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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an 18. 2021

엄마, 나는 충분히 잘 컸어요.

여느 때처럼 친정엄마에게 아이들 사진을 보냈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 이상했다.


"울 손주들은 **이랑 **이가 엄마 아빠여서 참 좋겠다. 울 딸은 그러지 못해 미안해"


많이 당황스러웠다. 사실 나는 요새 우리 엄마 때문에 자주 당황한다. 내가 아는 우리 엄마는 굉장히 강한 분이었다. 여자의 몸으로 혼자 두 아이를 건사했으니 어쩌면 강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의 아빠는 우리 엄마가 억척스럽게 강해지는 동안 어디서 뭘 했을까. 다행스럽게도 나는 어렸을 때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서 어린 시절, 학창 시절, 그리고 다 큰 성인이 돼서 결혼을 할 때까지 딱히 아빠라는 사람에 대한 원망이 없었다. 그렇다고 부족함을 많이 느끼며 살아온 것도 아니고, 남들처럼 아빠라는 빈자리에 대해 그리움을 지니지도 않았다. 그저 아빠의 빈자리는 나에게 당연했고, 아빠라는 빈자리는 내가 학교에서 한부모 가정이라고 급식비 지원을 받을 때나 좀 실감 나곤 했었다.


엄마는 가끔 아빠 이야기를 하셨다. 좋은 얘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난 크게 분노하지도 않았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참 모질고도 힘든 세월이었을 테지만 정말 솔직하게 마음에 와 닿지도 않았고, 본능적으로 귀담아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제 와서 내가 내 앞가림을 할 정도로 커서 그 시절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새삼스럽게 아빠라는 사람에 대한 분노를 키우면 뭐할 것이며, 남보다도 멀어진 그 사람에게 신경 쓸 정도로 내 인생이 녹록하지도 않았다. 그랬다. 그래.. 그랬다.



그래서 그랬을까. 우리 엄마는 참 강하고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10대의 내 사춘기와 20대의 내 늦은 반항기를 지나며 정말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당당히(?) 맞설 정도로 강했고, 나도 내 대학 친구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드센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친구가 말하길 난 절대 우리 엄마를 이기지 못할 거라고 할 정도로 우리 엄마는 넘치게 강했다. 그리고 부정적이었다. 부정적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엄마에게서 그 어떤 사안이 든 간에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기란 참 어려웠다.


이런 일이 있었다. 엄마의 생일이 돌아오고 있었고 나는 그동안 한 푼 한 푼 모아둔 돈으로 정말 생애 처음 백화점이라는 곳에 가서 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닥스 스카프를 구입했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를 위해 첫 명품을 샀다는 뿌듯함과 엄마의 기뻐할 모습에 잔뜩 기대에 부풀었지만 생일 당일 나의 마음은 와장창 깨졌다. 엄마의 첫마디는 왜 이렇게 비싼 것을 샀냐는 타박이었다. 너무 속이 상한 나머지 막 짜증을 내던 내게 그제야 이쁘다는 말을 했지만 이미 나는 상처를 받을 대로 받은 후였다. 지금의 나는 엄마가 죽어라 아끼며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세월들 위에 서있었기에 스카프 한 장에 4만 원이 넘는 가격이라는 것이 이해가 안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라는 게 이해가 가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어렸다. 정확히 몇 살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한참 어렸다.


그 후로도 엄마에게서 만족을 이끌어내기란 참 어려웠다. 무엇을 사도, 무엇을 먹어도 엄마의 눈에는 부족한 것이 먼저 눈에 띄었다.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 그런 경험을 하니 내 머릿속에는 엄마는 만족이 없는 사람, 부정적인 사람으로 각인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건 본인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 그럴 수 있다. 원래 자기 자신은 자기 자신이 가장 모르는 법이니까.


그런 엄마가 유일하게 일관적으로 나를 인정해주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나의 독학 실력이다. 정말 더럽고 치사했던 영어강사 2년을 종지부 찍고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기로 결정한 날로부터 4개월. 나는 보란 듯이 지금의 자리 필기시험에 붙었다. 그리고 더불어 서울시 사회복지직 공무원 필기시험에도 붙었다. 세상을 넓게 봐야 한다고 무조건 서울로 올라가라는 몇몇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역에 남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최종 합격했을 때 엄마가 안아주시며 무덤덤하게 한마디를 건네셨는데 그것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우리 딸 수고했어. 잘했다."


그 후로 나의 공무원 시험 합격은 엄마의 1순위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엄마는 항상 나의 독학 실력을 칭찬하신다. 어제도 우리 집에 다녀가신 엄마는 손녀를 붙잡고 "너네 엄마는 독학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해"라고 말씀하셨다. 한없이 강하고 냉정한 엄마도 엄마는 엄마다. 세상엔 대단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공무원 시험 붙었다고 어디 가서 내 얘기만 나오면 우리 딸이 4개월 만에 공무원 시험을 붙었네, 학교에서 그렇게 존다고 숙박비 내라고 두드려 맞고 혼나면서도 혼자 공부해서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네 어쨌네 저쨌네 하고 자랑하는 우리 엄마.


그런데 요새 엄마가 이상하다. 엄마가 우리 엄마 같지가 않다. 우리 엄마가 갑자기 착해(?) 졌다.


이제 운전 4개월 차인 내가 운전대 잡은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무렵 주차 되어있는 남의 차를 긁은 일이 있었다. 지금은 무슨 일인지 기억도 안나는 일로 남편과 아침에 한바탕 한 후 옆에서 지도해주는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내 멋대로 운전하다가 멀쩡히 주차되어있던 남의 차를 떡하니 긁어버린 것이다. 다행히 인심 좋은 아저씨(차주)가 자기가 한번 수습해보고 안되면 전화 준다고 해서 전화번호를 건네주고 출근을 했는데 하루 종일 마음이 안 좋았다. 그러던 차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고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하는데, 엄마한테서 전혀 기대치 못했던 반응이 나왔다.


"딸, 딸은 아주 잘하고 있는 거야. 엄마 운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길 가다가 도 박고 미끄러져서 박고 사고 참 많이 났어, 그 정도는 아주 양호한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전화 오면 보험 처리하면 돼, 신경 쓰지 말고, 딸은 아주 잘하고 있는 거야"


'......?'


정말 당황스러웠다. 누군가는 당연히 엄마라면 저렇게 얘기해줄 텐데 뭐가 당황스럽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 머리가 멍해 질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우리 엄마는.. 저렇게 상냥한(?) 엄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기대한 엄마의 반응은..


"어이구 진짜 못 산다 내가, 그쪽 운전자는 뭐래? 옆에서 **(남편)은 뭐했다니?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겠다"였다. 이랬어야 했다. 이거다. 우리 엄마가.... 변했다. 그것도 갑자기.



어느새 환갑을 지내고 2년을 더 살아오신 우리 엄마. 역시 나이에는 장사가 없는 걸까. 전에는 너무 강하고 냉정할 정도로 객관적이고 부정적이었던 엄마가 불만이었는데, 이제는 왠지 나이에 짓눌려 엄마가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약해지는 것만 같아 가슴이 아리다.


얼마 전 남편을 통해 "엄마가 딸에게"라는 노래를 알게 되었다. 그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주겠니"


노래를 다 듣고 나서 남편이 감동적이지 않냐고 물었을 때 "뭐, 딱히"라고 대답했던 나였다. 실제로 그랬다. 사실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우리 엄마에게서 저 가사와 같은 말을 들으니 이렇게 뒤늦게 마음이 짠해진다.



나는 안다. 우리 엄마가 나와 동생을 키우느라 그 누구보다 고생했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나 어린 시절처럼 어렵지 않은데도 아직까지도 손자 기저귀 한 장도 아까워서 기저귀가 축 쳐 질정 도로 젖어야 갈아줄 만큼 몸에 절약정신이 박혀있어 본인에게는 돈도 잘 안 쓰고 산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가끔 퉁명스럽게 나이 60 넘어서까지 궁상떨면서 살아야겠냐고, 쓸 거 쓰고 먹을 거 먹으면서 사시라고. 잔소리를 하는데 요새는 그것조차도 엄마에게 상처가 되는 것 같아 가슴이 아리다. 옛날의 엄마라면 말 이쁘게 안 하냐고 한소리 했을 텐데, 차라리 지금은 지금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 엄마도 글을 쓰는 사람이다. 요새 엄마가 쓴 글을 보면 주로 우리 어릴 적 이야기나, 엄마 어린 시절 이야기가 많은데 지나온 세월들을 훑어보며 군데군데 어떤 나날들이 엄마에게 뒤늦은 후회로 다가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우리를 키우면서 보내온 나날들 중에 말이다.


하지만 엄마가 그렇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충분히 잘 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나 동생이나 학창 시절 참 많이 힘들기도 했고,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아직 방황할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넘어져도 일어날 만큼의 마음의 힘도 가지고 있다. 이 정도면 정말 엄마가 대단히 잘 키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엄마가 미안하다는 말은 이제 다시는 안 하셨으면 좋겠다.


"엄마, 우리는 충분히 잘 컸어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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