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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an 21. 2021

언제쯤 원없이 먹을 수 있을까(2)

둘째 육아는 내 인생의 황금기가 아니었나 싶다. 첫째 다온이가 태어났을 때 몸이 많이 아프셔서 육아를 잘 도와주시지 못했던 친정 엄마의 건강이 호전되어 수시로 들락거리시면서 내가 쉴 수 있도록 해주셨고, 남편도 야근을 밥먹듯이 하던 부서에서 학교로 나오면서 진짜 첫째에 비하면 거의 라온이는 육아를 도맡다 싶이 해주었기 때문이다.


모든것이 좋았다. "나의 살만 빼고"



출산후 1년간은 무조건 잘 먹고 잘 자야 몸이 회복이 된다는 말을 정말 수도 없이 들었다. 하지만 철이 없던 나는 그 말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살을 빼기 위해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굶기 시작했다."


한참 유행했던 홈트(집에서 하는 운동)를 해볼까 싶었지만 주변에서 정말 극구 말렸다. 너 아직 뼈가 제자리도 안찾은 상태다, 그러다 관절 다나간다, 산후풍 오면 어떡할꺼냐 등등 수없이 많은 걱정이 쏟아졌다. 이미 첫째때 조리를 제대로 못한상태라 지금보다 몸이 더 아파지는건 나 역시도 싫었다. 그리고 앞 글에서 썼듯이 난 운동이 세상에서 젤 싫은 사람이다. 그래서 운동은 포기했다.


그럼 내가 살을 빼기 위해 할 수 있는건 무엇일까? 역시 단식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쉽지 않았다.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오시는 3주는 3시 세끼를 너무 잘 챙겨주셔서 안먹을 수가 없었고, 수시로 들락거리는 친정엄마와 시어머니 손에는 늘 먹을것이 들려있었다. 그래서 나는 둘쨰 라온이와 둘이 있는 시간에 최대한 굶어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무작정 정말 물한방울도 안먹고 굶는건 아니고, 내 손에는 항상 커피가 들려있었다.


일명 "커피다이어트"


곡끼는 끊어도 커피는 못끊는 커피중독자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한잔, 라온이랑 놀다가 배고프면 또 커피한잔, 점심시간쯤 되면 커피한잔, 그렇게 커피만 주구장창 마셔도 이상하게 배는 고프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는데 내가 그 시절 한참 빠져있던 편의점 컵커피에는 우유도 들어가있고, 설탕도 들어가있어서 어느정도 허기를 채워준것 같다.) 그런데 항상 4시가 고비였다. 오후 4시가 되면 그때부터는 라온이를 안지도 못할만큼의 극도의 허기와 극도의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뭐라도 먹어야했다. 그 시간쯤에 누군가 오면 그 손에 들려있던 음식을 먹고, 그렇지 않으면 귤하나라도 우유한잔이라도 얼릉 내 몸속으로 넣어줘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남편이 퇴근해서 오면 저녁을 아주 양껏먹었다. 이런 나날들이 몇달이 지나 나는 지금의 몸무게에 도달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나의 저 무리한 다이어트가 나중에 내가 40이 지나고 50이 되었을때 내 몸에 어떤 통증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지. 그리고 누군가는 생각할것이다. 참 철이 없는 행동이라고. 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아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만큼 나에게 날씬하지 않은 나의 모습이란 더이상 용납할 수가 없다. 키도 큰데 덩치도 산만한 나. 그래서 늘 놀림꺼리가 되었던 나. 이제는 다 커서 내가 뚱뚱해도 대놓고 돼지라고 놀리거나 조롱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너무 좋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다이어터이다. 여전히 먹고싶은걸 원없이 먹지 못한다. 그렇게 길고 모진(?)다이어트의 세월을 지나왔지만 나의 식욕은 여전하고, 살찌는 체질 또한 여전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너무나도 많다. 피자, 치킨, 떡볶이, 불족발, 라면, 과자 등등.. 정말 생각만 해도 군침이 고인다. 하지만 이 모든것들을 물리칠 수 있다. 지금의 내 몸무게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래서 나만의 원칙을 세웠다. 나는 출근을 하는 순간부터 학교에서는 점심과 커피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정말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학교에는 은근 간식거리가 엄청 많은데, 왠만한 사람이 권하는건 받아놓고 다 모니터앞에 쌓아놓는다. 그러다 남을 주거나 버리거나. 그래서 왠만하면 받지 않고 싶지만 사회생활이다보니 분위기가 안받을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 정말 8시간의 근무중 점심 한끼만 먹어도 살은 빠지지 않는다. 왜냐면..8시간을 앉아서 일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운동장도 걷고 싶고, 스트레칭도 하고 싶지만 시간은 없고 시선은 많다. 할일을 쌓여있고, 나만의 아지트가 없는것이다. 그 옛날에는 창고라도 가서 점심먹은 후에 스트레칭도 하고 서있기도 했었는데 지금의 학교는 작은데다가 유휴공간이 하나도 없고, 창고는 이미 다른 직원분들이 차지하고 있어 아무데도 나는 갈곳이 없다. 그래서 그냥 앉아서 일을 한다. 그나마 다행인건 실장이 되어서 시설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하고, 관리자분들이 부르면 또 달려가야하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것조차 없으면 진짜 의자에 붙은 사람처럼 앉아서 자판두드리고 마우스만 클릭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퇴근하고 오면 집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저녁도 양껏먹고, 후식도 먹고, 군것질도 한다. 과자타임! 꺄, 세상에는 정말 맛있는 과자가 많다. 그러고 애들을 재우다가 잠이 들지 않으면 남편이랑 야식타임! 예~! 하지만 거의 잠든다는게 함정.......ㅜ_ㅜ



"아마 나는 평생을 원없이 먹지는 못할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날씬한 여자들이면 다 그렇지 않을까. 원없이 먹어도 살 안찌는 체질이거나, 워낙 활동량이 많아서 먹는대로 다 소비하는 사람들, 혹은 식욕자체를 엄마 뱃속에 놓고 온 사람들은 제외하고. 나처럼 후천적으로 날씬한 여자들은 자신들이 다 만들고 유지한것이니까.


제버릇 개 못준다고 오늘은 출장이 있는 날이라 아침시간은 여유가 있는데, 역시나 기상 6시부터 지금까지 커피한잔만 홀짝이고있다. 배는 안고프다. 불행(?) 중 다행인건 안먹고, 안먹고, 안먹다보니 위가 좀 작아졌는지 엄청나게 먹고싶은 음식이 있어서 정말 양껏먹고싶어도 어느정도 먹으면 배가차고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놓게된다는것이다. 물론 정신적 스트레스는 있다.


"더 먹고 싶으니까"


그래도 괜찮다. 몸무게가 유지되어 느끼는 만족감이 더 높으니까. 그리고 불행(?)중 불행은 한번 맘먹으면 하루종일도 굶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하루종일 굶으면 아까 언급한것처럼 오후 4시부터 초 예민해지고, 어지럼증이 심해진다. (당연한건가?ㅋㅋㅋ)



2편에 걸쳐서 장황하게 썼는데, 글을 마무리 해야할 지점에 오는 또 의문이 든다. 이 글을 왜쓰게 된걸까? 그동안 심심치 않게 다이어트에 관한 글을 써왔다. 그런데 사실 이 글을 다이어트에 초점을 맞추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먹는것과 다이어트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니 어쩔 수 없이 언급이 됐다. 그것도 좀 많이.)


10대에 시작한 먹는것에 대한 제한이 거의 20년이 넘도록 이어져 온 내 삶을 돌아보며, 가끔은 정말 아무때나 먹고싶은걸 아주 진짜 배꼽튀어나오게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엄청나게 부러워 하는 내 자신을 보며 한번은 마음정리를 하고 싶었다. 앞으로도 지금껏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먹고싶은것을 원없이 먹고 살지 못해도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라온이 만삭때, 그리고 살 뺀후.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전이 되어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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