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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an 20. 2021

언제쯤 원 없이 먹을 수 있을까(1)

아침에 눈을 뜬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직행하는 곳은 바로 체중계 위. 정작 중요한 소수점 앞 두 자리는 변하지 않는데, 소수점 뒤 두 자리가 조금 내려갔다는 사실에 안심하며 커피 한잔을 따른다.


"나는 언제쯤 원 없이 먹을 수 있을까?" 오늘도 반복되는 질문이다.


지금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나보고 말한다.


"한 번도 살찐 적 없지?"


하지만 완벽하게 틀린 추측이다. 나는 왕년에 아주 제대로 된 뚱뚱이였다. 말이 좋아 뚱뚱이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고도비만 환자" 이 표현이 더 적절할 만큼 살이 많이 쪘었다. 그 당시의 나는 몸 군데군데 살이 뒤덮여 눈도 지금의 반밖에 안보였고 목은 아예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조차 없었다. 허리를 33인치에 육박했고 몸무게는 70kg에 육박했다. 그래서 가뜩이나 친구 한 명 없었던 학교에서는 돼지라고 놀림받기 일쑤였고, 스스로도 몸이 무거워서 체육시간은 수업시간이 아니라 고문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살이 찔 수밖에 없었던 이유. 바로 내 멈출 수 없었던 식욕 때문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밥을 한가득 퍼서 먹으면서도 한 숟갈 한 숟갈 내 입속으로 들어가서 사라지는 밥이 아까웠다. 피아노 학원을 왔다 갔다 하며 사 먹는 컵 떡볶이나, 떡꼬치는 진짜 너무너무 맛있었고 특히 내가 좋아했던 음식은 소시지와 맛살이었는데 평소에는 그렇게도 동생을 챙겼던 내가 소시지와 맛살 앞에서는 동생이고 뭐시고 하나도 눈에 뵈지 않고 그저 내가 먹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몰래 꽁꽁 숨겨놓기도 했다.



"지나친 식욕은 도덕교육을 무색하게 한다. "


이런 일이 있었다. 하교하고 집에 왔는데 너무너무 허기가 졌다. 집에는 밥이 있었지만 밥이 아닌 아이스크림과 맛살이 먹고 싶었다. 그렇지만 어린 나에게는 돈이 없었고, 그 당시 유행했던 오*맛살은 너무나도 비쌌다. 엄마에게 사달라고 하기에는 차마 입이 안 떨어졌다. 그래서 나는..


"엄마 지갑에 손을 댔다."


엄마 지갑에서 처음 돈을 꺼낼 때는 정말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잠재운 것은 바로 나의 식욕. 이 돈만 있으면 엄마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내가 정말 너무나도 먹고 싶었던 맛살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용감하게(?)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그날 밤은 참 길었다. 다행히 엄마는 만 원짜리 한 장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몰랐고, 나는 지옥 같았던 학교에서의 시간도 하교만 하면 맛살 사들고 집에 가서 먹으면서 티브이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꿈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하교시간. 날아갈 것 같은 마음으로 마트에 가서 만원 꽉 채워 맛살을 샀다. 집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나 행복할 수가 없었다. 티브이를 켜서 그 당시 좋아했던 조성모 오빠의 무대를 보며 까먹는 맛살이란. 지금 당장 나에게 랍스터를 삼시 세 끼 준다고 해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행복이었다. 그 행복감이 너무 넘쳤던 걸까. 그 이후로도 나는 몇 번 엄마 지갑에 손을 댔고, 결국 엄마가 눈치를 채고 말았다. 사실 그래서 내가 혼났는지 안 혼났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만약 혼났다면 불같았던 우리 엄마 성격에 날 가만두지 않았을 테니 혼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뒤로 약 2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고, 엄마와 어떤 얘기 끝에 맛살 얘기가 나와서 엄마에게 그 모든 일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엄마는 어쩐지 지갑에서 자꾸 돈이 사라지는 것 같았는데 확실한 증거가 없어 그냥 넘어갔다고 하셨고 그렇게도 맛살이 맛있었냐고, 소시지가 맛있었냐고, 허탈한 웃음을 지으셨다. 그런데..


"진짜 그 정도로 맛있었다"


그 시절이 내 생에 있어 정말 원 없이 먹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몸무게 신경 안 쓰고. 물론 먹고 싶은걸 정말로 다 원 없이 먹기에는 내 형편이 따라주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있어도 못 먹고, 먹고 싶어도 살찔까 봐 못 먹는 그런 제한은 없었던 아주 자유로웠던 시절. 하지만 그래서 내내 돼지라는, 뚱뚱하다는 조롱의 말을 장신구처럼 달고 살아야 했던 시절. 그래서 나는 생에 첫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나의 첫 다이어트는 15살 끝자락에서 16살 시작되는 그 시점이었는데, 무려 4개월간 15kg가 넘게 체중을 감량했다. 새뱅이 눈인 줄 알았던 내 눈은 왕만해졌고, 없는 줄 알았던 학목이 그 자태를 드러냈으며, 가장 중요한 건 뱃살이 쏙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소식 다이어트였는데, 학교에서 주는 급식 외에는 일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아예 먹어서는 안 된다고 결심이 서니 그냥 안 먹게 되었다. 내 생에 가장 많이 먹던 시절을 지나 가장 안 먹는 시절을 맞이한 것이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다이어트하는 나를 두고 저녁에 삼겹살을 구워 먹던 엄마와 동생. 내 동생은 체질적으로도 살이 안 찌는 데다가 워낙 활동량이 많아서 늘 마른 몸매를 유지하는데, 정말 그날 저녁만큼은 동생이 너무너무 부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역전이다. 나는 늘 같은 몸무게를 유지하지만 동생은 ET와 같은 몸매가 되어버렸다.)


15kg의 체중감량은 어딜 가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한순간에 나는 학교에서 유명해졌고, 누가 나를 좋아한다더라 어쨌다더라 하는 소문도 돌고, 그로 인해 참 많은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살을 찌나 빠지나 사람 괴롭히기 좋아하는 애들은 여전하다.) 그래도 버티기가 나름 수월했다. 나 자신에게 자신감이 생겨서였을까. 그 어두운 터널을 나는 잘 빠져나왔다. 하지만..


"먹을 수가 없었다."



정말 97% 단식으로 뺀 살들이었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굶어서 뺀 살은 금방 요요가 온다고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초등학교 시절 학교 양궁선수 출신이었던 게 무색하게 나는 세상에서 운동이 제일 싫었다.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나는 먹을 수가 없었다. 나 스스로 정한 공식적인 다이어트 기간이 끝났는데도 그때부터 나는 절대적으로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소식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다이어트에 성공한 이후로 부작용(?)이 생겼는데, 비위가 엄청나게 약해진 것이다. 밥 먹다가 누가 조금이라도 더러운 얘기를 하거나, 혹은 보던 티브이에서 더럽거나 비위가 상하는 장면이 나오면 더 이상 뭘 먹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몸무게를 유지해야 하는 나는 은근 이것이 도움이 되었지만, 문제는 나와 같이 뭘 먹는 주위 사람들이었다. 엄마와 동생은 무슨 얘기를 하다가도 내 눈치를 봤고,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가도 내 눈치를 봤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뭘 먹으면 이제 배부르다고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놓으면 되지만, 가족과 있으면 평소 표정관리 못하는 내 표정이 극도로 안 좋아지니 당연히 눈치를 볼 수밖에. 새삼 엄마와 동생에게 미안하다.

(그래서 요즘 엄마는 나를 보며 한 번씩 놀라곤 한다. 요즘의 나는 밥 먹다가 우리 아이들이 응가를 하면 아무렇지 않게 엉덩이 닦아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다시 먹는다. 누가 식사자리에서 똥 얘기를 해도 개의치 않는다.)


그런데 몸무게 유지를 위해 하던 소식은 임신기간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남들은 임신기간에는 몸무게 신경 쓰지 말고 먹고 싶은데로 먹는다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뚱뚱보 트라우마가 나의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입덧이 있을 때 없을 때나 나는 자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어트 이후 처음으로 20년 전 몸무게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되레 임산부가 살도 안 찌냐고, 말 안 하면 임신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자제했는데도 불구하고 살은 부지런히도 올라 또다시 70kg에 육박하고야 만 것이다. 출산을 하면 애기 몸무게에 양수 몸무게까지 최소 7-8kg는 빠질 줄 알았던 내 기대는 출산 당일 산산조각이 나고, 아이를 만났다는 기쁜 마음과 다시 뚱뚱보가 되었다는 좌절감을 동시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첫째 다온이를 출산했을 때는 육아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굳이 굶으려고 한 것이 아닌데 입맛이 없었다. 그래서 먹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 몸무게는 아니지만 그래도 4kg 정도 남겨두고 모든 살이 다 빠졌었다. 그런데 둘째는 달랐다. 이어서...


13살 그리고 지금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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