열이 나기 시작한것이다. 원인은 라온이와 같은 편도염. 그래서 결국 다온이는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유치원에 가지 못했다. 수요일은 내가 연가를 냈고, 목요일은 원래 아빠가 연가를 내기로 했는데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초보운전인 내가 혼자 운전하고 도저히 출근을 할 수 없을것 같아서 결국 양가 어머님의 도움을 받아 둘다 출근을 했다. 금요일도 마찬가지. 단골 소아과에서는 다온이의 열이 3일간 떨어지지 않으니 주말에 지켜보고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코로나 검사를 받을것을 권유했고, 나는 정말 우울했다. 그런데 우리 딸이 나의 이런마음을 알았는지 다행히 오늘은 열이 37.5도 이상 나지 않았고, 해열제를 한번도 먹지 않았다. 정말 한시름 놓았다. 내일도 열이 안나면 월요일에 병원갔다가 등원시킬예정이다. 사실 내가 전업주부였다면 다온이를 며칠 더 집에서 쉬게 하면 좋겠지만... 미안한 마음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다온이도 집에 며칠있더니 유치원가고싶다는 말을 한다.)


오늘은 집에서 아이들과 나름 신나게 놀았다. 내가 며칠전에 만들기를 좋아하는 다온이를 위해 폼페이퍼(스펀지종이같은거), 목공풀, 반짝이색종이, 색깔종이컵을 왕창샀는데, 오늘 그것이 제대로 빛을 발했다. 아이들이 신나하는 모습에 뿌듯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앞으로는 값비싼 장난감보다도 이런 만들기 재료같은것을 사주는게 더 좋을것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실천한것인데 내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아이들이 오늘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오늘 가장 대박템은 바로 칼라종이컵이었다. 칼리종이컵을 200개 샀는데 다꺼내기에는 너무 많은것 같아서 100개정도 꺼내주었더니 다온이는 유치원에서 해봤다며 컵쌓기를 했다. 그런데 우리 라온이가 그걸 가만둘리가있나. 누나가 쌓기만하면 무너트리기 일쑤. 결국 누나 짜증 폭발. 그래서 중재하고 있던 차에 내가 종이컵을 아이들에게 물뿌리듯이 던져보았다. 그랬더니 그것이 웃겼는지 갑자기 눈싸움도 아닌 종이컵싸움 발발. 진짜 재미있었다. 아이들이 동시에 나에게 종이컵을 던지고 나도 던지고. 이게 근거리에서 던지면 사실 바닥면이 딱딱해서 맞으면 아플텐데, 아이들이나 나나 서로 경계(?)하느라 멀리서 던지니 다치지도 않고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참나, 겨우 종이컵만으로도 이렇게 재미있게 놀수가 있다니. 재미있으면서도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에게는 비싼장난감이 필요없다. 결국엔 어떤걸 가지고 놀든간에 부모가 어떻게 놀아주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걸 오늘 온몸으로 느꼈다. 한참 종이컵싸움을 하다가 이번에는 아이들이 종이컵흐트리기를 하면서 노는데 내가 정리를 하려고 종이컵을 한곳에 모아두면 보란듯이 둘이서 손과 발로 흐트려 놓는것이다. 약올라하는 내 표정을 보며 꺄르르꺄르르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찌나 이쁜지 핸드폰에 동영상으로 저장해놓았다. 얼마나 열심히 놀았는지 다온이는 땀이 흥건히 나서 앞머리가 다 젖기까지 했다. 나도 얼마나 몸을 움직였는지 더워져서 반팔로 갈아입고 라온이도 누빔내복에서 면내복으로 갈아입혔다. 정말 키즈카페 부럽지 않게 색깔 종이컵 100개로 뽕빠지게 놀았다.


그런다음에는 한숨 돌릴 겸 종이컵이랑 폼페이퍼로 만들기 놀이를 했는데, 오늘은 꽤나 그럴싸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ㅋㅋㅋㅋㅋㅋㅋ(온전히 주관적인 기준) 사실 목공풀을 폼페이퍼로 만들기할때 쓰려고 산건데, 폼페이퍼는 목공풀이 아니라 글루건이나 일반 풀로 잘 붙는다는걸 몰랐던 애미의 완전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래서 12개나 산 목공풀은 현재 서랍에 고이고이 들어가있고, 우리는 글루건이 없기때문에 일반 풀로 열심히 오리고 붙여서 만들었다.



다온이가 만든 미미의 집과 미미가 먹을 먹거리
애미가 만는 부엉이와 이썪은 로봇, 나중에 다온이가 똑같이 따라 만들어서 커플 부엉이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아직 만들기는 할 수 없는 우리 라온이와는 종이컵을 머리위에 올려주면 라온이가 "안녕하세요"하면서 인사하면 종이컵이 떨어지는 놀이를 했는데, 머리가 어지러울만도 한데 종이컵떨어지는게 너무 재밌었는지 반복에 반복을 더했다. 정말 오늘 종이컵아니었으면 어떻게 하루를 보냈을까 싶다.


이제는 아이들과 집에 있는것도 어느정도 익숙해져가고있다. 처음에는 답답하고 우울하고 그랬는데, 사람이 참 ..익숙해져가는지 이제는 당연한 일상이 되었고, 학교와 집 외에 집앞 마트도 언제 나가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코로나는 언제끝날까. 빨리 코로나가 끝나서 우리아이들 모두 데리고 여행가고싶다. 내일은 뭘 하고 놀아야할까.


아! 쓰다보니 잊고있던 오늘의 효자템 하나 더! 바로 약통. 애들이 아프다보니 약통이 계속 쌓이는데 큰약통 작은약통 할것없이 물 가득 채워서 쟁반위에 올려주고, 플라스틱 그릇몇개 주니 다온이고 라온이고 그렇게 잘 놀더라. 애미가 할 일은 중간중간 물 닦아주고 물 다 떨어지면 다시 채워주기. 정말 집에있는 장난감들의 존재가 무색해질 정도다. ㅎㅎㅎㅎㅎㅎㅎㅎ


내일도 무언가 예상치 못한 재미난 놀이가 발견되길 바라며.


다온이의 컵쌓기
다온이가 각티슈 다쓴걸로 만든 시크릿쥬쥬 아이린의 공주집
사과머리 잘 어울리는 아들과 좀비흉내 재미들린 다온이


다온아 라온아 엄마가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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